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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독립운동 참여 금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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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중 대주교 3·1운동 100주년 담화
“침략전쟁 참여·신사참배까지 권유”

0220-1-1

▲ 김희중 대주교

한국 천주교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과거사를 참회하고 사과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20일 발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담화를 통해 “백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김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한국 천주교가 일제 강점기의 천주교 잘못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천주교는 2000년 ‘쇄신과 화해’라는 과거사 반성문을 발표했지만 포괄적인 형식을 취했다.

천주교는 1919년 당시 3·1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족대표 33명은 천도교(15명), 기독교(16명), 불교(2명) 인사들만으로 구성됐다.

김 대주교는 “외국 선교사들로 이뤄진 한국 천주교 지도부는 일제의 강제 병합에 따른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도, 교회를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다”며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에도,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들도 기억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이는 한국 천주교회의 지난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좌절에도 쓰러지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던 그들을 본받고 따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우리는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의 다름이 차별과 배척이 아닌 대화의 출발점이 되는 세상, 전쟁의 부재를 넘어 진정한 참회와 용서로써 화해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 한반도에 참평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한말과 일제시대 때 43년간 한국 가톨릭 수장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뮈텔 주교(1854~1933)는 1919년 3·1운동 직후 서울 용산 대신학생들을 만나고 난 뒤 쓴 일기에서 “한국 학생들은 나를 붙잡고 그들의 나라가 이렇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음을 설명하려 했다. 어떤 학생들은 울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정말로 무서운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간청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차라리 신학교를 떠나라고 했다.”고 적었다. 뮈텔은 또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고한 문서에서 “선의의 소수 애국자를 제외하면 자칭 ‘의병’들의 대부분은 약탈자이거나 산적들인 것이 틀림없다”고 적었다.

이 때문에 3·1운동 뒤 상해임시정부에선 내무총장 이동녕의 명의로 천주교인들에게만 보내는 ‘천주교 동포여’라는 공포문에서 “전 한족이 다 일어나 피를 흘리며 자유를 부르짖을 때 어찌 30만 천주교 동포의 소리는 없느냐”고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다.

뮈텔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의 천주교 신자 자격을 박탈해 종부성사(죽기 전에 주는 천주교 의식)마저 거부하고, 안중근의 동생 안명근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꾀하고 있는 사실을 일제 아카보 장군에게 밀고(1911년 1월11일 일기)하는 등의 친일 행적을 보였다. 2010년 ‘안중근의사 순국 100돌 추모 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은 뮈텔주교의 안중근 관련 행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김희중 대주교 담화문

3·1 운동 정신의 완성은 참평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올해 우리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각계각층에서 활동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독립운동을 재평가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백 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조선 후기 한 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를 겪고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천주교회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 까닭에 외국 선교사들로 이루어진 한국 천주교 지도부는 일제의 강제 병합에 따른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도, 교회를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습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합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에도,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들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기억하려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의 지난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좌절에도 쓰러지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던 그들을 본받고 따르기 위함입니다.

3·1 독립 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독립이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단계라고 했습니다. 신분과 계층, 이념과 사상, 종교가 다르더라도 우리 민족은 독립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 마주한 민족의 또 다른 고통, 곧 분단과 전쟁, 오랜 대립과 갈등을 겪었으며, 이제 이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참평화를 이루기 위한 과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의 다름이 차별과 배척이 아닌 대화의 출발점이 되는 세상, 전쟁의 부재를 넘어 진정한 참회와 용서로써 화해를 이루는(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200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9항 참조)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 한반도에 참평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2019년 3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2019-02-20> 한겨레 

☞기사원문: “천주교 독립운동 참여 금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 

※관련기사 

☞경향신문: 김희중 대주교, 천주교 친일행위 등 사죄 “민족의 고통과 아픔 외면했다” 

☞경향신문: 김희중 대주교 공개 사과 “천주교 독립운동 참여 금지 반성 

☞연합뉴스: “천주교, 독립운동 참여 금지…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 

☞카톨릭프레스: 천주교 주교회의, “독립운동에 제 구실 못했음을 고백” 

☞서울신문: “독립운동 참여금지, 신사 참배 권고를 사죄합니다” 

☞MBCNEWS: 김희중 대주교 “천주교 독립운동 참여 금지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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