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톺아보기 6]
예외는 없다.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라
조선징용문답朝鮮徵用問答
<조선징용문답>표지 와 <조선징용문답> 본장
상단에 일본어를, 하단에 조선어를 번역하여 구성하였다.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44년 2월 10일 매일신보사에서 발행한 <조선징용문답>으로 조선인의 징용에 대한 문답식 해설서다. 저자는 조선총독부 기사(技師) 미야 코이치(宮孝一)이고, 친일논리를 이론적으로 연구하여 일본정신의 구현과 내선일체의 생활화를 주장한 조선노무협회 촉탁 이영근(친일인명사전 수록자, 창씨명:上田龍男)이 번역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 이후 곧바로 1939년 ‘ 국민징용령’을 공포했다. 이는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였다. 본 책자는 이러한 ‘국민징용령’의 실시에 따라 발행된 것이다.
<조선징용문답>에서는 먼저 학도선등(學徒先登)이라 하여 ‘천황’을 위해 영광스럽게 징용에 임하고 생산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글부터 시작한다. 다음 내용으로 징용의 정의, 실행이유, 징용대상자와 징용방식 그리고 징용된 자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징용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문답형식을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징용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소리요.”라는 첫 질문에 대해, “천황폐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며 국가의 명령에 따라서 나라에서 하라는 일을 하는 것이 징용의 근본이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징용은 징벌을 당하는 것이 아닌 전시에 국민이 다해야 될 중요한 의무이니 “즐겁게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명령에 예외는 없으며 징용에 관련된 법규를 어길 경우 엄벌에 처하며 이에 대한 근거로 국민징용령관계법령을 부록으로 제시했다.
“가정의 사정에 따라 징용을 받기 원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 대한 답변은 “징용은 전시에 있어서 국가 긴급에 총동원 업무에 나서는 것으로 가정 사정이나 일신상의 이해에 따라 주저할 때가 아니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한탄한 일, 조선의 수치”라고 하며 “딱한 사정”이 있으면 “가족에게 부조”를 해주니 징용에 나서라고 독려한다.
징용명령서를 받고 나면 징용자가 공장을 선택할 수 없고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복종해야 하고 “징용 중에 일을 그만두고 싶다” 하더라도 절대 그만둘 수 없으며 만약 도망가게 되면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처벌”받게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일제는 국민징용을 자발적인 것으로 강조하였지만 <조선징용문답>은 징용이 조선인의 강제동원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주로 탄광이나 토목공사장 그리고 군수공장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 위험한 업무에 배치되어 고된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일본어도 서툴고 직업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농촌 출신 조선인들은 무리한 생산목표와 위험한 작업환경 아래 빈발하는 사고로 수없이 죽어갔다.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을 맞이했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냉전체제의 구축과 일본정부의 책임회피로 자신이 일한 정당한 대가는 물론 피해에 대한 어떤 배상도 받지 못했다. 이에 피해자 단체와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보상을 요구하는 법적투쟁을 전개하여 왔다. 일본 최고재판소에서는 패소하였으나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최종 승소하여 일본기업을 상대로 일부나마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을 짓지 않은 1965년 한일협정을 근거로 일본은 피해에 대한 ‘최종적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며 일체의 배・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1일, 일본은 한국기업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했는데 아베 총리는 이를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라고 인정했다.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판결을 이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보다 한국기업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과 피해자들을 일관되게 무시해온 일본 아베정부가 식민지 ‘가해국’으로써 반성과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인양 수출규제 조치까지 발표하자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시작하며 분노하고, 항의하고 있다.
2017년 11월에 발행한 「일본의 메이지산업혁명유산과 강제노동」 가이드북. ‘망각의 반대말은 기억이 아니라 정의다’라는 말처럼 정의실현을 위해 강제동원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우리의 목소리를 담았다.
지난 2015년 7월 5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 철강・조선・석탄산업’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인정받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침략과 식민지배, 강제동원 등 어두운 역사가 빠져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시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석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특별 권고하였으며 일본 측은 “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음”을 인정하고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혔지만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때,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과거사 청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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