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5 ]
조선병합을 담소로 해결한 능력자들, 헌병경찰
<병합기념 조선의 경무기관>
사진첩 <병합기념 조선의 경무기관>. 무단통치를 실행한 식민지 조선의 경무기관 현황과 헌병경찰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첩
식민지 조선 민중을 공포에 떨게 했던 무단통치의 핵심은 칼 찬 제복 차림의 헌병경찰이었다.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해산 후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투쟁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일제는 한국주차군헌병대로 편성되어 있던 헌병을 증강하기 위해 병력과 조선인 4천여 명을 헌병보조원으로 모집해 규모가 2배 이상 확대되었다. 주차군 헌병사령관이 경찰 수장인 경무총장을 겸하도록 하여 전체 헌병과 경찰을 통합 지휘, 의병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탄압할 수 있었다. 1910년 9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이 제도는 그대로 이어져 악명 높은 헌병경찰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지방의 각도에도 경무부와 경찰서가 설치되어 각도 헌병대장이 도 경무부장을 겸직했다.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뒤에도 헌병경찰제는 존속하여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조선총독이 절대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경찰서장이나 헌병대장은 재판절차 없이 즉결처분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조선인들을 효과적으로 순응시키고, 항일독립운동을 가혹하고 신속하게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경무총감부와 조선주차헌병대사령부
용산경찰서 헌병경찰
황해도경찰부의 이른바 ‘폭도토벌대’
이들은 항일 의병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는데 1913년 조선주차군사령부가 간행한 <조선폭도토벌지>에 의하면 1906년부터 1911년까지 6년간 조선의병 1만 7천여 명을 학살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일제는 끔찍한 조선인 학살의 주역을 ‘조선병합의 공로자’로 기념하기 위해 사진첩을 발행한다. 그것이 바로 1911년 12월 30일 발행한 <병합기념 조선의 경무기관(倂合記念朝鮮之警務機關)> 사진첩(이하 <사진첩>)이다.
<사진첩>의 발행자는 스기 이치로헤이(杉市郞平)라는 청일·러일전쟁에 참여한 군인으로, 1905년 인천 헌병분대장으로 조선에 들어와 제대 후에도 조선에 머물며 조선일일신문사 사장과 잡지사인 신반도 사장을 하면서 <사진첩>을 발행하였는데 이에 앞서 <병합기념 조선사진첩>을 간행하기도 하였다(민족사랑 2016년 8월호 참조).
<사진첩>에서 스기 이치로헤이는 “조선을 합병하는 것은 한반도의 민중을 구하고 동양평화를 위한 것”으로 “이러한 대업을 담소(談笑)로 해결한 것은 그야말로 우리 제국이 자손에게 영구히 전해야 할 기념비적인 역사”인데 “이는 반도 경찰국의 헌병과 경찰 여러 관리들의 공훈”이라고 밝혀 ‘조선병합의 공훈’을 ‘헌병경찰’의 공로라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자손에게 전할 만 한가보가 될 것”임을 강조하여 <사진첩>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취지로 발행된 <병합기념 조선의 경무기관> 사진첩은 주로 경무기관 직원의 사진을 담고 있는데, 첫 번째 사진은 여느 사진첩과 마찬가지로 상단에 메이지 일왕 부부의 초상을 배치하고 황실에서 왕가로 전락한 조선왕실 일가를 하단에 배치하여 조선의 현실을 반영한다. 다음으로 일왕의 조서(詔書)와 순종의 칙유(勅諭), 초대 총독 데라우치의 유고(諭告)를 한 면에 삽입하여 조선의 ‘병합’을 ‘담소로 해결’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메이지 일왕의 후계자인 요시히토가 한국을 방문하여 경회루 앞에서 일본, 한국의 조정 대신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였고 이후 강제병합의 주역들인 일본과 조선의 인물사진을 삽입한 다음, 본격적으로 헌병사령부와 경무총감부 직원들이 등장한다. 항일 의병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헌병사령관 겸 경무총장 아카시 모토지로를 필두로 하여 본부의 직원과 경성, 광주, 대구, 평양, 신의주 등 13개 권역의 지방 경찰서와 그 직원들의 사진이 133쪽에 걸쳐 빼곡하게 게재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조선의 경찰 연혁과 직원명단이 38쪽에 걸쳐 실려 있다. 총 180쪽에 걸쳐 있는 헌병경찰들의 모습은 일제의 눈에는 “혼잡한 시대에 온 힘을 다해 새로 따르게 된 백성(식민지 조선인)을 지도하고 보호하여 병합을 확실히 하고 반도 계발에 기여한 큰 공훈”이 있는 자들이지만 우리에게는 독립운동만이 아니라 조선 민중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민중들을 탄압한 일제 헌병경찰직원의 면면이다. 사진 속 그들은 <사진첩>을 보며 “가슴속에서 감흥이 솟아날 것이고 그 정과 세월과 함께 한층 더 깊어지는 추억”에 빠져들겠지만 식민지 조선인에게는 우는 아이의 울음도 멈추게 만들었던 식민지 헌병경찰들이
었다.
• 깅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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