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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징집도 분한데 야스쿠니 합사라니”…유족들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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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태평양 전쟁 강제징집 전사자 유족들
“나중에 아버지 야스쿠니 합사된 것 알아”
“강제징집 당한 것, 일왕에 충성한 것 아냐”
‘야스쿠니신사서 이름 빼달라’ 일본서 소송
“해결 못하고 아버지 만나게 될까 서글퍼”
오는 28일 도쿄지방법원서 1심 선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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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이명구 씨가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5.08.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다가 불귀의 객이 된 어버이의 이름을 되찾으려는 이들이 있다. 태평양 전쟁에 강제징집 됐다가 전사한 고 이낙호씨의 아들 명구(81)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뉴시스와의 만남에서 “꿈에서라도 가족들 모습을 보고 싶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씨는 경기 여주에서 소마차 끄는 일을 하다가 1944년 1월20일 일본군에 끌려가 전장에 내몰렸다고 한다. 이후 그는 남양군도 팔라우 섬에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를 일본군에 데려가려고 여러 번 사람이 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날도 아버지를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왔기에, 다른 마을에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러 나갔어요. 아버지가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할머니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왔을 때 이미 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죠.”

이씨가 일본군에 끌려간 이후 할머니는 오열했고, 명구씨는 끌려가는 아버지를 잡지 못했던 것이 원통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당시 이씨는 6살이었다. 이씨가 강제징집된 이후 가족들은 친척집에서 곁방살이를 해야 했다.

해방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씨 가족에게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이씨가 강제징집된 이후 병이 생긴 명구씨 어머니는 통지서를 받은 얼마 뒤 숨졌다. 명구씨는 어머니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머잖아 어머니 뒤를 따라간 동생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안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안정된 직장을 잡고 강제징용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을 때, 명구씨는 아버지가 1959년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음을 알았다.

“왜 우리 아버지를 일본 사람 취급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해방 직후도 아니고 14년이나 지난 뒤에서야 마음대로 합사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 죽게 만든 것도 억울한데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합사를 해서 일왕에게 충성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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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박남순 씨가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5.08. dadazon@newsis.com

1942년 일본군에 징집된 뒤 남양군도 브라운 섬에서 사망한 고 박만수씨의 딸 남순(76)씨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아버지의 이름을 되찾고 싶은 사람이다.

박씨는 남순씨가 태어나기 직전인 1942년 11월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됐다. 이때 남순씨 어머니는 만삭에 가까웠다고 한다. 남순씨는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던 가족들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를 부모처럼 돌봐주셨죠. 제가 어릴 때여서 그런지 아버지에 관한 자세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어요. 할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른다면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매일 문을 열어 두시곤 하셨죠. 충격이 크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 재혼하신 뒤론 이제 정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충격 받으셨던 것 같고요.”

명구씨와 남순씨는 현재 일본 법원에서 야스쿠니 신사에서 아버지 이름을 빼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 가액을 상징적으로 1엔으로 두고 진행 중인 소송이다. 이 사건 소송은 오는 28일 일본 도쿄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가 예정된 것으로 파악된다.

야스쿠니 신사 측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명구씨와 남순씨 등 유족들의 방문조차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들 이외에 다른 유족들은 같은 내용으로 2007년 제기한 소송이 2심까지 진행됐으나 일본 법원은 2013년 원고 패소 판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구씨와 남순씨는 어버이는 한국인이며 강제로 침략 전쟁에 끌려갔을 뿐 일왕에게 충성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하면서도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지금도 유족 대우를 하고 있지 않은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성토했다. 한국 정부에서도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대응해주길 희망했다.

“지금처럼 출입 자체를 통제하기 전 위패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갔을 때는 명부만 남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마음대로 야스쿠니 신사에 이름을 올렸으면, 최소한 유족 대접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해방이 됐지만 아버지의 혼백은 아직 식민지 시대에 갇혀 계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를 만나러 갈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아 서글퍼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해결이 될까. 이대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이 들어요. 우리 정부에서도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과거에 피해자들을 챙겨 봐주지도 않았고 지금도 죽은 사람 이름 석 자조차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져요.”(이상 남순씨)

s.won@newsis.com

<2018-05-08> 뉴시스 

☞기사원문: “日징집도 분한데 야스쿠니 합사라니”…유족들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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