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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 정부가 막은 할머니의 국민훈장, 시민이 드립니다
“굴욕외교 결과” 날 선 비판… 광주·울산 이어 부산도 평화훈장 수여 “윤석열 정부가 뺏은 양금덕 할머니 인권상, 우리가 직접 드립시다!”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에 대한 국민훈장 서훈에 제동을 걸자 부산 시민들이 평화훈장 수여 추진에 나선다. 대통령과 정부가 반대한다면, 자발적으로 시민의 뜻을 모아 평화훈장을 대신 전달하겠다는 취지다. 시기는 다가오는 104번째 삼일절로 정했다. 일본 눈치? 징용피해자 인권상 무산의 ‘후폭풍’ 지난해 12월 양금덕 할머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천한 2022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지 못했다. 당시 국무회의에 안건이 상정되지 않아 상 수여는 결국 무산됐다. 앞서 인권위는 ‘인권상 포상 추천’ 명단을 공개해 양금덕 할머니가 대상자임을 확인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익과 일본의 사죄배상을 위해 한평생을 싸워온 할머니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상훈법에 국민훈장 등은 국무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 수여한다. 하지만 한일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있는 외교부는 사전협의가 필요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안건 상정을 보류했다. 이후 파장이 컸다. 학벌없는사회시민모임이 과거 받은 인권상을 반납하는 등 항의가 이어졌다. 심지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후폭풍은 곳곳으로 번졌다. 일본의 외교공관인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이 있는 부산에서도 “정부가 거부한다면 시민이 나서자”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부산여성행동, 사회대개혁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 일본방사능오염수규탄부산시민행동 등은 최근 논의를 거쳐 별도의 추진위를 꾸렸다. 이들은 1만여 명의 시민 추천인을 모아 일제강점기에 맞섰던 삼일절의 의미까지 더해 내달 1일 평화훈장을 수여하기로
[연합뉴스] 日기업 상대 강제동원 손배소 또 패소…”소멸시효 지나”
재판부 “대법 확정 2018년 아닌 파기환송한 2012년이 기산점”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다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이기선 부장판사)는 사망한 강제동원 피해자 김모 씨의 유족 5명이 니시마츠건설(니시마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14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리 재판부는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최초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봤다”며 “이 사건은 소멸시효 기간이 이미 지났다고 볼 수밖에 없어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확정한 시점(2018년 10월30일)이 아닌, 배상하라는 취지로 최초 파기환송한 시점(2012년 5월24일)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혹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김씨의 유족이 2019년 6월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2012년 5월을 기산점으로 보면 이미 3년이 지났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기산점에 관한 법원 판단은 엇갈린다. 지난해 2월 같은 법원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하는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 시효 완성’을 이유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반면 2018년 12월 광주고법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때를 소멸시효 기준점으로 봐야 한다며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선고가 끝난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임재성 변호사는 취재진에 “2012년 5월 이후 사법농단 등 사유로 판결이 지연된
[한국일보] “돈 말고 한국 정부의 사과를 달라”…어렵게 웃은 베트남전 학살 생존자[인터뷰]
<2023-02-14> 한국일보 ☞기사원문: “돈 말고 한국 정부의 사과를 달라”…어렵게 웃은 베트남전 학살 생존자[인터뷰] ※관련기사 ☞한겨레: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55년간 눈감은 정부…이젠 진실 밝혀야
[경향신문] 1982년 ‘아즈텍 달력 도난’ vs 2012년 ‘고려불상 절도 사건’의 전모
1982년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방문한 36살의 멕시코 변호사 호세 루이스 카스타냐가 멕시코 고문서의 열람을 신청했습니다. 도서관 측은 복잡한 신원확인을 끝낸 뒤 문서가 담긴 나무상자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료를 열람한 카스타냐가 상자를 반납하고 떠난 저녁 무렵, 도서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나무상자에 들어있던 고문서 중 14~15세기의 아즈텍 달력인 ‘오뱅 토날라마틀(Tonalamatl de Aubin)’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아즈텍 달력 도난사건의 전모 경찰이 즉각 출동했지만 카스타냐가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가 멕시코로 출국한 뒤였습니다. 두달 뒤인 8월 체포된 카스타냐는 이 고문서를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에 기증하면서 “멕시코 약탈 고문서의 첫번째 환수”라고 선언했습니다. 검찰총장은 카스타냐를 즉각 석방했습니다. ‘토날라마틀’(달력)은 멕시코 원주민인 아즈텍인들의 별자리와 점성술을 상징하는 그림을 13개 용설란 껍질에 그려넣은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여러 경로를 거쳐 1802년 멕시코에 머물던 프랑스 유물학자 장 프레데릭 발데크 등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발데크는 1840년 고문서를 프랑스로 반출한 뒤에 천문학자 조제프 마리우스 오뱅(1802~1891)에게 2만 프랑에 팔아넘겼습니다. 이때부터 명칭이 ‘오뱅 토날라마틀’이 되었는데요. 이 유물은 1889년 수집가인 샤를르 구필에게 매각된 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습니다.(1898년) 프랑스측은 “명백한 절도행위를 통한 문화재 회복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즉각 반환을 촉구했습니다. 카스타냐가 훔쳐간 고문서를 포기할 경우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죠. 그러나 멕시코 국내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페인의 정복과 식민지배 아래 완전히 말살된 아즈텍·마야문명 등을 증거할 이 고문서의 귀환은 멕시코인들의 민족감정을 폭발시켰죠.
[오마이뉴스] “뼈엔 좌우가 없다… 국가가 죽인 106만명 교과서에 기록해야”
[인터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자원봉사자 김영희씨 “인간은 이념의 동물이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가폭력에 의해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발굴한 장소를 ‘교육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인데 쉽지가 않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자원봉사자인 김영희(59. 경남 진주)씨가 한 말이다. 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창원마산 진전면 여양리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발굴한 고 이상길 교수(경남대)의 제자로서 뜻한 바가 있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고 이상길 교수는 여양리 민간인 학살 현장을 발굴하다 관계 기관으로부터 받았던 비용이 부족하자 개인 연구비를 들여 마무리했다. 김영희씨의 자원봉사도 스승의 가르침을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진주 명석고개 발굴 현장을 비롯해 여러 군데를 찾아 돕기도 했다. 또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관련 기사를 진주 <단디뉴스>에 오랫동안 연재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부분은 ‘현장 교육’이다. 민간인 학살이 교과서에 다루어져야 하고, 후세를 위해 교육을 해야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국 대부분 학살지는 발굴을 하고 나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지만, 탄광 등이었던 여양리 현장은 보존할 수 있다”며 창원유족회와 창원시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9일 김영희씨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학살지서 쏟아져 나온 장난감 구슬에
[YTN] “죽은 후에도 눈 번쩍, 손가락 움직였다” 1천명과 홀로 싸운 ‘대한 최고 스나이퍼’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3년 2월 9일 (목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조한성 역사작가, 배어진 학생(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청년대표 )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우리 일상에서 보훈 문화가 자리잡을 때까지! 국가보훈처와 함께 하는 특별기획 <슬기로운 보훈생활> 9번째 시간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영화 <밀정> 그리고 <암살>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바로 ‘의열단’ 소재의 영화라는 점인데요. 오늘은 의열단 단원 중 한 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한 최고의 스나이퍼, 일제 경찰과 1 대 1,000의 총격전을 벌였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전해주실 분 두 분, 스튜디오에 함께 하셨는데요.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실은 조한성 작가, 그리고 지난 연말에 있었던 김상옥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청년 대표로 참여한 배어진 학생 두 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조한성 역사작가(이하 조한성): 안녕하세요. ◐ 배어진 학생((이하 배어진): 안녕하세요. ◇ 이현웅: 우리 청취자분들께 두 분, 정식으로 인사 한 분씩 부탁드립니다. ◆ 조한성: 저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조한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배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국민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배어진입니다. ◇ 이현웅: 그러면 오늘 본격적인 이야기 나눠볼게요, 올해가 김상옥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오마이뉴스] 군인들에게 죽으러 가라던 시인, 죽어서도 훈장 받았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모윤숙 모윤숙은 시인으로 저명하지만, 명성에 비해 대표 작품은 희미하다. 한국전쟁 중에 발표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등의 작품 외에는 널리 각인된 게 별로 없다. 그것은 그의 화려한 이력 때문일 수도 있다. 유엔총회 한국 대표, 국제펜클럽 한국위원장, 여류문인협회 회장, 민주공화당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한국현대시협회 회장, 문화진흥재단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 등의 경력이 훨씬 두드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다. 창작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시기가 일제강점기였다는 점도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인 한국문화정보원이 운영하는 문화포털 홈페이지는 모윤숙에 관해 “1940년대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점차 순수시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왕성하게 활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시의 경향을 띠었다는 서술은 사실이 아니다. 그 시기 그의 작품들은 순수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민망했다. ‘메시지’들로 가득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선전적인 시들을 집중적으로 썼던 것이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에 친일 작품들을 대거 생산했다는 점은, 시인 모윤숙의 이름은 유명해도 모윤숙의 작품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 것과 연관될 수 있다. 해방 이전 작품들을 가급적 감춰야 했던 그의 처지가 영향을 줬을 수 있다.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모윤숙은 함흥 영생보통학교와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중학교)를 거쳐 22세 때인 1931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교사로 취직하게 된 그는 잡지 <동광>에 시를 발표한 그해 12월에 문단으로 데뷔했다. 이광수를 문학 스승으로
[경향신문] ‘위안소’는 일본 군사시설 ···일본군 ‘외출’은 성노예 시스템으로 이어져
일본군 야전중포병 5여단 휘하 15연대 제2중대 오장 나가이 히토소는 수첩에 난징 공방전 등 초기 상황을 기록했다. 위안소에 관한 기록은 1938년 1월18일자에 나온다. “외출의 목적은 위안소에 있다. 지난번 개업식에는 제비를 뽑았는데도 끝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가지 않았다. 이후 세 번째 기회를 맞아 중대장 등 간부들에 떼밀려나갔다. 오늘은 조선이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나는)들어가지 않았다.” 같은 해 3월3일 2대대 진중일지는 외출증 소지, 위안소 할당일 외에 위안소에서의 음주 금지, 성병에 대한 경각심 등을 전한다. 2중대 중대회보에는 “1. 하사관, 병의 입구는 남측 동문으로 한다 2. 단가 지나인 1엔 조선인 1엔 50센 일본인 2엔 3. 돈은 반드시 지불할 것” 등을 적었다. 3월10일자 대대회보엔 “타 부대의 위안일에는 절대 위안소에 출입하지 않”도록 한 기록도 나온다. 하종문(한신대 일본학과 교수)은 <진중일지로 본 일본군 위안소>(휴머니스트)에서 위안소 이용과 직결되는 외출 체계에 관한 기록 등을 두고 “위안소의 이용과 관리는 처음부터 부대 운용이라는 틀 속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었으며 병사들은 외출을 통해 부대에서 허가를 받은 공식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 위안소를 출입했다”고 말한다. “ ‘외출’은 개인적 행위가 아니라 장교를 포함한 병사와 위안소, ‘위안부’를 연결해주는, 바꾸어 말하면 일본군 성노예 시스템을 발생시키는 공식적, 제도적 행위였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위안소는 “일본군의 조직 체계와 작전에 깊숙이 결부된 군사시설”, 즉 “평시에 출입하던 민간의 성매매업소와는 질적으로 구별해야 할, 해당 부대에 부속된 ‘군 시설’ ”이자
[한겨레] 국정교과서 중징계 대상자를 교육비서관 발탁한 윤 정부
박근혜 정부 ‘국정화 비밀 TF’ 단장 맡은 오석환 대통령실 신임 교육비서관으로 임명 친일·독재를 미화한 박근혜 정부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국정화 비밀 티에프(TF)’ 단장을 맡았던 오석환 전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이 대통령실 신임 교육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오 비서관은 교육부 진상조사 결과 중징계 대상에 올랐지만 국정교과서 관련 검찰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는 5년 동안 이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으로 영전했다. 2일 대통령실과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오석환 전 교육부 실장은 첨단분야 인재육성방안을 추진한 역량을 인정받아 윤석열 정부 새 교육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대통령실 사회수석실 산하 교육비서관은 1급 공무원으로 윤석열 정부 교육개혁 추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오 비서관은 대구시교육청 부교육감,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을 거쳐 지난해 5월부터는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을 맡아왔다. 문제는 오 비서관이 국정교과서 사태 당시 주요 실무 책임자라는 점이다. 교육부 산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2018년 5월 펴낸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 등을 종합하면, 오 비서관은 2015년 10월5일부터 11월12일까지 운영된 ‘국정화 비밀 티에프’ 단장이었다. 당시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국정화 관련 주무를 맡은 역사교육지원팀이 있었음에도 별도 조직으로 21명 규모의 티에프를 구성했다. 비밀 티에프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다각적으로 홍보하며 지지 세력을 양성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관장 결재 없이 외부 인력을 차출하고 예비비를 부당하게 사용하는 등 편·불법을 저질렀다. 2018년 6월 교육부는 국정화 홍보 영상을 불법 수의계약한 점 등을 들어 인사혁신처에
[동영상] ‘일본육군조병창 병원건물’ 철거 반대 인천시민 대행진 (02.01)
※관련화보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육군조병창 병원건물 철거반대 인천시민 대행진(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