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5월 광주의 또 다른 얼굴

1039

[회원마당]

5월 광주의 또 다른 얼굴

김순흥 광주지부장

 

5·18 의인 안병하 치안감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광주의 5월이 39번째 지나갔다. 암울하기만 했던 꺼풀들이 세월이 가면서 하나씩 둘씩 벗겨지기도 하고 새 꺼풀이 생겨나기도 하면서 지나가는 길목에 우리를 잠깐 돌아본다.
항쟁을 이끌다 희생된 시민군,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나눔의 광주라는 대동세상을 이루어 함께 했던 자랑스런 시민들과 함께 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애쓰다 고문을 받고 숨져간 안병하 치안감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경찰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와 광주의 실상을 취재해서 세계에 알린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 이름없는 별들, 모두 우리가 광주의 5월과 함께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다.

 

5·18기념식에도 초청받지 못하는 안병하 치안감

5·18 당시 전남 지역의 치안총책 고 안병하 치안감(당시 경무관, 전남 경찰국장)은 학생 시위를 막는 기동대에게 특별지시를 내렸다.
“공격 진압보다 방어진압을 우선하라”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을 잘 지켜라” “시위학생들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고 도망가는 학생들을 뒤쫓지 말라”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이처럼 언제나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었던 그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라는 신군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살렸다. 만약 그가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광주시민들이 죽고 다쳤을까?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한 것 때문에 안 치안감은 신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고인이 당한 고통과 가장이 무너지면서 가족들이 받았던 엄청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은 물론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가족들은 다른 고통도 겪어야만했다. 5·18유공자 신청, 기각, 소송, 보상, 보상금 반환요구, 재소송 등 복잡한 것들은 법적인 절차가 필요한 것이라 제쳐두더라도. 조금만 신경 쓰고 배려했더라면 할 수 있는 것조차 우리는 등한히 했다.
2003년, 광주시는 5·18유공자로 선정되었다는 우편물만 달랑 보내놓고 이후 아무런 연락이나 접촉도 없었다. 지금까지 해마다 열리는 5·18기념식에도 가족들을 초청하지 않았다. 38년째인 2018년에 처음으로 그나마 하루 전인 5월 17일에야, (어떤 기자가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가족들에게 국가기념식에 참여해달라고 통보했다. 앞으로는 계속 초청하겠다는 말과 함께. 39년째인 2019년에는 웬일인지 초청이 없어 확인해보니 “2018년 공식초청대상자 명단에 없어서”라는 광주시 담당자의 답변만 있었다. 예우는커녕 후손을 기념식에조차 초청하지 않는 광주. 잊혀진 것이다.

 

본채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밖 화장실 정화조 옆에 놓인 힌츠페터

위르겐 힌츠페터는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광주시민의 한 사람이고 민주유공자이다.
5·18의 희생자는 아니지만, 목숨을 걸고 5·18을 세계화시킨 선구자로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지대한 공을 세운 분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없었더라면, 100만 광주 끔찍한 학살현장이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을까?
힌츠페터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5·18 구묘역 입구 ‘전두환 돌’을 밟고 지나면 오른쪽에 조그만 비석과 그 주위에 몇 개의 돌멩이로 이루어진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기념물이 있다. 구묘역(본채)은 전두환 돌을 밟고 지나가면 왼쪽에 있는데, 힌츠페터는 마당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밖 길가에’ 놓여있다. 일부러 눈에 띄게 하려고 배려했을까? ‘문밖에’ 더군다나 화장실 정화조(속칭 뺑끼통) 바로 옆에 기념 비석까지 직선거리 2m, 기념물의 일부인 돌무더기까지는 직선거리 1m밖에 떨어지지 않은 정화조 옆
에 모셔(?) 놓았다.
우리 정서에, 안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깐에’, 그나마 ‘화장실과 정화조 옆’이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에 대한 예우로서 마땅한 장소인 것 같지는 않다.
역사는 광주시나, 어느 단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또한, 5·18묘역도 광주시나, 어느 단체,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희생자뿐만 아니라 5·18의 참상을 온 세계에 알린 공을 세운 사람도 5·18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애쓰다 희생된 공직자들도 마땅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수많은 희생자 모두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분들을 다 좋은 자리에만 모실 수도 없다. 그러나 역사에 방점을 찍은 주요 인사들을 예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광주시는 지금까지 무얼 하고 있는가? 그 많은 5.18단체는 무얼 하고 있는가? 그런 분들이 당연히 마땅한 대접을 받고 계시겠지 설마 이따위로 대접받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해서 그랬을까? 극진히 예우해도 모자랄텐데. 광주시민으로서 많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