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 통해 공론화, 대화 압박해야”
[프라임경제] 최근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이후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항의와 반한 감정이 극에 달한 모양새다. 이를 계기로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당시 하급심에 멈춰 있던 관련 재판들이 급물살을 타면서 반작용처럼 ‘가해자의 논리’를 앞세운 일본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적 공분도 불이 붙었다.
지난 20일 피해자의 입장이 철저히 배제된 한일위안부협정과 이를 바탕으로 세워졌던 ‘화해와 치유재단’이 공식적으로 해산 절차를 밟는 등 우리 사회는 늦게나마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옳은 결론을 이끌어내기까지 집단지성의 힘을 갖춘 시민들의 힘이 있었다. 전범기업 관련 이슈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공론화를 시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역시 그 중 하나다.
21일 국회에서 만난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이 진정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원한다면 대화에 진심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와 그 지휘 아래 놓인 전범기업들이 정녕 가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본이 아닌 진정성을 갖추고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두고 김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있을 수많은 공방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재판이 단순히 전범기업 한 곳의 배상 여부를 넘어 다른 유사한 재판들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면서 “오는 29일 미쓰비시 강제징용 재판과 2건의 추가 재판이 진행되는 만큼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게 문제다. 일본 정부는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의 손해를 두고 보지 않겠다며 적반하장의 논리를 펴고 있다. 해당 기업들도 피해자들과의 대화를 거부한 채 버티기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김 책임연구원은 일단 가해기업들이 국내에서 활동 중이라는 것을 전제로 지분 압류 등 구체적인 배상 절차에 착수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기업 활동을 한 덕분에 소송 진행이 가능했다”면서 “신일철주금의 경우 2003년 포스코와 합작 설립한 PNR이라는 회사에 30% 가량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압류하는 식으로 배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강제집행을 통한 배상이 최선은 아니라는 게 김 책임연구원의 입장이다. 문제의 전범기업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 궁극적인 화해의 장으로 유도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종합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화해의 장으로 이들을 유도하는 게 피해자뿐 아니라 서로에게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라며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대응으로 볼 때 진정한 대화와 화해의 장은 요원해 보인다. 가해국 정부가 기업들의 편에 선 만큼 피해자를 대변할 우리 정부의 역할에 시선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 아베 총리와 각료들은 ‘구(舊)조선반도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쓰며 강제징용의 죄값을 희석하기 시작했다.
이에 김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정부의 소극적인, 때로는 안일한 현실인식과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는 입장이다.
그는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시도 등 일련의 행각에서 일본 정부는 시대를 역행하며 피해자를 모독해왔다”며 “논란이 있을 때마다 문제를 제기한 것은 우리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였고 담당부처인 외교부는 한일 외교에서 유독 소극적인 경향이 강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히 박근혜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것을 넘어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했다”며 “안타깝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과거의 소극적 행보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듯 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유난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적대적 반응의 배경은 무엇일까. 김 책임연구원은 아베정부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내부정치에 한일관계가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일본 정부의 반발 이면에는 아베정권의 주요 지지층인 우익 세력의 결집을 위한 일종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며 “특히 이번 판결이 한일 양국의 문제일 뿐 아니라 향후 중국, 필리핀, 대만 등 다른 강제징용 피해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에서 발목을 잡는 것은 일본”이라며 “제국주의를 앞세운 일본이 강제징용으로 주변국을 희생시킨 덕분에 전범기업들이 눈부신 성장을 거뒀다. 이후에도 냉전체제를 등에 업고 한 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한 일본이 지금껏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우리 일상에서 전범기업들의 서비스와 상품이 상당수 소비되고 있는 것에 우려도 드러냈다.
김 책임연구원은 “노동의 개념에는 자유노동과 노예노동, 그리고 강제노동이 있는데 자기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동을 하는 게 강제노동, 즉 강제징용”이라며 “이는 반인도적 범죄에 준하며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이런 폭거를 저지른 것이 전범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범기업들이 과거를 반성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들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며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시민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세계에 전범기업들의 실체를 알리면서 해당 기업들이 스스로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8-11-23> 프라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