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3·1운동 100주년 기획전Ⅱ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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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 식민지역사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획전Ⅱ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어버이날을 맞아 강제동원피해자와 유족들의 통한을 담은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기획전을 개최합니다.

일제의 아시아태평양침략전쟁 때 일본과 중국, 동남아, 남양군도와 사할린 등 머나먼 이역으로 끌려가 희생당한 수많은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장에서 탄광에서 또 공장과 공사장에서 굶주림 속에 강제노역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숨져갔으며, 돌아온 사람도 상흔을 안은 채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끌려간 어버이의 얼굴조차 사진으로만 기억해야 했던 갓난아기가 이제 흰머리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일본정부는 진정한 반성은커녕 과거사를 부정하고 이를 정치에 이용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피해자와 유족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기록과 유해를 찾아 헤매고,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지난한 소송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정의를 향한 투쟁에 함께해 주십시오.

■ 전시개요
1. 전시명 : 3․1운동 100주년 기획전Ⅱ 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2. 장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3. 기간 : 2019.5.8.(수)~7.28(일)
4. 주최 :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식민지역사박물관
5.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6. 후원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7. 주요내용 : 1부 빈 상여에 실어 보낸 한恨의 세월 | 2부 끌려간 사람들, 남겨진 이야기 | 3부 죽은 자의 명부, 돌아오지 못한 유골 | 4부 강제동원의 현장을 기억하라 | 5부 살아남은 자의 끝나지 않은 투쟁
※ 개 막 식 : 2019.5.8.(수) 오후 14:00 | 1층 돌모루홀
※ 식전행사 :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과의 오찬 | 12:00 | 5층 강의장
※ 특별참여행사 : 헌화행사 – “아버지가 건넌 바다에 카네이션을 바치다”, 추모행사 – “꼭두” 만들기

■ 전시 세부 구성
1부 빈 상여에 실어 보낸 한恨의 세월
– 2011년 5월 8일 한일시민사회가 함께 치른 강제동원 희생자 합동장례식 때 사용했던 “전통 상여” 특별 전시
– 2011년 5월 8일 “일제하 강제동원 희생자 합동추모제-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기록영상 상영

2부 끌려간 사람들, 남겨진 이야기
–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20명의 증언 소개
– 강제동원은 피해당사자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을 해체시키고, 자식들의 삶조차 파탄에 이르게 한 비극적인 경험이었음을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함

3부 죽은 자의 명부, 돌아오지 못한 유골
– 강제동원 피해유족들은 부모형제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명부와 유해를 찾아 헤매고 있는 현실을 보여줌
– 일본과 국내에 보관중인 다양한 명부 속에 남겨진 피해자들의 기록을 통해 유족들이 발견한 강제동원 피해의 실상을 전달함
– 유해라도 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유족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사실과 이에 재판투쟁에 나선 경위를 살펴봄

○ 4부 강제동원의 현장을 기억하라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점령지와 강제동원 지역 지도 게시
–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20명의 동원지 소개

○ 5부 살아남은 자의 끝나지 않은 투쟁
– 강제동원 피해생존자와 유족들의 재판 투쟁을 소개함
– 헛되지 않은 10년간의 투쟁:군인․군속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 강제노동과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이들의 기나긴 싸움: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 손해배상 청구소송
– 한일협정의 장벽을 넘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신일본제철주식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 어린 나이에 군수공장으로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 재발방지를 위한 기록 남기기 역사투쟁:야스쿠니무단합사 철폐소송

○ 유물전시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관련기록 : 명부, 우편저금통장, 군표, 탄원서 등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의 재판투쟁 관련 서류철 60여권
– 피해자들의 재판투쟁을 기록한 자료집, 증언록, 회고록 등

○ 증언영상 : 증언자 5명, 상영시간 20분
①김복한 : 192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랐다. 1945년 1월 북산면 서기에게 소집영장을 받고 용산 육군30부대에 입대해 중국으로 끌려갔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으로 모진 고통을 겪었다. 미군에 무장해제 당해 수용소에 보내졌다가 1946년 4월에 귀국했다.(- 촬영일 : 2010년 2월 28일, – 장소 : 자택)

②김행진 : 1922년 전남 영암군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1941년 8월 순사에게 끌려가 군대에 입대했다. 용산에서 6개월 간 군사훈련을 받은 후 1942년 3월 고사포 부대에서 훈련받고 솔로몬제도 부겐빌 섬 격전지로 끌려갔다.(- 촬영일 : 2008년 5월 30일, – 장소 : 인천 중구 노인복지회관)

③김희종 : 1925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44년 면사무소 서기가 강권하여 징집영장도 없이 군대에 끌려갔다. 사이판에서 미군 공습을 받고 포로가 되었다가 1946년에야 귀국했다. 일본군이 사망자로 처리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2006년 야스쿠니합사 무단합사 철폐소송에 나섰다. (- 촬영일 : 2007년 2월 20일, – 장소 : 자택)

④이규철 : 1925년 경남 울산군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교사로 있던 중 1945년 8월 만주 북안 부대에 끌려갔다. 입대 후 폭발물을 안고 전차를 폭파하는 자폭특수대 훈련을 받았다. 해방을 맞았으나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세레칸까지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1948년 12월말에 나호트카항을 출발해 1949년 2월에야 38선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촬영일 : 2004년 10월 29일, – 장소 : 자택)

⑤이병주 : 1925년에 평양시에서 태어났다. 만주에서 취업 중 강제 징집 당했다. 소만국경에서 소련군에 무장해제 당한 후 1945년 9월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1948년 12월에 귀국길에 올라 1949년 2월 38선을 넘어 귀국했다. (- 촬영일 : 2003년 11월 1일, – 장소 : 민족문제연구소)

○ 생존피해자의 육필 진술서 전시
①김원목 1924년 1월 20일 강원도 삼척 출생: 1945년 1월 삼척경찰서 일본인 순사에게 징병영장을 받고 경성 용산 조선 제30부대에 입대. 중국 북부 정주에 배치되어 3개월간 군사훈련 후 파괴된 교량 복구 작업에 투입. 해방된 후 포로로 억류되어 1946년 4월 귀국.

②김행진 1922년 6월 8일 전남 영암 출생

③김효규 1922년 4월 7일 경북 의성 출생 : 1945년 징병 대상자가 되어 경북 의성에 있는 학교에서 군사훈련 받고 일본 오사카 고사포 중대에 배치됨. 부대이동 명령으로 서울 청량리에서 기차로 나진으로 이동. 소련군의 상륙으로 후퇴, 자력으로 남하하여 귀가.

④오행석 1919년 2월 15일 전남 장성 출생: 1942년 5월 포로감시원으로 타이 포로수용소에 배치됨. 해방 후 전범자로 몰려 창이형무소 등에 수감, 무혐의로 석방. 스마트라 북부 사반도 비행장 공사에 3년간 강제노역 후 귀국함.

⑤이병주 1925년 3월 25일 평양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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