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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연구소 독립성 보장 안돼…‘연구할 과거사’ 인식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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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
용역 형태 연구소 설립…진실규명 등 지속적 수행 한계
역사적 사건 아닌 외교 사안·보상·명예회복에 치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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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어떠한 관점도, 로드맵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는 건 출범 전부터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일입니다.”

지난 8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가 출범했다. 정부 산하에 생긴 첫 위안부 연구기관이다. 연구소는 국내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위안부 관련 기록들을 모아 데이터베이스(DB)화하고, 위안부 구술기록집을 외국어로 번역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연구소는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위기를 맞았다. 초대 소장인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연구소 사정을 잘 아는 주변의 연구자들은 “연구소의 독립성이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김 소장이 버텨내질 못했다”고 했다. 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진실규명이 필요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외교적 사안으로만 대하면서 휘발적으로 소비하고 있기에 생긴 일”이라며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5일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강 교수를 만났다.

그는 우선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알려지고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위안부 관련 기록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연구기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사를 주로 연구해온 강 교수가 위안부 문제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약 4년 전쯤이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서울대 인권센터장 정진성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본 측 자료가 아니면 자료를 구하기 너무 힘들다”고 해 자료 발굴을 도운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강 교수가 속해 있던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은 미 국립문서관리청에서 일본군이 1944년 9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포로로 잡거나 학살한 사실을 보여주는 영상을 국내 최초로 찾아내 올해 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4년 가까이 기록 연구를 하면서 그는 “장기적이고 통일성 있는 연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위안부 문제 백서’와 같은 기본적인 자료조차 내지 못하는 연구 환경에 절망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연구가 하나의 통일된 기관에서 이뤄지지 않고 교육부 산하의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와 여성가족부 산하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외교부 관계부처 등에서 부분적으로 위안부 연구 사업을 합니다. 그런데 1년짜리 용역 발주 사업들이 너무 많아요. 연구기관으로 선정된 곳이 용역을 준 뒤 1차 하청, 2차 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담당기관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관리기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지난 8월 출범한 위안부 문제 연구소 역시 용역 발주 형태로 설립됐다.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여가부의 위안부 관련 사업을 수주하는 ‘1년 위탁사업’ 형식으로 출발했다. 김창록 소장은 연구소 출범 후 국내외 기관의 위안부 관련 자료들을 모아 그 자료의 의미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해설하는 웹매거진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기관장 결재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강 교수는 “독립된 연구소라고 해놓고 연구자가 권한을 부여받지 못하는 구조로 짜놓았기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선언을 돕고 그들의 증언을 기록화하는 동안 정부는 위안부 피해 해결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강 교수는 “정부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진실규명이 필요한 과거사’가 아니라 외교적 문제 혹은 피해자 보상·명예회복 문제로만 보기 때문에 위안부 연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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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일본 출연금 10억엔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의 해체가 결정된 지난달 21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한 시민이 어루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을 ‘나쁜 놈’이라고만 말하면 쉽겠죠. 하지만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 ‘조직화된 국가폭력’이자 ‘전쟁범죄’라는 거예요. 1945년 이전에 위안부들이 끌려가고 버려진 것도 봐야 하지만 그 이후에 국가의 억압과 무관심도 봐야 해요. 2011년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며 ‘행정부작위’ 판결을 했는데, 박근혜 정부 때 또 졸속합의가 있었잖아요. 위안부 문제를 현재화된 과거사 혹은 현재진행형인 과거사로 보고 진실규명을 계속해나가야 해요. 그러려면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기록을 모으고 진실규명을 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 일본과 외교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잘 풀어나가려면 연구를 통한 공신력 있는 기록을 쌓아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강 교수는 “일본은 정권이 바뀐 후에도 계속해서 한·일 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합의를 시도할 텐데, 정확한 기록이 토대가 돼야 우리 정부에서도 유리하게 합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피해 여성들이 증언을 하면 한국, 일본 모두 부정하지 않았어요. 역사수정주의 시대가 오면서 명백히 눈앞에 있는 피해자의 증언조차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경우 문서적 증거로 다퉈야만 해요. 아베 신조 총리 이전만 치더라도 일본 정부 인정·미인정 위안부 관련 연구자료는 총 1000여건이나 돼요. 이제 한국 사회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시민사회에만 의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기록’을 앞세워야 해요. 그래야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 “여러 기관 흩어진 관련 기록물 체계적 관리 위해
위안부 연구·기록·진실규명 법적 근거 마련해야” 

모두 43개 단체·기관 제각각
기록 수집·연구 등 사업 진행
“기록물은 증거로 가치 있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실규명을 돕고 훗날 외교분쟁을 해결할 카드로 쓰일 수 있는 위안부 관련 자료는 양은 적지 않지만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대 기록관리학과 대학원의 서연수씨 등은 시민단체와 정부기관들이 소장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조사하고, 어떤 체계하에서 관리되고 있는지를 분석한 연구자료를 2016년 한국기록관리학회지에 발표했다.

자료를 보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전 ‘정대협’) 등 위안부 관련 단체 6곳이 위안부 피해 기록 자료를 주로 생산해 보관하고, 영상화나 전시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29개 단체나 기관이 위안부 기록 연구와 관련돼 있으며 국가기록원 등 8개 정부기관이 피해 기록 보존이나 기념사업 지원을 하고 있다. 자료 형태는 문서, 영상, 피해 관련 물품 등으로 다양했다.

연구진은 “대부분 기관들이 위안부와 관련된 역사기록물과 기관의 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기록물들을 홈페이지에 등록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부에 해당한다”며 “기록물의 분류 및 목록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메타데이터 등을 사용해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또 “위안부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증거물 역할을 하고,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여러 기관의 위안부 관련 기록물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선 기록물 관리 기준으로 삼을 만한 규정이나 법령이 제대로 마련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록관리학회지에서 기록관리의 우수사례로 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경우에도 2001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기록물 관리 주체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건립할 것,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사료의 수집·보존·전산화, 조사 및 연구를 할 것 등이다. 심지어 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기념관의 자료에 대한 이용료를 받아도 된다는 내용까지 법에 명시돼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보면 진상규명위원회 구성 방법 및 절차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고, 정부·군이 보유한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공개하고 전문적 연구와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위안부와 관련된 법안인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를 주로 규정했다. 연구나 기록, 진상규명보다는 기념·기림사업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인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진실규명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관계된 사람들 중 온갖 방법으로 증거를 숨기거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야 진실의 파편이 드러나거나 관련된 증거들이 새로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사법부 판결과는 별개로 위안부 피해에 관한 진실을 학술적으로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2018-12-09> 경향신문 

☞기사원문: “위안부 연구소 독립성 보장 안돼…‘연구할 과거사’ 인식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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