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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정비 주인공은 친일 인사”…광주광역시, 친일 ‘단죄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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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11시 광주공원 앞 옛 신사 계단
관내 65개 친일 잔재물 중 4개 먼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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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가 8일 광주공원 안 바닥에 눕혀져 있는 윤웅렬·이근호·홍난유의 비석 앞에 세운 단죄비.광주광역시 제공

광주광역시에 있는 일제강점기 친일 역사 잔재물 가운데 비석이나 현판 등의 연원을 기록한 ‘단죄비’를 설치한다. 시민들에게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바르게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8일 광주광역시가 2018년 7월부터 올 1월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광주광역시 관내엔 65곳의 유·무형 친일 잔재물이 있다. 시는 2015년 친일잔재조사 티에프팀을 통해 비석·누정현판·교가, 군사·통치시설 등 65곳의 친일 잔재물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친일 작곡가가 작곡한 광주 관내 대학과 중·고교 교가 18개를 제외한 47개가 유형 잔재물이다.

47개의 유형 잔재물 중 25개가 국·공유지 안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광주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이 계단엔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 계단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신사는 일본의 신도 신앙에 따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건물과 시설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이 계단은 신사참배를 하러 올라갔던 광주신사의 역사 잔재물이다.

광주공원엔 일제 귀족 작위를 받은 이근호(1861~1923)를 찬양하는 선정비가 남아 있다. 이근호 집안은 세 형제가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을 정도로 대표적인 친일 집안이다. 공적비가 남아 있는 윤웅렬(1840~1911)은 작위를 받은 직후인 1910년 12월 국채보상금을 조선총독부(경무총감부)에 건네 은사공채를 받았다. 1905년부터 1913년까지 광주군수로 재임한 친일 인사 홍난유의 비도 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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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남구 광주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은 일제 강점기 때 일제 강점기 때 광주신사로 가는 계단이었다. 광주광역시 제공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 쪽은 “한말 전남 관찰사로 재직했던 윤웅렬과 이근호가 ‘선정’을 베풀었다는 내용의 비석은 애초 다른 장소에 세워졌으나, 1957년 광주공원 들머리로 옮겨졌다가 1965년 비석을 모으는 과정에서 광주공원 동쪽 언덕 현재의 터로 이전됐다”고 밝혔다. 이밖에 광주공원 인근 양파정에 걸려 있는 정봉현·여규형·남기윤·정윤수 현판, 세하동 습향각에 설치된 신철균·남계룡 현판 등이 친일인사 잔재물이다.

친일 잔재물 중엔 사유지에 있는 유형물도 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된 법조인 송화식(1898~1961)의 부도비와 부도탑은 광주 원효사에 있다. 광산구 송정공원 안에 있는 금선사는 일제강점기 때 신사로, 한 때 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빚어졌던 곳이다.

광주광역시는 이날 오전 11시 광주공원 계단 앞에서 ‘친일 잔재 청산,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에 대한 단죄비 제막식’을 열었다. 시는 윤웅렬·이근호·홍난유의 선정비를 뽑은 뒤 한 곳으로 모아 눕혀 놓은 뒤 단죄비를 세웠다.

단죄비는 광주공원 계단에도 세워졌다. 단죄비엔 이들의 친일 행각 등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글이 적혀 있다. 양보근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평화협력국 담당은 “내년까지 국·공유지에 설치된 친일 잔재물 25곳에 대해 우선적으로 단죄비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교가 등 무형의 잔재물은 바꿔가고 비석이나 절 등 유형의 잔재물은 역사적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단죄비 형식의 설명문을 제시해 잊지않고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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