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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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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임헌영 |출판사: 역사비평사 |값 22,000원 |456쪽 |신국판(152×224mm) |ISBN 978-89-7696-298-0 03800

생가에서 묘지까지, 작가의 활동 공간에서 작품의 무대까지
러시아와 유럽의 대문호 10명을 찾아가는 여행

● 러시아 : 푸시킨,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
● 프랑스 : 스탕달, 빅토르 위고,
● 독일 : 괴테, 횔덜린, 헤르만 헤세,
● 영국 : 조지 고든 바이런, D. H. 로런스

이 책은 러시아와 유럽의 대문호라 일컫는 작가 10명에 관한 이야기다. 민족문제연구소장이자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1990년부터 ‘세계 인문학 기행’을 염두에 두고 30여 년 동안 세계 각지를 답사했는데, 이 책은 특히 러시아와 유럽 쪽 문학의 거장 10명을 뽑아 그들의 생가, 일생 동안의 활동 공간, 묘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 등을 둘러본다. 그런 가운데 작품 이야기는 물론이요, 그들이 살았던 시대, 곧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들의 삶의 이야기 속에는 당대 권력과 부딪치며 저항했던 모습도 들어 있지만 농밀한 여성 관계 등의 사생활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한 작가의 숨기고 싶은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히 절시증 차원의 재미가 아니라 역사 앞에서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찬찬히 따져보고자 함에서였다”라고 말한다.

독일이 자랑하는 대문호 괴테의 생가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살아생전 오복을 신명껏 향유하고 부유한 삶을 누렸던 작가로 손꼽히는 괴테의 생가는 “러시아 오룔에 광대하게 펼쳐진 투르게네프의 영지나 인도 콜카타의 학교 규모로 건축된 타고르 생가와 비견될 만큼 엄청나다. 온 집안을 돈으로 칠갑해놓은 것으로는 괴테 쪽이 단연 앞선다.” 1954년 박물관으로 단장되어 일반에 공개된 괴테의 생가는 두 채의 집이 나란히 연결된 형태인데, 당시 어느 정도로 부유했는지는 부엌의 시설이나 집안의 가구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작가로만 알던 괴테가 작센-바이마르 공국에서 군사위원회·도로건설위원회·광산위원회 등의 장관직을 역임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문명(文名)을 날린 데 더해 공직까지 맡으며 행정 능력까지 겸비했던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태어난 도시 칼브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작가란 자연환경이 낳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고, 바이런이 태어난 생가는 헐려서 상가가 되어버린 곳에 생가였음을 알려주는 블루 플라크(Blue Plaque)만 부착되어 있을 뿐이며, D. H. 로런스가 태어난 광산촌 이스트우드는 “이런 삭막한 고장에서 인간의 영혼이 기댈 곳이라고는 육체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작은 도시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묘지 중 인상 깊은 것은 톨스토이의 무덤이다. 톨스토이가 태어난 곳이자 결혼해서 오랫동안 산 집이 있는 곳, 야스나야 폴랴나에 그의 무덤도 있다. 대문호의 무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소박한 묘다. 그 흔한 묘비도 없고, 유럽의 묘지에서 많이 보이는 조각상도 없다. 저자는 “이 무덤 앞에 서면 죽어서는 누구나 평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듣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문호들의 생가와 묘지 외에도 그들과 관련된 박물관이나 기념관, 망명지, 숨을 거둔 곳도 일일이 찾아간다. 그들의 작품에서 설정한 무대도 찾아가 작품 이야기와 시대적 배경까지 풀어 나간다. 예컨대 『전쟁과 평화』의 실제 역사적 배경인 보로지노 전투의 현장, 『레 미제라블』의 워털루 전투의 현장을 톨스토이와 빅토르 위고가 현장 답사했듯이, 저자 또한 그들을 쫓아 여행한다. 스탕달의 대표작 『적과 흑』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이 일어난 브랑그 마을,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의 배경이 되는 마울브론 수도원학교,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부여해준 곳 베츨라어도 이 기행에서 찾아간 곳이다.

격변의 시대, 치열한 영혼
대문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작품 이야기

이 책에 소개된 대문호 10명의 생몰년을 살펴보면 가장 이른 시기의 인물이 괴테로 1749년에 태어나 1832년에 죽었으며, 가장 늦은 시기의 인물은 헤르만 헤세로 1877년에 태어나 1962년에 죽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들은 19세기에 포진해 있으며, 18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역사적 격변기였다. 굵직굵직한 사건만 대강 훑어봐도 프랑스대혁명(1789), 러다이트운동(1811), 보로지노 전투(1812), 워털루 전투(1815), 데카브리스트의 난(1825), 프랑스 7월혁명(1830)과 2월혁명(1848), 파리코뮌(1871), 러일전쟁(1904), 피의 일요일 사건(1905), 러시아혁명(1917), 두 차례의 세계대전(1914/1939) 등이다. 격변의 이 시대를 대문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른바 ‘고전’이라 일컫는 명작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나 삶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작품 속에는 당연히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사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컨대 빅토르 위고 시대의 프랑스는 국내외적으로 대격변의 시기였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 중 가장 치열한 전쟁인 보로지노 전투가 1812년에 일어났고, 엘바 섬에 귀양 가 있던 나폴레옹이 탈출하여 황제에 다시 오른 뒤 영국-프로이센 연합군과 벌인 워털루 전투가 1815년에 일어났으며, 국내적으로는 프랑스대혁명의 연장선상에 7월혁명과 2월혁명이 일어났다. 대통령에 당선된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황제에 오르고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을 시도하자 빅토르 위고는 맹비난을 퍼부었고, 그 일로 프랑스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루이 나폴레옹에 대한 탄핵서를 쓰는 등 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망명 생활 중에도 집필을 놓지 않아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워털루 전투의 현장을 치밀하게 답사하여 완성해낸 『레 미제라블』에는 나폴레옹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필연론을 담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1871년 파리코뮌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는데, 이는 페르 라셰즈 코뮌의 벽에 새겨져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작가 당대의 역사적 사건, 그리고 그의 작품 속 시대 배경을 교차해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고, 작가를 온전히 파악하고자 한다.

대문호의 삶을 그대로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작가의 여인 관계 등과 같은 사생활도 적나라하게 들춰본다. 이는 작가의 삶을 한층 더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빅토르 위고와 조지 고든 바이런은 세계문학사에서도 알아주는 바람둥이이고―그래서 위고 편과 바이런의 제목도 각각 「지칠 줄 모르는 바람둥이 인문주의자」, 「연애대장, 그리스 독립투쟁에서 전사하다」이다― 막심 고리키와 헤르만 헤세는 세 번의 결혼 경력이 있다. 이로 인해 작가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 고리키의 경우 두 번째 여인인 안드레예바와 미국에서 혁명 기금을 모으는 활동을 할 때 러시아 정보 당국에 의해 ‘여배우를 데리고 불륜을 저지르며 다니는 무정부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문학, 역사, 철학을 넘나들고
음악, 미술을 녹여낸 인문기행

독일의 시인 횔덜린과 철학자 헤겔은 동갑내기이며 튀빙겐 신학교의 동방생이었다. 저자는 문학 기행을 하면서 역사도 놓치지 않으며, 그에 더해 철학 사상가 기행도 곁들인다. 저자는 07장 횔덜린 편에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헤겔하우스를 꼭 방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공이 무엇이든, 철학에 아무리 관심이 없다고 하든 간에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반드시 읽어야 할 명저로 꼽는다. 튀빙겐 신학교 시절 동갑내기 동방생 횔덜린과 헤겔은 프랑스대혁명 소식을 듣고 “자유 만세! 루소 만세!”를 외치고,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헤르만 헤세는 니체를 너무나 좋아하여 그가 대학 교수로 있던 바젤로 이사했다. 저자는 헤세의 자취를 더듬어 바젤을 기행하면서 니체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바젤 기행에서 헤세의 생활보다는 니체에 더 많은 공을 들여 서술하고 있다. 니체가 태어난 곳인 뢰켄에 작은 기념관으로 꾸며진 니체의 생가와 묘를 둘러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술의 뒷이야기도 풀어놓는다.

여행을 하면서 작가나 작품과 관련된 음악을 추천해주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무대인 보로지노 전투 현장을 갈 때는 영화 <전쟁과 평화>의 사운드트랙인 <나타냐 왈츠>나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을, 톨스토이의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를 갈 때는 러시아 최고의 민요인 <카츄샤>를, 막심 고리키의 고향 니즈니 노브고로드로 향할 때는 <스첸카 라진>, <볼가 강의 뱃노래>, , 를 듣기를 권한다. 세계적 애창곡이며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존 브라운의 노래>를 들을 때면 사형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던 빅토르 위고를 상기하고, 바이런의 흔적을 찾아 그리스 수니온곶의 포세이돈 신전을 갈 때는 영화 <페드라>를 떠올리면서 안소니 퍼킨스가 들었던 <토카타와 푸가 F장조>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또한 낭만적 시를 썼다고만 알고 있는 바이런이 영국 상원 의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의회에서 노동자 탄압 법안에 반대했음을 기억하며 런던 거리를 거닐 때는 음악공동체 첨바왐바의 <러드 장군의 승리(The Triumph of General Ludd)>를 들어보라고 한다. 문학 기행이면서 인문·역사·음악 기행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이른바 고전에 대한 문학 비평서가 아니다. 대문호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도 아니다.

“역사적인 격변에 직면한 문호들이 그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삽화처럼 펼쳐보고 싶었다. 작품으로만 보는 위대한 모습이 아니라 삶의 실체에 한층 가까이 다가서고 싶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대문호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 시대를 관통하여온 삶을 이야기하고, 당대 정치권력과 불화하며 저항하고 투쟁했던 역사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발품 팔면서 찾아다닌 대문호들의 생가, 저택, 활동 공간, 작품의 무대는 그들의 삶과 사랑, 정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다.

이 책의 차례

01. 푸시킨 : 삶이 그대를 속이면 쓸개즙을 마시라
02. 톨스토이 : 파문당한 성인의 꿈
03. 고리키 : 배반당한 혁명문학
04. 스탕달 : 나폴레옹을 숭배했던 공화주의자
05. 빅토르 위고 : 지칠 줄 모르는 바람둥이 인문주의자
06. 괴테 : 파우스트의 화신
07. 횔덜린 :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시인
08. 헤세 : 평화 찾아 조국을 떠난 순수문학인
09. 바이런 : 연애대장, 그리스 독립투쟁에서 전사하다
10. 로런스 : 피와 살을 믿었던 반문명론자

이 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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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任軒永)

중앙대학교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6년 『현대문학』에 평론 「장용학론」과 「니힐과 반항」으로 등단했다.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 근현대문학을 민족사와 문학사회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특히 제3세계문학과 해외동포문학, 그리고 북한문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은 『한국근대소설의 탐구』(1974), 『창조와 변혁』(1979),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1983),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1987), 『문학과 이데올로기』(1988), 『변혁운동과 문학』(1989), 『분단시대의 문학』(1992), 『우리 시대의 소설 읽기』(1992), 『우리시대의 시 읽기』(1993), 『불확실 시대의 문학』(2012), 『임헌영 평론선집』(2015), 그리고 리영희 선생과의 대담을 엮은 『대화』(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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