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찾기까지 30여 년.
그 막막하고 험난했던 세월 동안 독립지사들은 수많은 말과 글을 남겼는데요.
앞서 들으신 간절한 노래에서처럼 나라를 잃은 애통함과 분노, 그리고 다시 찾겠다는 강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그 말과 글에 담긴 역사의 궤적을 김미희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 리포트 ▶
1910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일본에게 주권을 넘긴 그날, 나라 잃은 치욕의 역사는 시작됐습니다.
[강동민/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 통감부) 통감이었죠. 그 둘이 비밀리에 (1910년 8월 22일) 모임을 하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날 공포가 되는데요.”
경술국치의 부당함에 항거하는 애국지사들의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황현 선생은 “망국의 날에 죽는 선비 한 명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개탄했고, 홍범식 선생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항일투쟁도 본격화됐습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은 온 가족이 전 재산을 팔고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본가인 경북 안동의 임청각에는 고국을 떠나며 남긴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가문에서 독립운동가 10명이 배출되자 일제는 그 정기를 꺾을 목적으로 집을 관통하는 철로를 놓았고, 지금까지도 임청각은 반토막 난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항증/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 증손]
“우리가 열심히 했으니까 다음 사람도 열심히 하면 언제든지 나라 찾는 건 찾을 수 있다.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나라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백을 잃는 것”이라던 안창호 선생.
1919년 독립운동가들은 한데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고, 독립운동을 조직화합니다.
[김원봉/조선의용대 대장(1940년)]
“조선의용대 전통의 깃발을 꽂고 우리의 조국으로 진입하려는 것입니다.”
1945년,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처인 충칭을 떠나며 남긴 기록에는 감격과 희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낸다.”
“나라를 세우는 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자.”
“새 살림 차리어 고로 잘 살게.”
“새 민주국가 건설에 노력하자.”
MBC뉴스 김미희입니다.
<2019-1-1> MBC
☞기사원문: “대장부 제 한몸 아끼랴”…피로 써 내려간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