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책임연구원
10월 30일, 한국대법원은 마침내 긴 세월을 끌었던 사건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일철주금이라는 일본의 글로벌회사에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강제동원·강제노동의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1997년 일본에서 제소한 때로부터 21년, 다시 2005년 한국에서 제소한 지 13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1945년 12월 재일조선인들이 신일철주금의 전신인 일본제철을 상대로 미수금과 피해보상 등을 요구하며 협상을 시작한 때로부터 73년 만의 결론이었다. 다시말해 73년 만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자신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가 법적으로 구제된 것이다.
실은 너무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이 일한 대가를 받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그 사실 자체가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그 비정상의 시간을 정상으로 바꾸는데 이렇게 오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비단 시간뿐이겠는가. 피해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지원자와 시민들이 흘린 땀 역시 그 시간의 두께만큼 쌓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온 법원의 판단이기에 도중에 논리가 바뀐 것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식민지배로 인해 빚어진 강제동원의 피해를 확정하고 배상의 책임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구제 선언이라 평가할 만하다. 과거청산 또는 과거극복의 모범국이라 불리는 독일조차 독일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내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를 구제할 때도 ‘법적 책임’을 부정했다. 그런데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게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책임을 물었다. 개인의 권리 구제라는 측면에서 국제법상으로도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 나온 것이다. 국가나 전체의 이름으로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던 힘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라 하면 너무 과한 평가일까.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라는 쪽으로 시야를 돌려 이번 판결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10월 30일을 ‘1965년 체제’가 법적으로 파산 선고를 받은 날이라 규정하고 싶다.
‘1965년 체제’ 또는 ‘한일협정체제’란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 강화를 위해 식민지배 유산과 식민주의 청산 요구를 봉쇄하거나 억압한 체제였다. 식민주의 청산을 억압하던 ‘1965년 체제’가 냉전체제의 약화와 한국사회의 민주화로 인해 해체되는 과정에 있었으며, 올해 10월 30일을 기점으로 최종적인 법적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일 간에 새로운 국제법적 질서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아니면 양국이 동의하는 다른 해석이 필요하게 될 것이나, 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구나 향후 진행된 북일간의 교섭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해석과 실천적 해법을 둘러싸고 치열한 역사적·법리적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1965년 체제’와 같은 형식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1965년 체제’의 해체는 그 국제적 토대인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까지 위협할 수도 있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일제의 침략을 받은 국가들이 일본을 상대로 요구하던 전후보상이 사실상 봉쇄된 동아시아 국제체제의 성립이었다.
그런데 그 질서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균열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 역시 그러한 원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후견 아래에 있던 동아시아의 독재 권력들은 일본에 대한 자국민의 전후보상 요구를 억압해왔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 그것이 법적으로 가능해지게 되었다면 동아시아 민중들 역시 희망을 가지지 않을까.
대법원 판결이 나자 아베 정부는 연일 한국 정부와 사법부를 비난했다. 과거에는 한국정부가 ‘골대를 옮긴다’고 비난하다가 이제는 ‘운동장을 파헤쳤다’까지 독설을 퍼붓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게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만든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원리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우익들은 여론을 총동원해서 ‘반한’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북한의 지원을 받은 대법관들의 반일 판결’이니 한국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아베 정부가 이처럼 도를 넘어서 한국 정부를 때리는 데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한’ 또는 ‘혐한’ 여론을 조성해 내부적으로 우익들을 결집시킨 뒤 그 여세를 몰아내년에 헌법을 개정하려는 속셈이 있다. 필자도 처음에는 이런 수준에서 이해했으나 도를 지나친 과민반응을 보면서 ‘혹시 대법원 판결이 동아시아의 피해자와 유족들을 자극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문제가 동아시아로까지 확산된다면 일본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을 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부담이 경제적인 부담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해도 정치적, 도의적 부담은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이건 역으로 실천가들로 하여금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식민주의 극복과 전후보상 운동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며 아베 정부가 두려워하는 게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끝으로 필자 또한 그동안 현실이라는 한계 속에서 타개책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익숙해져 또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다수견해의 보충의견으로 제시된 판결문의 다음 한 구절은 죽비가 되어 나를 때린다.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 채 온갖 노동을 강요당했던 피해자인 원고들은 정신적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그 실상을 조사·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한 것일 수도 있다.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책임은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