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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뼈엔 좌우가 없다… 국가가 죽인 106만명 교과서에 기록해야”
[인터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자원봉사자 김영희씨 “인간은 이념의 동물이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가폭력에 의해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발굴한 장소를 ‘교육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인데 쉽지가 않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자원봉사자인 김영희(59. 경남 진주)씨가 한 말이다. 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창원마산 진전면 여양리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발굴한 고 이상길 교수(경남대)의 제자로서 뜻한 바가 있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고 이상길 교수는 여양리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발굴하다 관계 기관으로부터 받았던 비용이 부족하자 개인 연구비를 들여 마무리했다. 김영희씨의 자원봉사도 스승의 가르침을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진주 명석고개 발굴 현장을 비롯해 여러 군데를 찾아 돕기도 했다. 또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관련 기사를 진주 <단디뉴스>에 오랫동안 연재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부분은 ‘현장 교육’이다. 민간인 학살이 교과서에 다루어져야 하고, 후세를 위해 교육을 해야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국 대부분 학살지는 발굴을 하고 나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지만, 탄광 등이었던 여양리 현장은 보존할 수 있다”며 창원유족회와 창원시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9일 김영희씨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학살지서 쏟아져 나온 장난감 구슬에
[YTN] “죽은 후에도 눈 번쩍, 손가락 움직였다” 1천명과 홀로 싸운 ‘대한 최고 스나이퍼’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3년 2월 9일 (목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조한성 역사작가, 배어진 학생(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청년대표 )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우리 일상에서 보훈 문화가 자리잡을 때까지! 국가보훈처와 함께 하는 특별기획 <슬기로운 보훈생활> 9번째 시간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영화 <밀정> 그리고 <암살>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바로 ‘의열단’ 소재의 영화라는 점인데요. 오늘은 의열단 단원 중 한 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한 최고의 스나이퍼, 일제 경찰과 1 대 1,000의 총격전을 벌였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전해주실 분 두 분, 스튜디오에 함께 하셨는데요.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실은 조한성 작가, 그리고 지난 연말에 있었던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청년 대표로 참여한 배어진 학생 두 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조한성 역사작가(이하 조한성): 안녕하세요. ◐ 배어진 학생((이하 배어진): 안녕하세요. ◇ 이현웅: 우리 청취자분들께 두 분, 정식으로 인사 한 분씩 부탁드립니다. ◆ 조한성: 저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조한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배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국민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배어진입니다. ◇ 이현웅: 그러면 오늘 본격적인 이야기 나눠볼게요, 올해가 김상옥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오마이뉴스] 군인들에게 죽으러 가라던 시인, 죽어서도 훈장 받았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모윤숙 모윤숙은 시인으로 저명하지만, 명성에 비해 대표 작품은 희미하다. 한국전쟁 중에 발표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등의 작품 외에는 널리 각인된 게 별로 없다. 그것은 그의 화려한 이력 때문일 수도 있다. 유엔총회 한국 대표, 국제펜클럽 한국위원장, 여류문인협회 회장, 민주공화당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한국현대시협회 회장, 문화진흥재단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 등의 경력이 훨씬 두드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시기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점도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인 한국문화정보원이 운영하는 문화포털 홈페이지는 모윤숙에 관해 “1940년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점차 순수시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왕성하게 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시의 경향을 띠었다는 서술은 사실이 아니다. 그 시기 그의 작품들은 순수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민망했다. ‘메시지’들로 가득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선전적인 시들을 집중적으로 썼던 것이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에 친일 작품들을 대거 생산했다는 점은, 시인 모윤숙의 이름은 유명해도 모윤숙의 작품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것과 연관될 수 있다. 해방 이전 작품들을 가급적 감춰야 했던 그의 처지가 영향을 줬을 수 있다.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모윤숙은 함흥 영생보통학교와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중학교)를 거쳐 22세 때인 1931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교사로 취직하게 된 그는 잡지 <동광>에 시를 발표한 그해 12월에 문단으로 데뷔했다. 이광수를 문학 스승으로
[경향신문] ‘위안소’는 일본 군사시설 ···일본군 ‘외출’은 성노예 시스템으로 이어져
일본군 야전중포병 5여단 휘하 15연대 제2중대 오장 나가이 히토소는 수첩에 난징 공방전 등 초기 상황을 기록했다. 위안소에 관한 기록은 1938년 1월18일자에 나온다. “외출의 목적은 위안소에 있다. 지난번 개업식에는 제비를 뽑았는데도 끝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가지 않았다. 이후 세 번째 기회를 맞아 중대장 등 간부들에 떼밀려나갔다. 오늘은 조선이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나는)들어가지 않았다.” 같은 해 3월3일 2대대 진중일지는 외출증 소지, 위안소 할당일 외에 위안소에서의 음주 금지, 성병에 대한 경각심 등을 전한다. 2중대 중대회보에는 “1. 하사관, 병의 입구는 남측 동문으로 한다 2. 단가 지나인 1엔 조선인 1엔 50센 일본인 2엔 3. 돈은 반드시 지불할 것” 등을 적었다. 3월10일자 대대회보엔 “타 부대의 위안일에는 절대 위안소에 출입하지 않”도록 한 기록도 나온다. 하종문(한신대 일본학과 교수)은 <진중일지로 본 일본군 위안소>(휴머니스트)에서 위안소 이용과 직결되는 외출 체계에 관한 기록 등을 두고 “위안소의 이용과 관리는 처음부터 부대 운용이라는 틀 속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었으며 병사들은 외출을 통해 부대에서 허가를 받은 공식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 위안소를 출입했다”고 말한다. “ ‘외출’은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장교를 포함한 병사와 위안소, ‘위안부’를 연결해주는, 바꾸어 말하면 일본군 성노예 시스템을 발생시키는 공식적, 제도적 행위였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위안소는 “일본군의 조직 체계와 작전에 깊숙이 결부된 군사시설”, 즉 “평시에 출입하던 민간의 성매매업소와는 질적으로 구별해야 할, 해당 부대에 부속된 ‘군 시설’ ”이자
[한겨레] 국정교과서 중징계 대상자를 교육비서관 발탁한 윤 정부
박근혜 정부 ‘국정화 비밀 TF’ 단장 맡은 오석환 대통령실 신임 교육비서관으로 임명 친일·독재를 미화한 박근혜 정부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국정화 비밀 티에프(TF)’ 단장을 맡았던 오석환 전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이 대통령실 신임 교육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오 비서관은 교육부 진상조사 결과 중징계 대상에 올랐지만 국정교과서 관련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는 5년 동안 이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으로 영전했다. 2일 대통령실과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오석환 전 교육부 실장은 첨단분야 인재육성방안을 추진한 역량을 인정받아 윤석열 정부 새 교육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대통령실 사회수석실 산하 교육비서관은 1급 공무원으로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 추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오 비서관은 대구시교육청 부교육감,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을 거쳐 지난해 5월부터는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을 맡아왔다. 문제는 오 비서관이 국정교과서 사태 당시 주요 실무 책임자라는 점이다. 교육부 산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2018년 5월 펴낸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 등을 종합하면, 오 비서관은 2015년 10월5일부터 11월12일까지 운영된 ‘국정화 비밀 티에프’ 단장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국정화 관련 주무를 맡은 역사교육지원팀이 있었음에도 별도 조직으로 21명 규모의 티에프를 구성했다. 비밀 티에프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다각적으로 홍보하며 지지 세력을 양성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관장 결재 없이 외부 인력을 차출하고 예비비를 부당하게 사용하는 등 편·불법을 저질렀다. 2018년 6월 교육부는 국정화 홍보 영상을 불법 수의계약한 점 등을 들어 인사혁신처에
[동영상] ‘일본육군조병창 병원건물’ 철거 반대 인천시민 대행진 (02.01)
※관련화보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육군조병창 병원건물 철거반대 인천시민 대행진(02.01)
[세계일보] “문화재 약탈에 면죄부 판결”… 조계종, ‘고려 불상 소유권 일본 사찰’ 판결에 발끈
대한불교조계종은 절도범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반입한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는 대전고법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계종은 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1330년 제작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자가 서산 부석사이며, 조선 초기 왜구들에 의해 약탈당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고 1심 판결에서도 인정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심 판결이 677년 창건된 부석사의 영속성을 부정하고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은 판단은 2000년 한국 불교의 역사성과 조계종의 정통성을 무시한 판결로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조계종은 “(2심 판결에서) 불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의 시효취득을 인정한 것도 약탈문화재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판결로 전 세계 약탈문화재 해결에 가장 나쁜 선례를 제공하는 몰역사적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국가와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담고 있는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위치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며, 불가피하게 약탈되거나 도난당한 문화재는 반드시 환수돼 후대에 계승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근대 이후 확립된 법체계를 근거로 우리 민족의 수천 년 정신이 담긴 문화재를 약탈한 국가로 되돌려주는 이번 판결의 부당성은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조계종은 “최종심에서는 상식에 부합하는 결정으로 불교계와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를 바란다”며 상고해서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것임을 시사했다. 문제의 소유권 분쟁은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범들이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對馬·대마도) 소재 사찰 간논지(觀音寺)에 보관 중이던 높이 50.5㎝·무게 38.6㎏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부산항으로 반입하면서 시작됐다. 한국 경찰과 문화재청이 수사를 벌여 2013년 초 절도범 일당을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간호특별기획6편_독립운동가_김순애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간호특별기획 6편 : 독립운동가_김순애 ☞ 간호특별기획 5편 : 파독간호사 정옥련 ☞ 간호특별기획 4편 : 파독간호사 김병연 ☞ 간호특별기획 3편 : 이정숙 지사(연구자 강영심) ☞ 간호특별기획 2편 : 임수명 지사_신지영(신팔균, 임수명 손자) ☞ 간호특별기획 1편 : 박자혜 여사_이덕남(단재 신채호, 박자혜 여사 며느리) ☞ 37편 : 효창 아리랑_김영심(김상옥 손녀) ☞ 36편 : 긴날이 맞도록_이덕남(단재 신채호, 박자혜 여사 며느리) ☞ 35편 : 해방의 노래_장영달(여운형 기념사업회 이사장) ☞ 34편 : 여명의 노래_조정화(조문기 외동딸) ☞ 33편 : 김구 나의 소원_김용만(김구 증손자) ☞ 32편 : 이육사의 꽃_이옥비(이육사 딸) ☞ 31편 : 그리운 강남_김시중(백하 김대락 후손) ☞ 30편 : 소년남자가_최재황(권준 후손) ☞ 29편 : 한국행진곡_한종수(한형석 후손) ☞ 28편 : 해방행진곡_손명원(손정도, 손원일 후손) ☞ 27편 : 거국행_박만규(흥사단 이사장) ☞ 26편 : 애국가_김흥태(오희옥 지사 아들) ☞ 신흥무관학교 제8편 :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 ☞ 신흥무관학교 제7편 : 자랑스런 신흥인 ☞ 신흥무관학교 제6편 : 독립전쟁의 주역, 독립군의 총 ☞ 신흥무관학교 제5편 :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 신흥무관학교 제4편
[오마이뉴스] 한일 군사협력의 결말을 보여준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고영희 대한제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은 1907년 군대 해산으로 연결되고 1910년 국권침탈로 귀결됐다. 오늘날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시대에도 러시아가 개입된 전쟁이 한일 안보협력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압력이 지금의 한일 군사협력을 추동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세계적 긴장 고조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혐한 서적의 저자인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일본대사가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틀 뒤에 쓴 글에는 이 전쟁과 한일 안보협력을 연결시키는 일본인들의 시선이 묻어 있다. 다이아몬드 출판사가 운영하는 <다이아몬드 온라인>에 작년 2월 26일 실린 그 글의 제목은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위험한 공통점, 지정학적 취약성을 전 주한대사가 해설’이다. 여기서 무토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전쟁이 한국과 일본에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면서 “5월에 한국에서 탄생하는 신정권으로서는 문 정권에 의해 취약해진 국방체제를 재검토하고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를 다시 검토해 일·미·한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904년에 일본이 일으킨 러일전쟁은 우크라이나전쟁보다 훨씬 더 한일 군사협력을 추동했다. 그해 2월 6일 선전포고하고 이틀 뒤 개전한 일본은 그달 23일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했다. 이 의정서 제4조는 “제3국의 침해 혹은 내란으로 인해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 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대일본제국 정부는 속히 임기응변의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 있다”라며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가 행동하기에 용이하도록 충분히 편의를 제공”한다고 한 뒤 일본이 한국인들의 토지를 수용해 군사전략적
[한겨레] “외교부는 일본 ‘왜’교부인가” 양금덕 어르신의 꾸짖음
‘일본 전범기업 대신 한국기업이 배상’ 정부 안에 “일본에서 고생했으니 일본한테 당당히 돈 받겠다” “한국 외교부인가 일본 ‘왜’교부인가?” 31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에서는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방안을 비판하는 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3·여)씨와 광주·전남 21개 단체가 구성한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해 한국기업 돈으로 배상하는 정부의 방안에 반대의견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이들은 전날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가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에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양씨는 “굶어 죽어도 한국 돈은 받지 않겠다. 일본에 가서 고생했으니까 일본한테 당당히 돈을 받아야겠다. 정부와 대통령은 일본 편인지 우리 편인지 알 수 없다. 모두 옷을 벗어라”고 외쳤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다 쓰러져가는 단칸방에 사는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 배상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는 마치 양 할머니가 돈을 구걸하는 것으로 취급한다”며 “할머니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이렇게 망가뜨리려고 하는 상황이 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대한민국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전범기업 미쓰비시 등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해 배상 명령을 내렸는데도 해당 기업들은 판결 이후 5년이나 지나도록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판결을 이행하라고 다그치기는커녕 일본에 ‘성의 있는 호응’을 주문하며 굽신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떠 피해자에게 구상권 포기각서를 요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