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성명] EBS 김명중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라

2170

EBS 김명중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사 정립과 친일 청산의 열기가 드높은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켜야 할 책무를 지닌 교육방송에서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촛불항쟁에서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구호는, 3·1운동에서 주창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현된 ‘민주공화’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웅변하였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0년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칠가살(七可殺)’을 공표한 데 이어, 1941년 〈건국강령〉에 ‘적에 부화한 자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는 선거와 피선거권이 없음’을 명기해 부역자들이 척결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정신을 이어 받아 해방 후 제헌헌법 101조에서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의 근거가 마련되었고, 그 결과 법률 제3호로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이 제정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출범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천명한 친일파 청산의 대의를 실천에 옮긴 첫걸음이었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독립한 나라가 거쳐야 할 선택의 여지없는 최소한의 과정이었으며, 전 민족적 지지를 받은 시대적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경찰을 동원 반민특위를 와해시킴으로써, 민중의 열망을 배신하고 민족의 죄인이 되는 것은 물론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올해로 ‘반민특위 습격 사건’ 70년이 된다. 우리 현대사가 크게 어긋나는 변곡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정작 반민특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출범할 때 설립목적에 반민특위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못박았다. 민족사의 과제가 반민특위 해체로 미해결의 상태이고 그 후과가 엄청난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었다. 온갖 난관을 뚫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간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가 공론화하고 일제잔재의 청산이 화두로 떠오르게 된 현상은 주목해야 할 변화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극우세력을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친일’ ‘독재’를 비호하고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3월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망언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실언이라기보다 감춰야 할 속내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 신념의 소산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시대정신은 바뀌었지만 사이비 보수의 본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영방송인 EBS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김명중 사장이 나경원 류의 역사인식을 지닌 인물을 부사장에 임명한 것이다. 부사장으로 간택된 박치형이 누구인가?

2013년 EBS(당시 사장 신용섭) 〈다큐 프라임〉 제작팀은 반민특위를 심층 취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70% 가량 제작을 마치고 방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담당 김진혁 PD를 다큐 제작과 전혀 무관한 수학교육팀으로 발령내는 폭거가 일어났다. 다큐 제작은 중단되었으며 김진혁 PD는 떠밀리다시피 회사를 떠났다. 정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자 앞장서 제작을 중단시킨 장본인이 바로 박치형 씨다. 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권력에 굴종한 인물을 발탁한 김명중 사장의 언론관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연구소는 꼭 6년 전, 반민특위 다큐 중단 사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평을 낸 바 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짚어보는 다큐 조차 제작, 방영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자면 우리는 지금도 일제강점기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결국 이번 ‘독립유공자 다큐’에 대한 EBS 사측의 방해공작은 공영 교육방송의 근본을 해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역사범죄를 저지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6년 전과 똑같이 재차 요구한다.

김명중 EBS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기용을 즉각 철회하라.
지난 날 EBS의 과오를 성찰하고 전면적 개혁에 착수하라.
반민특위 다큐멘터리 제작을 즉각 재개하고 방영을 실천하라.

2019년 5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