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심의방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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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신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장관의 건의로 통일임시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사회 개혁의 기초로 사용될 법령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세워진 입법기관이다. 1946년 10월 간접선거로 선출된 45명의 민선의원과 하지 미군사령관이 임명한 관선의원 45명으로 구성되어 1946년 12월 12일 개원하여 1948년 5월에 해산하였다. 이 기간에 입법의원에서 제정한 주요 법률로는 「입법의원선거법」,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 「조선임시약헌(朝鮮臨時約憲) 등이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신천지> 1947년 6월호에 실린 최태신(崔泰信)의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심의방청기」다. 이 자료는 친일파 처단을 규정한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민선의원와 관선의원들의 치열한 대결 양상을 상세히 다루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사료다. – 편집자주

 

141946년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 기념사진. ⓒ 국가기록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작년(1946년) 12월 12일 개원 직후, 동원법(同院法)을 심의할 때에 동원법 초안에는 특별위원회로서 자격심사위원회, 임시헌법과 선거법기초위원회, 행정조직법 기초위원회, 식량물자대책위원회, 적산대책위원회 등 다섯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규정하였던 것을 원세훈(元世勳) 의원(좌우합작위원회 소속 관선)의 동의에 의하여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전범(戰犯) 간상배(奸商輩)에 대한 특별법률조례기초위원회를 설치하기로 되었던 것이다. 당시 원세훈 의원의 동의가 만장일치로 순조롭게 가결된 것은 아니었던 것만큼 후일에 정원 90 의원 중 무시할 수 없을 반동적 방해 의원이 없으리라고 예상 안된 바도 아니었지만 하여튼 동위원회 설치 가결은 과도입법의원 자체가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에 대한 처벌법 제정을 입법의원 자신의 일대 사명으로 부하(負荷)하고 나온 것이었으니 해방 이후도 민족반역자 친일파가 일반의 원성이 귀에도 스치지 않은 듯이 이 땅에 발호하고 있는 현상임에 비추어 일반의 기대와 주목은 적지 않았다 할 것이다.
일반의 기대와 주목 속에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조례기초위원에는 일찍이 만주에서 광복군 연대장으로 활약중에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다가 무기징역이 되어 19년간이나 일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해방 후에 출옥한 정이형(鄭伊衡) 의원(관선)을 위원장으로 이원생(李源生) 최종섭(崔鍾涉)(이상 민선) 윤기섭(尹琦燮) 고창일(高昌一) 허간룡(許侃龍) 허규(許珪) 김호(金乎) 박건웅(朴建雄)(이상 관선) 등 아홉 의원이 피선되었다. 그리하여 동위원회 위원 제씨(諸氏)는 금년(1947년) 3월 17일 제32차 본회의에 전문 5장 16조로 된 초안과 장문의 초안 취지설명을 제출하였던 것이다.
이 특별조례 초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즉 3월 4, 5일경에 서울 시내 각 신문에 동 초안 전문이 보도되자 각 방면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거니와 이것이 보도된 다음날인 5일에 김규식(金奎植) 의장은 “이 초안을 일부 신문에는 게재한 바 있으나 이것은 입법의원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않았으며 또한 상정되어도 심의 토의한 후 법안이 통과되든지 혹은 수정 통과되기 전에는 효력이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담화를 군정청 공보부를 통해서 발표하였다. 각 신문은 리딩 센텐스(reading sentence)에 이것은 초안(草案)이라고 분명히 명기하였으며 또 의외에 ㅁㅁ한 것이 일반 독자이거늘 명철하신 김규식 의장이 어떤 까닭으로 이와 같은 담화를 발표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는 여기서 밝히려 하지 않거니와 지난 3월 17일에 동 초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초안 내용 토의에 앞서 “어찌 해서 이것을 통과되기도 전에 신문에 보도까지 되게 하였느냐”고 강익형(姜益亨) 의원(경남 민선)이 책임을 추궁하는 통에 시간이 낭비되었고 한편 여운홍(呂運弘) 의원(관선)으로부터 “3월 10일부 시내 모신문 광고란에 소위 전 조선군후원 회장 李海ㅁ(당시 현직 제1관구 ㅁ찰단 사찰과장)의 명의로 ‘제일선 봉직자에게 고함’이라는 제목하에 입법의원에서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에 대한 특별조례를 제정하느니 하지만 그것은 어리
석은 작란(作亂)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제일선 봉직자 제위(諸位)는 안심하고 봉공(奉公)하라는 요지의 광고문이 게재되었으니 이는 곧 입법의원을 모욕한 것이다. 그러므로 단호히 징계처분에 처하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발언에 대하여 민선의원의 분위기를 대변해서 이남규(李南圭)의원(전남 민선)은 “그런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도리어 입법의원이 점잖치 못하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라”고 언사를 토로하였고 신익희(申翼熙) 의원의 “광고란에 게재된 것이니 기사와는 다르다”는 해명에 강순(姜舜) 의원은 “돈만 주면 무엇이든 광고란에 내준다는 말인가? 하물며 민족반역자를 처단하자는 것을 일개 작란이라고 욕설한 광고를 낸다는 것은 유태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짓이라”고 일갈하였다. 그 후 입법의원의 항의로 경무부장 조병옥(趙炳玉) 씨는 李海ㅁ를 사문(査問)위원회에 부친 결과 무급 2개월간 정직을 명하였다고 입법의원에 보고하였다.
이러한 장면은 이 초안 내용을 신중히 엄격하고 권위 있게 검토하여 민중의 원성을 규정 처단하도록 하여야 할 마당에 있어서 한 가지 난센스로만 볼 것인가?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 등에 대한 특별법률조례기초위원회를 두자고 가결할 때와는 딴판으로 많은 수가 이시간에 이르러 어딘지 모르게 일종의 불□를 정치적 감정적 암류(暗流)에 휩쓸리는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면 초안 내용 토의에 들어가서는 어떠하였는가? 여기서 먼저 기초위원장 정이형 씨의 초안기초 취지설명을 소개하기로 한다. 동씨의 설명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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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에서 해방의 흥분은 벌써 1년 반이나 경과한 오늘날,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쟁범죄자 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를 제정하려 함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불무(不無)하다.
실행의 책임을 가진 행정당국의 진의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만은 유감이나 40년간 압박에 눌리어 살던 순량한 민중의 감정을 완화하며 시시각각 파멸에 □하여가는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냉엄한 두뇌와 명철한 비판에서 감정에 흐르지 않고 이성적 판단 밑에서 가장 공평하고 완전한 정의의 역사적 입장을 기하려고 노력하였나니 ① 부일협력자의 규정은 극히 광범하고 제재는 극히 관대히 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북조선에서 해방 직후 친일파청산을 단행할 때에 범위는 좁게 하고 제재는 엄격히 한 결과, 당시의 친일파들은 반동폭동까지 일으켰으며 금일 북조선의 현상은 용서받은 친일분자들이 공산당으로 진출하여 실지로 정권을 파악하게(잡게) 되어 북조선에 반동적 혼란이 왕왕 일어나게 되는 것은 친일파숙청이 불철저한 데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기초위원회에서는 과거 일정시대에 날뛰던 친일분자를 총망라하여 당분간 최소 3년간은 정계의 지도층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공민권만을 박탈하는(3년 이상 10년 이하) 극히 가벼운 제재를 입안하였고 ② 민족반역자의 규정은 극히 작은 범위에 한하였고 제재는 조금 엄중히 하였다.(그 재산을 몰수하고 5년 이상 유기 혹은 무기의 징역 또는 流刑에 처함) 그러나 실은 극히 가벼운 방축에 불과한 유형(流刑)이 대다수이겠고 극히 소수의 극형으로 대간흉(大奸凶)을 베어 민족 전체의 감정을 풀어보려는 데 그쳤다. 그리고 재산몰수를 한 것은 이조 말년 봉건귀족의 악질잔재를 세탁하고 일정 40년간 착취악마를 근절하려는 것이다. ③ 전쟁범죄자의 규정은, 조선은 본래 승전국이 아니므로 소수 악질분자에 국한하였으나 제재는 엄중히 하였다.(그 재산은 몰수하고 공민권을 박탈하고 3년 이하 유기 혹은 무기 流刑 또는 사형에 처함) 특히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 선두에서 중국인에게 박해를 주고 민족 장래에 악감정을 남겨놓은 그 행위는 민족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
④ 간상배 모리배에 대한 규정은 광범위로 유감없이 총망라하였으나 그 실은 통제경제와 자유경제를 병행하는 금일의 경제조직하에서 합법적 상매(商賣)를 하는 것이라는 견지에서 부지불식간에 범한 행위를 추궁할 것은 곤란한 것이다. 그러나 민생문제를 위협하는 경제교란을 방지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정업(正業)에 돌아가 근로소득으로 안정생활을 영위할 각오를 가지게하기 위해서는 제재를 엄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그 재산을 몰수하고 공민권을 박탈하고 3년 이상 유기 혹은 무기의 流刑 또는 벌금추징금을 부과함. 벌금추징금은 노력으로 ㅁㅁ함을 허락하되 검사 또는 판사가 결정함) 그럼으로써 재산몰수를 어디까지 추구하여 철저히 몰수하는 동시에 그 중 최악질분자는 정직한 생활을 하는 국민과 격리하는 유형(流刑)을 안출하였으며 또는 교활한 간상배의 재산은닉을 방지하기 위하여 벌금추징금으로 노역(勞役)에 ㅁㅁ를 부가하였다.
⑤ 초안은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등의 규정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동장까지도 포함하여 나열식으로 하였는데 동장이라도 도지사 한 자보다 더 악질자가 있었던 까닭이며 세목적(細目的)으로 구별하면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행법에 있어서 일반으로 공민권을 박탈한 것은 우리 민족의 진의를 반영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는데 차등(此等) 악질분자를 정계에서 제외하지 않으면 아니 될것이라는 견지에서 나온 것이다. 재산몰수를 병행하게 한 것은 민족반역자 전범자 간상배의 그 소유재산이 전 국민의 고혈의 집적이요 또는 비근로소득이므로 의당 정부에 속할 재산인 고로 당연히 몰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1개년간 생활비를 공제하여주게 한 것은 역시 관대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유형 처분도 역시 관대한 처분이다. 즉 유형지 내에서 자유생활을 허용한 것은 우리 조선역사에서 흔히 보는 인습적 행형(行刑)의 폐단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재판소를 입법의원에서 설치하게 한 것은 최대한도로 효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한 특별조치로 한 것이다. 기초위원회로서는 부일협력자의 수를 전 국민의 약 0.5퍼센트 10만 내지 20만, 민족반역자의 수를 약 0.003퍼센트 1000명 내외, 전범자 수를 약 200~300명, 간상배의 수를 약 0.005퍼센트 1만 내지 2만~3만 명 정도로 가상하여 보았다. 공민권을 박탈하는데 있어서도 지도급이 아닌 하급 관공리, 하급의 노무자로서 행정부문과 산업부문에 참가하여 생활에 지장이 없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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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기초취지 설명을 하고나서 정 의원은 최소한도의 인민의 숙적을 희생함으로써 절대 다수의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천손만대(天孫萬代)에 대의명분을 세우고 정의와 양심을 살리려는 성의에서 초안을 기초하였다고 엄숙하게 부언하였다. 이 취지설명과 부언을 들을 때 과연 감정에 흐르지 않고 민족장래를 생각하여 가장 이성적 해결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 우리는 수긍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초안의 규정내용에 있어서 기술적인 면에 미숙한 점이 없지 않았고 또 규정한계가 명확치 않았음은 일반여론이 인정하는 바였다.
그리하여 제32차 본회의에서 기초위원장 정이형 의원과 여러 의원 간에 초안을 중심으로 일문일답이 전개되었을 때 원세훈 의원으로부터 부일협력자 규정에 “한일합병 이후부터 해방 당시까지 일제시대에 있어서 좌기(左記)에 해당한 자로서 일본 또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동포에게 해를 끼친 악질행위를 한 자를 부일협력자로 규정함”이라 해놓고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의원(貴族議院) 의원(議員) 중추원 참의와 고문 도회의원 부 읍 도 면협의원을 비롯하여 동장 이장 구장까지 나열식으로 쭉 늘어놓아 일반에게 구장까지 친일파로 넣는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이 규정을 자세히 검토하면 구장까지 포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귀족의원이나 중추원 참의도 안 걸릴 수 있게 해석할 수 있다.
즉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면 그만일 수도 있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만큼 쓸데없이 범위만 넓게 잡은 폐단이 있다고 일시(一矢)를 던졌던 것이다. 일문일답시에 관선의원측은 거의 잠잠히 있었고 주로 민선의원 중에서 많은 질문이 연속되었다. 친일파 간상배 등의 규정상 건설적인 질문을 한 예를 든다면, 다만 홍성하(洪性夏) 의원이 “간상배 조항에 해방 이후 적빈자(赤貧者)로서 100만 원 이상을 소득한 자를 규정하였는데 그 명확한 한계기준은 어디에 두었나”라고 발언한 것뿐이었을까. 이 이외의 민선의원의 질문 가운데에는 친일파 규정조례를 제정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의도에서 발한 질문이 아닌가 의아케 한 질문이 많았다. 즉양제박(梁濟博) 의원은 “부일협력자 규정에 동장까지 포함시키면서 어찌하여 황민교육을 시킨 초등학교 교원, 초등학교에 자제를 보낸 학부형, 창씨한 사람, 황민서사(皇民誓詞)를 읽은 사람, 일본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사람은 왜 적용범위에 넣지 않는가?”고 질문을 발하는가 하
면 홍성하 의원은 동 조례의 규정을 받을 자는 약 25만 명이라고 하는바 재판에 시간이 걸릴 것이니 오는 7월 1일에 실시될 예정인 남조선 보통선거에 큰 혼란을 일으킬 우려는 없는가“라고 질문을 발하였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그 뒤의 일이지만 하지 중장이 미국정부당국과 협의차 귀국하였다가 착임한 후, 보통선거법을 급속히 제정 통과시키라는 요청차 당도하였을 때 신기언(申基彦, 관선) 강순(姜舜, 관선) 양 의원이 보통선거법을 제정하여 실시하기 전에 민족반역자 친일파 등을 숙청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하는데 이들 숙청에 각별한 편의를 제공하여주기 바란다고 말하였던 일이 있다.
이 말에 하지 중장은 친일파 등 숙청은 여러분 조선사람 자신이 할 일이고 미군으로서는 관여할 바 아니라고 답변하였는데, 이때 황보익(黃保翌, 민선) 의원은 신, 강 양 의원의 말은 입법의원 전체의 의사가 아니라고 하지 중장에게 변명하였다. 그래서 하지 중장이 퇴석한 후 관선의원 측에서 황의원은 남의 말은 의원 전체의 의사가 아니라고 하며 자신 말은 의원을 대변하는 것 같은 태도로 말하였으니 그 무슨 월권이냐고 추궁하게 되어 양편에 논쟁이 벌어져서 이때 회의실은 수라장으로 변한 일까지 있었다.
이와 같이 관선의 일부 의원과 민선의원 중 대다수의 의원 간에는 비단 이 문제뿐만이 아니었지만 특히 이 조례안을 위요(圍繞)하고서 일층 대립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급기야 이남규 의원을 1개월간 출석정지와 자격심사위원회 위원장직 박탈의 징계처분이라는 구렁텅이에 빠뜨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입법의원 개원 이래 처음 되는 대혼란을 일으킨 사건이라 해서 그 당시 이남규 의원의 실언사건 운운의 보도가 각 신문에 대대적으로 게재된 바 있었지만 사실인즉 실언사건이라기보다도 화해할 줄 모르는 민선의원측의 고집적 태도에 의한 양측 간의 대립관계로 말미암아 생긴 희생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남규 의원은 지난 3월 21일 제35차 회의에서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 등에 대한 특별조례 초안에 대한 대체(大體) 토론이 있었을 때 발언권을 얻어 “이 초안은 완전치 못하고 그 한계가 명확치 못하다. 그러므로 이 초안대로 법령을 제정한다면 걸리려면 누구나 걸릴 수 있고 또 안 걸리려면 전부 안 걸릴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그 일례를 들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본에 붙어서 또는 우리 민족을 해한 악질분자를 부일협력자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완용이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본에다가 우리 조선을 팔아먹었다고 할는지 모르겠다. 그는 총리대신에 있으니까 자기 신분이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국제정세하에 있어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해서 인장을 찍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반드시 자기이익을 위해서 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을 계속하는 도중에 관선의원 중에서 장자일(張子一) 박건웅 김학배(金鶴培) 등 여러 의원이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며 “하필 판백이 이완용이 같은 놈을 예를 들다니 웬 말이냐. 취소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남규 의원은 자기의 결론을 듣고 난 뒤에 취소 여부를 말하라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때는 벌써 감정이 감정의 꼬리를 물고 감정 싸움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판에 장자일 의원이 몹시 흥분되어 연거푸 취소 안하면 제명처분을 시키라고 외칠 때, 그 앞에 자리 잡고 있는 황신덕(黃信德) 여자의원이 “왜 이러시오”라고 말리다가 장의원에게 이쪽 방청석까지 찰싹 하는 소리가 들리도록 손등을 얻어맞은 일도 있다. 이날 회의는 험악한 공기로 인하여 유회되고 말았다.
하여튼 이남규 의원이 이완용을 예로 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얼핏 듣기에 잘못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으나, 그 다음날 이의원은 다른 의원에게 이완용이의 예와는 반대로 “제2차전시 중에 일본 압정에 못 이겨 순박한 농민은 할 수 없이 송탄유(松炭油)를 공출하느라고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냈다. 그래서 도처에 적산(赤山)이 많아졌다.
그러면 농민은 송탄유를 공출하지 않으면 철창에 가두는 바람에 나무를 찍어냈으니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완용이를 누가 민족반역자라고 아니 할 것이며 순박한 농민을 누가 민족반역자나 친일파로 칠 것인가. 그러므로 이 초안은 한계가 불분명한 만큼 그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걸리려면 누구나 다 걸리고 안 걸리려면 누구나 다 안 걸릴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결론서를 들었던 것이다.
이남규 의원이 관선의원측에서 취소한다고 할 때에 자기는 이완용의 옹호자가 아니므로 결론을 말하기 전에 취소하면 영영 자기는 이완용 지지자 같이 되니 취소할 수 없다고 종시(終始) 취소를 하지 않던 태도와 앞서 결론으로 미루어서 이의원의 본의는 원세훈 의원의 ‘일시(一矢)’ 와 동일한 취지에서 발언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 초안은 한계가 불분명하였고 불완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관선의원측에서는 어찌 결론을 굳이 듣지 않고 취소를 강경히 주장하였으며 또는 다음날 서면을 통해서 누구나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안 후에도 징계처분에까지 처하게끔 되었는가? 나는 모 관선의원으로부터 민선의원놈들 버릇 좀 가르쳐 놔야지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민족반역자 등 규정조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민선의원측에 대한 일종의 제재 목적에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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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난 후 관선의원측의 이 초안은 법으로서의 한계가 불분명하다는 의견과 보통선거법 제정에 앞서 친일파 규정조례가 먼저 제정되는 것을 환영치 않는 민선의원측의 시간적 지연 작전은 이 초안을 제2 의회에 부치지 않고 손쉽게 다수결로서 수정케 하기 위해서 기한부로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白寬洙, 徐相日 洪淳徹 梁濟博 吳龍國 趙軫九[이상 민선] 李鳳九 李應辰嚴雨龍 黃信德 邊成玉 金元容 金朋濬[이상 관선])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특별조례기초위원회와 임시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金朋濬) 임시행정조직법기초위원장 신익희(민선) 등 연석(連席)수정위원회에 회부하였다. 그러나 기한보다 훨씬 늦게 지난 4월 24일 제58차 본회의에 연석수정위원회로부터 수정안이 상정되었다.
이것이 곧 초안에 대한 세칭 수정안이라는 것으로 전문 5장 제16조로 되어 있는데, 초안과 각별히 다른 점은 ① 민족반역자와 부일협력자 규정에 있어서 당연범(當然犯)과 죄적(罪跡)이 현저한 자로 각각 구분하여 규정하였고 ② 민족반역자 규정 가운데 왕공작(王公爵)을 받은 자와 건국을 방해할 목적으로 공사(公私) 시설을 파괴하거나 다중 폭동으로 살인 방화한 자 및 선동자라는 항목을 넣었고 ③ 제5장에 가감례(加減例)라 하여 이 수정안에 규정되어 있는 범죄자로서 개전(改悛)의 정이 현저하거나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으며 타인을 모해할 목적으로 이 수정안에 규정한 범죄에 관하여 허위의 신고를 한 자는 당해 신고내용에 해당하는 범죄규정으로 처벌한다는 것이 새로 삽입되어 있으며 ④ 민족반역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을 몰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박탈하고, 부일협력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또는 10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죄상에 의하여 재산의 몰수를 병과(倂科)할 수 있고, 전범자는 민족반역자와 동일하게 처벌하고, 간상배는 자산을 몰수하고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하의 공민권을 박탈하며 재산을 몰수할 수 없을 때에는 그 ㅁㅁ을 추징한다고 초안보다는 훨씬 중한 처벌 등이 규정되어 있는 점이다.
이 수정안에 대한 대체 토의에만 4일간을 요(要)하였는데 불과 몇 의원을 제외한 다수 의원이 각자 의견진술에 등장하였다. 탁창혁(卓昌赫) 의원 등 관선의원측에서 이 특별조례 규정의 본 목적은 간상배를 제외하고는 해방 직전까지 민족에게 해를 끼친 인민의 적을 숙청하자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시설을 파괴하거나 살인 방화한 자 및 선동자를 민족반역자라고 규정한 것은 불순한 정치성을 내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 이유로서 해방 이전의 공적 시설은 일제의 것이었던 만큼 그 당시 공적 시설을 파괴한 것은 독립운동자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음으로 문제 외일 것이고, 해방 이후에 여사(如斯)한 행동에 대한 제재를 의도한 것에 틀림없는 것이다. 만약 이 규정대로 건국을 방해할 목적으로 그러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현행 법률로서 처벌할 수 있지 않는가 라고 이 규정에 강력히 반대를 표명하였고 또 제5장 가감례도 친일파나 민족반역자에게 처단에서 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염려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조문이라고 반대하였다.
이와는 정반대의 각도에서 민선의원측에서는 왕공작을 수작(授爵)한 자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한 것은 불가하다. (송종옥 의원은 만약 그대로 한다면 죽음으로써 반대하겠노라고 말하였다) 전승국이 아니므로 전범 규정은 안 될 말이며 전범으로 규정된 자는 민족반역자나 친일파로서 규정될 수 있으니 삭제하라. 이 수정안도 범위가 넓어서 그 해당자가 수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을 재판하려면 현 재판기구가 미비하고 또 시간이 걸리어 파란을 일으킬 것 같으며 그만한 수의 인재를 보충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바 적지 않으니 악질에 대한 벌은 엄하게 하되 범위를 좁게 해서 복수적 태도는 취하지 말자는 등 주장을 내세웠다. 한 가지 크게 모순된 것은 관선의원측에서 민족반역자 항목 중의 공사 시설을 파괴한 자, 살인 방화를 한 자와 선동자라는 규정을 삭제하자는 이유에 끝끝내 불긍(不肯)하면서 간상배는 국내 자재를 외국에 유출시킨 것이 아니며 또 현행법으로서 취급하고 있느니 만큼 특별조례로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수정안에 대한 대체 토론에 여운홍 의원이 “한국 말년에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 칠적은 다 죽었으나 큰 무덤에 묻혀 무덤 아래는 아직도 보아라 하는 듯이 호화로운 비석이 서 있는데 그들을 산 사람과 같이 처벌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그 사치스런 묘와 비석을 처치할 도리조차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놈들의 묘 앞에 놓여 있는 큰 비석을 깎아버리고 만고역적(萬古逆賊) 아무개라는 말뚝을 둘러 박는다든지…” 하고 말을 □□할 때 2층 방청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의사당을 진동시킨 광경은 감격적 장면이었다. 그 후 이 수정안을 비밀 무기명 투표에 의해서 선출된 서우석(徐禹錫, 민선 한민당) 장면(張勉, 관선 무소속) 김영규(金永奎, 민선 獨促) 김익동(金益東, 관선 한독당) 송진옥(宋鎭玉, 민선 한민당) 등 다섯 의원으로 구성된 재수정위원회에서 수정 제출한 재수정안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던 끝에 재수정안에 반대하는 관선의원측 대표 5명과 수정위원으로 하여금 절충케 하기로 되어 그 절충 결과를 김호(金乎) 의원이 “우리가 절충한 결과의 한 가지 주요한 것은 일제시대의 고등계주임 고등계형사 사법주임을 한 자는 죄적 여부를 불문하고 민족반역자나 친일파의 당연범으로서 징치(懲治)하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고 본회의에서 보고할 때 역시 방청석에서 일어난 그칠 줄 모르는 박수소리를 의원 제공(諸公)은 한 사람 빠짐없이 인민의 절규로 인식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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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의원측의 의향대로 선출된 전기 재수정위원의 재수정안을 채택해서 제2 의회에 부치느냐 수정안을 제2 독회(讀會)에 부치느냐 말썽이 많다가 여기서도 결국 다수결의 힘이 주효하여 민선의원측 의향대로 재수정안을 제2 독회에 부치기로 되어 5월 9일 제70차 본회의 때 막 제2 독회로 들어갈 때 민선의원측에서 이것은 뒤로 미루고 보통선거법을 먼저 심의하자고 떼쓰는 통에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었다. 장시간의 언쟁 가운데서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면 

▲ 김광현(金光顯) 의원(민선 獨促)―나는 민선의원이므로 민의를 잘 알고 있다. 지금 일설은 보통선거법을 속히 통과시키라고 부르짖고 있다.
▲ 홍성하 의원(민선 한민당)―두 분 말이 다 옳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사실은 일설은 보통선거를 하면 이 자리에 있는 관선의원은 한 사람도 당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공교롭게도 보통선거법을 먼저 통과시키자는데 반대하는 이가 대체 관선의원인 것을 보니 과연 민중의 소리는 옳다는 것을 통감하는 바이다.
▲ 원세훈 의원(관선 合委)―친일파 규정보다 먼저 보통선거법을 통과시키자는 심정은 무엇인가? 지금 서울시의 8 구청장 자리는 대체로 일제시대의 관리가 차지하고 있는 현상을 이용하여 보통선거법을 먼저 해서 어물정어물정 자기들의 안전책을 강구하자는 의도라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렇게 갑론을박을 되풀이하다가 역시 다수결로서 당분간 친일파 등 특별조례안은 보류하고 보통선거법을 상정하기로 되어 이틀 만에 이 법안에 대한 제1 독회를 마치고 지금은 오늘 특별조례안을 축조(逐條) 검토하였으며 내일은 보통선거법안을 축조 토의하는 식으로 병행시키고 있다. 어느 것이 먼저 과도입법의원에서 통과될 것인지 일반의 흥미를 끌고 있다.(5월 19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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