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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활동

[더팩트] 잊혀진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을 기억하다

2022년 4월 28일 1532

광주 동구, 독립운동가 장재성·장매성 남매가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 설치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광주 동구는 27일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장재성, 장매성 남매가 생전 거주했던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안내판은 4번째 작업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 장매성 남매가 살았던 금동 97번지(옛 금계리 97번지)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 남매가 살았던 집은 사라지고 현재 벽돌 건물의 주택이 들어서 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출발한 기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에서 일본인 학생 3명이 광주여고보를 다니던 여학생들을 밀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을 꾸짖으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의 마찰이 생긴게 광주학생운동의 시작이다. 장재성(1908~1950)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5학년이었던 1926년 왕재일 등과 함께 비밀단체 ‘성진회’를 조직한 인물이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자 학생시위를 주도했고 이로 인해 관련자 중 가장 무거운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일제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지만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을 이유로 현재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했다. 장재성의 누이인 장매성(1911~1993) 또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독서회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검거돼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장재성과는 달리 1990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하지만 광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 두 독립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최근 지역 연구자들 사이에서 장재성과 장매성의 이름을 바로 세우고 업적을 알리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 김재동, 김한동 형제도 비슷한 경우다. 김재동은 독립유공자로 국가에서

[보도자료] 고양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 교육 사이트 개설

2022년 4월 27일 950

[보도자료] [다운로드] 고양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 교육 사이트 개설 3·1운동 당시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대일항쟁이었던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교육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는 ‘3·1운동 기념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 재현 비대면 교육사이트’를 오픈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만세시위는 전국으로 들불과 같이 번져나갔다. 당시 고양군에서도 만세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났는데 신도면·벽제면·지도면 일대에서 3월 11일, 24일, 28일 세 차례에 걸쳐 수백 명의 군중들이 운집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3월 11일 밤에는 지도면 행주내리와 행주외리 주민들이 등불을 신호로 야간시위를 감행했다. 일제 경찰이 추격해오자 시위대는 강에 배를 띄우고 선상시위를 전개하며 끝까지 저항했다. 고양파주지부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부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선상만세시위를 시민, 학생들과 함께 재현하는 행사를 매년 진행하여 호평을 받아왔으나,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감염증 사태의 확산으로 개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행주나루 선상만세시위’를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3·1운동 기념 행주나루 선상 만세시위 재현 비대면 교육사이트’(dokriphaengju.com)를 개설하게 됐다. 고양시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이 사이트는 21개 메뉴와 31개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상 만세시위에 대한 상세한 역사 자료와 함께 역대 재현 행사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백창환 지부장은 “그동안 3·1운동 기념행사는 서울 중심으로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행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기념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념사업의 지역화와 대중화를 지향하는 차원에서 이번 교육 사이트를 개발하였다.”면서 “내년에는 다시 행주나루터

[인천인] 인천지역 사민사회단체, 인천 자유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103주년 기념식’ 개최

2022년 4월 1일 1159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를 비롯한 인천지역 15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일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 광장에서 한성임시정부 103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103년 전인 1919년 4월 2일, 자유공원(옛 만국공원)에 모여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했던 ‘13도 대표자 회의’를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시민단체 대표와 회원, 자유공원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주최 측에서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일제 식민 지배를 뚫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선열들의 고귀한 뜻을 되새겼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 상임대표는 기념식 취지에 대한 설명을 통해 “103년 전 13도 대표자들은 만국공원에 모여 국민대회에 필요한 취지서와 선포문, 약법 등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4월 23일 서울에서 한성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결성된 한성임시정부는 그해 9월 통합한 상해임시정부에 그 법통이 녹아있다”며 “이런 역사적 의미를 가진 한성임시정부가 인천에서 첫 깃발을 올렸는데 우리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상임대표는 “오늘을 기점으로 한성임시정부의 의미를 인천지역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내고 상해임시정부 8대 국무령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만오 홍진 선생을 인천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알려 나가자”고 호소했다.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전국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순서에서는 국민대회 취지서와 약법, 한성임시정부 선포문이 낭독됐다. 시민단체 대표 13명은 13도 대표자 회의에 참석한 각 지역 대표자와 종교계 대표들을 상징하는 검은색 한복 두루마기를 갖춰 입고 103년 전 대표자 회의 상황을 재현했다. 이어 원학운 인천시민의힘 상임대표가 낭독한 ‘인천시민들께

[부천타임즈]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역곡안동네 박제봉 고택 ‘친일파’안내판 설치하라

2022년 3월 24일 926

[부천타임즈:양주승 대표기자]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에서 부천시는 역곡안동네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오래된 집이 일제 잔재라고 지적하면서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민문연 부천지부는 22일 성명을 통해 “2021년 역곡안동네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오래된 집(역곡동 165번지)이 부천시향토문화재 심사에서 탈락되었으며, 경기도와 부천의 ‘일제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에 의해 일제잔재가 되었음에도 그 어떤 행정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부천도시공사가 역곡 안동네 아카이브즈 구축 보도자료를 내면서 친일파 박제봉의 집 사진을 실었다”고 지적하면서 ” 이는 부천시와 부천시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함에 따라 나온 결과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에서는 2020년에는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지원하여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_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을 제작하여 부천지부 홈페이지(minjok21.kr)에 게시하고 경기도 관내 2400여개 초중고에 도록을 보급하였으며, 2021년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추진 공모사업(후원-경기문화재단)에 선정되어 <생활 속 항일음악 음원제작>을 완료하여 부천지부 홈페이지(minjok21.kr)에 게시하고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를 통해 각 교육지청과 초중고에 보급하는 등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 성명서 전문 부천시는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하라 우리는 과거 100년 동안 일제침탈, 식민지배, 독립․항일운동, 해방, 분단, 6.25전쟁 등 수많은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여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방이후 일제에 부역한

[한국일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더라’ 후손들의 삶, 정말 그랬다

2022년 3월 1일 1036

<2022-03-01> 한국일보 ☞기사원문: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더라’ 후손들의 삶, 정말 그랬다

[오마이뉴스] “일본은 전쟁범죄 사죄하고 역사왜곡 중단하라”

2022년 3월 1일 562

제103주년 3.1절 맞아 평화나비대전행동, 3.1평화행동 개최… 윤석열 후보 발언 비판 제103주년 3.1절을 맞아 일본의 식민지배 사죄배상을 촉구하고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대전시민 평화행동이 열렸다. 평화나비대전행동은 1일 오후 대전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일본 식민지배 사죄배상! 한반도 평화실현! 3.1평화행동’을 개최했다. 이날 평화행동에는 허태정 대전시장과 장종태 전 서구청장,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김율현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박규용 대전충남겨레하나 상임대표, 김창근 대전충청5.18유공자회장, 문성호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등 시민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한 손에는 ‘일본은 전쟁범죄 인정하고 사과하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수요집회 지지한다’는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함께 들었다. 이날 행사는 한기복 전통타악그룹 굿 대표의 북공연으로 시작되어 민중의례와 규탄발언, 문화공연, 만세삼창, 거리행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첫 발언자로 나선 박규용 대전충남겨레하나 상임대표는 “일본은 한반도를 강제 침탈하고, 전쟁에 우리 민족을 강제 동원해 희생시켰으며,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에 있어서 범죄의 흔적을 지우고 미화시키기에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이어 “더 나아가 일본은 군함도에 강제징용 내용을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한 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 내용을 삭제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강제징용의 현장인 사도광산까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며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이렇게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 정부에 대한 사죄반성을 요구하는

[오마이뉴스] 대전지역 항일독립운동 자료집 발간

2022년 3월 1일 789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62명의 독립운동가 공적 정리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아래 대전지부)가 ‘대전지역 항일 독립운동자료집’을 펴냈다. 대전지부가 최근 펴낸 ‘대전지역 항일 독립운동자료집’은 대전지역독립운동가 사전이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바탕으로 대전지역 62명의 독립운동가의 삶과 공적을 수록했다. 수록된 권용두 (1914-1992)는 대전중학교 3학년 때(1929년) 조선인학생단인 선우회에 가입, 일인 학생 구타로 인해 징계를 받고 1931년 비밀결사인 충남전위동맹에 가입했다. 이후 폭정 규탄과 농민 야학으로 인재를 양성하다 체포돼 징역 1년, 3년간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의 공적은 대전공립중학교 생도 명세부, 대전공립중학교 퇴학자 명부, 동아일보 기사 등을 통해 확인된다. 자료집은 또 ‘대전의 지명과 역사’, ‘대전지역 항일독립운동’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또 독립운동가들의 판결문 등 재판기록, 항일독립운동 장소 등을 정리해 함께 실었다. 3.1운동 관련 재판기록을 보면 대전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14명의 판결문이 수록돼 있다. 유성시장에서 만세운동을 한 이권수, 이상수 형제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유성시장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군중을 선동하여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르게 하기로 모의하고, 여러 장의 한국기를 만들고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수백 명의 군중과 한국독립 만세를 부름으로써 치안을 방해했다’며 ‘ 조선형사령과 보안법 혐의를 적용 각 징역 1년 2월에 처한다’고 돼 있다. 자료집에는 ‘항일독립운동 왜곡 및 바로잡기’ 사례로 ‘대전독립투사 비문변조사건'(독립운동가 김용원 선생 비문에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이돈직’을 끼워 넣기 한 사건)과 ‘독립운동가 김태원 가짜 유족 등록사건’을 소개했다.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은 “대전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활약은 독립운동사에 한

[경인일보] 앳된 중학생까지 동원 근로보국대 합숙소 결국 철거… 일제 만행 증거 하나 사라져

2022년 3월 1일 779

일제 강점기 인천 노동사 주목해야·(하) ‘노역을 하는 아이들은 밤마다 소리도 못 내고 울곤 했다…’. 1930년대 인천 지역 정미소·항만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3월1일자 4면 보도=정미소·항만 노동자들 ‘애환’ 고스란히… 깊이있는 연구 필요)을 경험한 일제는 노동자들을 더욱 거칠게 탄압했다. 그러던 중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군수물자 생산에 강제 동원하기에 이른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한 주택가에는 일제 강점기 군수업에 종사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묵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택들이 남아 있다. 일제가 조선의 병참 기지화를 위해 군수업 노동자들에게 공급한 ‘영단주택’이다. 일제 군수물자 생산 ‘병참기지화’ 동구, 공원 조성하며 역사속으로 1930년대 말부터 히타치(日立)제작소, 경성화학주식회사, 조선기계제작소 등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들이 인천에 터를 잡았다. 지금의 인천 부평구, 미추홀구, 동구 지역에 군수물자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많은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다. 인천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장회숙 대표는 지난달 28일 답사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전쟁 물자를 만드는 데 동원돼 고통 속에서 극심한 착취를 당했다”고 말했다. 인천 동구 화수동에는 일제 강점기 군수업체인 조선기계제작소가 있었다. 1937년 인천 동구에 들어와 광산용 기계와 선박 기계를 주력으로 생산하던 조선기계제작소는 태평양전쟁 이후인 1943년 일본 육군의 잠수함 건조 명령에 따라 조선소로 전환됐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인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근로보국대’를 조직한다. 심지어 1938년 6월에는 어린 학생들까지 근로보국대에 편입시켰다. 당시 조선기계제작소에 동원된 근로보국대 합숙소는 2016년 동구청이 이 일대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