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친일문학과 항일문학
임헌영 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장
이 글은 2018년 8월 15일 민족문제연구소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학술회의에서 격려사로 발표된 글이다.
1. 피천득의 친일파 비판
피천득은 수필 <춘원>에서 이렇게 썼다. “그(춘원)는 산을 좋아하였다. 여생을 산에서 보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깝게도 크나큰 과오를 범하였었다. 1937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을까.”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세상 떠난 사람한테 이런 말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서 아무개 같은 사람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봐 줄 수가 없어요. 일제뿐만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어요. 작가는 인격이나 인품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또 문학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물건은 다 버려도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품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피천득의 말. 정정호 엮음,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샘터, 2014, 253-254)
여기서 서 아무개는 미당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산문을 썼던 피천득이 왜 이런 가혹한 발언이나 글을 썼을까. 지금까지 친일문학인에 대하여 이처럼 혹독하게 비판한 문학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아마 친일문학의 본질을 피천득은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2. 만세도 못 불렀던 민족
1945년 8월 10일 밤, 중국 섬서성 주석(陕西省 主席)이자 국민당 중앙감찰위원이었던 쭈샤오저우(祝紹周)의 시안(西安) 저택에서 만찬을 끝낸 백범은 객실에서 수박을 먹으며 담화하던중 전화소리가 울렸다. 주석은 놀라듯 전화실로 급히 들어가더니, 뒤이어 나오며 “왜적이 항복한답니다.”라고 하였다. 김구는 그 순간의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중략)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즉시 축씨 사랑을 출발하여 차가 큰길을 지날 때 벌써 군중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만세소리는 성내를 진동하였다. (도진순 주해, 《백범일지》, 돌베개, 309쪽.)
1945년 8월 15일 오전 10시, 작가 김동인은 조선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친일어용단체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보다 더 효과적으로 (친일을 수행할) 작가단을 결성할 테니 허가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과장은 절대 반대였다. 소련까지 참전한 이 마당에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고, “책상을 두드리며 그에게 육박”했다고 김동인은 썼다.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는 함석헌의 말은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들어맞는 말이겠으나 독립을 위해 각고의 투쟁을 했던 인사들에게는 모욕적인 비난일 수 있다. 감옥에서 광복절 이튿날 풀려난 김상훈(金尙勳) 같은 시인이 맞았던 해방과, 바로 그 시각에 서울 근방에 B29를 막는 방비공사용 자갈을 채취하는 양주군 진건면 사릉리(현진건읍) 앞개울에 나갔다가 근로보국대에 동원되었던 사람 상당수가 안 나온 데다 감독하는 일군 병사도 보이지 않자 웬일이냐고 궁금해 하던 중 어제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이광수가 맞았던 해방은 다를 수밖에 없다.
1945년 9월 8일, 91,800명의 미군이 인천을 거쳐 상경했다. 9월 9일 오후 3시 45분, 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일본과 미군 사이에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미국측 서명자는 킨케이드 제독(7함대사령관)과 하지 중장, 일본측 서명자는 조선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고츠키 요시오(上月良夫, 제17방면군 사령관), 야마구치 기이치(山口儀一, 진해경비사령관)였다.
바로 이어서 미 육군 24군단 7보병사단 17대대 1중대 소속 8명의 병사가 총독부 청사 앞마당의 일장기를 하강, 성조기를 게양했다.
3. 친일문학의 사상사적인 접근
사상사적으로 보면 친일은 전쟁범죄로 다뤘던 뉘른베르크 재판의 이념에 따라 (1)‘고유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 말고도, (2)‘평화에 대한 전쟁 범죄’와 (3)‘인도에 대한 전쟁범죄’까지 다뤄야 할 것이다.
친일문학이란 (1)천황제 이데올로기, (2)군국주의 혹은 파시즘의 독재체제 이데올로기, (3)제국주의적 침략전쟁 이데올로기, (4)민족적 허무주의 내지 식민사관 이데올로기, (5)반공주의이데올로기, (6)일본 중심적 동양주의 사상에 바탕한 반서구, 반기독교 이데올로기, (7)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등의 구조식을 지니고 있다.
친일문학 예술은 단순하게 학도병에 지원하라는 식의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발성에 의한 확고한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갖췄으며, 이데올로기는 종말이 없기에 계속 번식한다. 친일파를 청산해야 될 가장 중요한 원인도 바로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상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다. 친일파 옹호의 사상사적인 정체는 민주주의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며 쿠데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정도를 넘어 부추기기도 하는 극우파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인종 편견, 신앙 편견, 약소국 억누르기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력침략도 감행해도 좋다는 파시즘적 가치관을 뜻한다. 친일파가 친미파- 독재권력 옹호 – 민주화 운동 반대 – 평화통일 반대 – 개혁과 개방 반대 – 노동자, 농민 등의 관점이 아닌 재벌과 상류층 이익 옹호 – 사회 복지보다 성장 신화 옹호 – 이라크파병 지지 – 국가보안법 지지 – 부시의 대북 강경정책 지지 – 일본의 대북강경책 지지 – 국정교과서 지지 – 이명박-박근혜 등 지지 – 태극기 부대 등으로 이어진다는 건 당연한 귀결이 될 터이다.
촛불혁명과 친일문학은 너무나 궁합이 안 맞고, 남북민족화해와 평화의 시대와도 걸맞지 않다. 적어도 친일 혐의가 있는 문학인에 대한 각종 기념행사나 추모, 유적지 건립 등은 이 쟁점이 분명해질 때까지 억제하는 게 진정한 문학인의 자세일 것이다.
드골은 문학 예술인에 대해서는 어떤 탄원이나 구명운동도 외면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이유를 그는 “그들이 도덕과 윤리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가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친일시
우리집의 노래
이광수
방치이고 소세하고 다 차렸느냐
언니, 누나 아우 누이 다 모이어라
아바님께 어머님께 인사드리자
밤사이에 안녕히들 주무셨는지
아바님과 어머님이 앞을 서시고
언니 아우 항렬찾아 차례로 서서
신명전에 합장하고 기원드리세
우리나라 우리집이 태평하소서
몸에 가득 아침하늘 햇볕을 받아
공송하게 가지런히 허리 굽혀서
우리 임금 천황폐하 겨오신 곳을
마음모아 정성모아 요배 드리세
둥근 상에 둘러앉아 온 집안 식구
받자옵는 아침밥의 고마움이어
한 그릇 밥 우리 상에 오르기까지
들인 수고 생각하니 고개 숙여라
식구마다 제 일터로 찾아나갈 제
어느 일은 임금님의 일이 아닌가
부지런히 하룻일을 마치고 나서
모여드는 우리 집의 즐거움이어
나도 가겠습니다
– 특별지원병이 되는 아들들을 대신해서
김기진
아버지! 어머니!
나도 가겠어요 특별지원병으로-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바람도 없건만
나뭇잎새 저절로 땅 위로 떨어집니다.
생명이 이 같지 않아요? 한 사람에 천 년의 목숨 없고
천 살을 산들 썩어 살면 무엇에 씁니까!
대대로 받아내려 온 제 몸의 이 더운 피
이 피는 조선의 피이며 일본의 피요,
다 같은 아세아의 피가 아니오니까.
반만년 동양의 역사가 가르칩니다.
지금, 동양의 역사를 동양 사람의 피로 새로이 쓸 때-
지금, 아세아의 지도를 동포의 피로써 새로이 그릴 때-
전 세계가 새로운 질서를 이 지점 위에 굳게 세우려고
밤을 낮에 잇는 정열의 전쟁! 인류 유사 이래의 제일 큰 시련입니다.
생명도 하나뿐. 죽음도 한번뿐.
둘 없는 것이매 값있게 쓰여야지요
이 오체(五體)의 혈맥에 뒤끊는 혈조(血潮)를
헛되이 사그러지게 하면 백대(百代)의 수치!
오오 명년(明年)에는 징병 적령(適齡)이 되는
동생도 당당한 제국군인으로 입영하겠지요.
한걸음 앞서 군기(軍旗) 아래로
나아갈 길 열이었으니
부르지 아니하신들 저희가 어찌 안가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저도 가겠어요, 특별지원병으로!
(〈매일신보〉 1943. 11. 6)
부인근로대
노천명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러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매일신보〉 1942. 3. 4)
지원병에게
모윤숙
눈부신 산모퉁이
밝은 숲속
힘찬 기운 떠오는 하늘 밑으로
가을 떨기를 헤치며 들어갔노라
기슭을 후리고 지나가는 억센 발자국
몸과 몸의 뜨거운 움직임들
칼빛은 태양아래 번개를 아로삭여
힘과 열의 동산 안에 내 맘은 뛰놉니다
눈은 하늘을 쏘고 그 가슴은 탄환을 물리처
대동양의 큰 이상 두 팔안에 꽉 품고
달리여 큰숨 뿜는 정의의 용사
그대들은 이 땅의 광명입니다
대화혼(大和魂) 억센 앞날 영겁으로 빛내일
그대들 이 나라의 앞잽이 길손
피와 살 아낌없이 내여바칠
반도의 남아 희망의 화관입니다
가난한 이 몸이 무엇을 바치리까?
황홀한 창검이나 금은의 장식도
그대 앞에 디림없이 그저 지냅니다
오로지 끓는 피 한 목음을 축여 보태옵니다
지난날 이 눈가에 기뜨렸던 어둠을
내 오늘 그대들의 우렁찬 외침 앞에
다―맑게 씻고 새 계절 뵈옵니다
다―맑게 씻고 새 노래 부릅니다.
(〈삼천리〉 1941년 1월호)
항일시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김기림
들과 거리, 바다와 기업도
모도다 바치어 새나라 세워 가리라―
한날 벌거숭이로 돌아가 이나라 지추를 고이는
다만 조약돌이고저 원하던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도 다 버리고
구름 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깃발 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저 맹세하던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어찌 닭울기전 세번뿐이랴,
다섯번 일곱번 그를 모른다 하던 욕된 그날이 아퍼
땅에 쓰러저 얼골 부비며 끓는 눈물
눈뿌리 태우던 우리들의 8월―
먼 나라와 옥중과 총, 칼 사이를
뚫고 헤치며 피 흘린 열렬한 이들 맞어
한갓 겸손한 심부름꾼이고저 빌던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끝없는 노염, 통분속에서 빚어진
우리들의 꿈, 이빨로 물어뜯어 아로색인 조각,
아모도 따를이 없는 아름다운 땅 만들리라,
하늘 우르러 외오치던 우리들의 8월―
부리는이 부리우는이 하나 없이
지혜와 의리와 착한 마음 꽃처럼 피여
천사들 모다 부러워 귀순하는 나라,
내 8월의 꿈은 영롱한 보석바구니.
오- 8월로 돌아가자,
나의 창세기 에워싸던 향기로운 계절로-
썩은 연기, 벽돌 데미, 몬지 속에서
연꽃처럼 순연히 피어나던 8월―
오- 우리들의 8월로 돌아가자.
독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
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
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본명은 김윤식. 전남 강진에서 독립만세운동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공적으로 2018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은 1919년 3월 25일 강진군 강진면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제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0년대 ‘毒을 차고’, ‘가야금’ 등의 저항시를 발표하여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하고 민족의식을고취하는 활동을 했다.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고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3.1.)
민족반역자
박세영
나라를 세우는데
그짓이 있겠소
인민의 뜻을 제치고 나스는건
어리석고 못난 자,
그것이 민족반역자외다.
해바라기도 해를 따를줄 알거든,
다만 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난날의 죄악을 파묻어도
두더쥐 모양 튀어날 것을
일찍이 물러나 서야지.
눈앞엔 영화(榮華)만 보이고,
마음엔 물욕만 앞서
나라를 돈으로 잡으려는
그것은 패망자요
민족반역자외다.
오랜 세월을 두고 두고,
좇기고 잡히고
놈들에게 목숨을 빼앗긴
혁명 투사는 다 물리치고,
뒷둥거리며 앞장을 스려는
그짓 신사여!
그래도 나스려는가.
인민을 눈을 싸매고
악마의 침략자와 손을 잡던
더러운 그 손으로
새 날이 왔다고
민중을 어루만지면 되는가,
그 죄는 보다 더 크리라.
차라리 한줌 흙이 될지언정
함정우에 집을 짓는
민족반역자가 될까보냐?
다만 한알의 모래가 되어도
새 건설에 받칠뿐,
무엇이 또 있으랴.
(1945.11.1. 〈횃불〉 우리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