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박기서 씨 기증식 열고 감사장 전달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이걸 종이에 말아서 허리춤에 이렇게 넣고 갔어요. 들키지 않으려고.”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택시기사 박기서(70) 씨는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했던 이른바 ‘정의봉’을 손에 쥔 채 당시를 회상했다.
박씨가 40㎝ 길이의 몽둥이를 감싼 흰 종이를 벗겨내자 이번에는 더 낡은 종이가 정의봉을 덮고 있었다. 이 종이에는 검은 붓글씨로 8자의 한자가 적혀 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는 목숨을 바쳐라)이라고 적힌 이 종이를 펼쳐 보인 박씨는 “안중근 의사의 글”이라고 설명하고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안중근 의사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는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솜씨로 직접 글씨를 써넣었다고 한다. 그는 이 종이로 정의봉을 감싼 채 안두희를 찾아가 종이를 벗겨낸 뒤 실행에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종이 한쪽에는 작은 글씨로 ‘증 4호’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박씨가 안두희를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검찰이 쓴 글씨다.
홍두깨 모양의 정의봉에는 한글로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정성스레 보관해 글씨가 선명했다. 희미하지만 안두희의 혈흔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박씨는 종이에 감싼 정의봉을 허리춤에 감추는 모습을 직접 재연해 보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한 뒤 정의봉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 측은 기증식을 열고 감사장을 전했다.
작은 키에 머리가 하얗게 센 박씨는 박물관에서 전달한 감사장을 손에 쥔 채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쑥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안두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1년이 채 되지 않은 1949년 6월 26일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자리인 서울 서대문 경교장에서 권총을 쏴 김구 선생을 살해했다. 이 일로 안두희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51년 2월에 특사로 풀려나 육군 중령으로 복귀했다.
백범의 암살범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인천 중구 신흥동 자택에서 박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숨졌다
박씨는 사건 발생 7시간 만에 자수하고 “백범 선생을 존경했기에 안두희를 죽였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당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jaeh@yna.co.kr
<2018-10-24> 연합뉴스
☞기사원문: 김구 암살범 처단한 ‘정의봉’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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