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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4년째 도쿄 도심서 펼쳐진 ‘야스쿠니 반대’ 촛불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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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지지 일본 시민 등 400여명 ‘아베 퇴진’ 구호 외쳐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이름 석 자를 빼달라는 건데….”

야스쿠니(靖國) 합사 취소소송 원고 중 한 명인 이병순 씨는 10일 오후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재일본 한국YMCA에서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의 연단에 섰다.

‘지금의 야스쿠니와 식민지 책임…왜 가해자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가’란 주제의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본인 방청객들에게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로 끌려가 숨진 뒤 야스쿠니의 영령이 된 아버지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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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 취소소송 원고인 이병순 씨가 10일 오후 도쿄 지요다구 재일본 한국YMCA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야스쿠니에 합사된 부친의 이름을 빼달라고 울먹이며 호소하고 있다.

이 씨는 “저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면서 “야스쿠니에 합사된 아버지의 이름을 그곳에서 지워 제가 당당하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광복절이고 일본인에게는 패전일이자 종전일인 매년 8월 15일을 앞두고 주목받는 곳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야스쿠니신사다.

이곳에는 야스쿠니의 신(神)들로 통하는 총 246만6천위(位)가 명부로 합사(合祀, 여러 혼령을 모아 제사를 지낸다는 뜻)돼 있다.

영령(英靈)이라 불리는 이들의 주류는 일왕(덴노, 天皇) 중심의 정치체제를 만든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제(日帝)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에 동원됐다가 숨진 이들이다.

특히 전체 영령의 90%에 가까운 213만3천위는 일본이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부르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 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을 당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당시 총리 등 7명을 포함해 태평양전쟁을 이끌었던 A급 전범 14명도 1978년 비밀리에 합사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의 신이 됐다.

일제의 군인이나 군속으로 징용됐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 출신 2만1천181위와 대만인 2만7천864위도 본인이나 유족의 뜻과 무관하게 야스쿠니에 봉안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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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배전(일반인이 참배하는 곳)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씨의 아버지는 대부분의 다른 조선인 희생자들처럼 일제의 일본식 개명 강요로 이름 석 자가 넉 자가 돼 전범들과 함께 일본 우익 세력의 추앙을 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에 반발해 일부 유족들은 일본 법원에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여러 건 제기했지만 아직 승소한 사례는 없다.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을 지지하는 일본 시민들은 이날 저녁 도쿄 도심에서 전구형 촛불 막대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면서 원하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합사 취소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오후 7시 재일본 한국YMCA 건물 앞을 출발해 야스쿠니신사 인근의 공원까지 약 1.5㎞ 구간에서 45분 동안 펼쳐진 행진에는 일본 각지에서 모인 400여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 합사 취소 ▲ 야스쿠니 반대 ▲ 전쟁 반대 ▲ 인권 회복 ▲ 개헌(평화헌법 개헌) 반대 ▲ 아베 퇴진 등의 구호를 반복해 외치며 1개 차로를 따라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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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을 지지하는 일본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

우익 세력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시위 참가자보다도 많은 경찰관이 시위 행렬 인도에 동원된 것으로 보였다.

‘야스쿠니 반대’ 시위에 맞서 우익 세력의 맞불 시위도 곳곳에서 펼쳐졌지만, 참여자는 많지 않았다.

우익들은 대형 스피커가 장착된 차량 여러 대를 동원해 소음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때려죽이자’와 같은 섬뜩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야스쿠니신사로 이어지는 야스쿠니대로 네거리 주변에서 양측 시위 진영이 바싹 근접하면서 잠깐 위험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경찰이 적극적으로 분리 작전을 펼쳐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촛불행동 일본실행위원회 등 한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촛불행동’ 측이 8월에 야스쿠니 반대 시위를 조직한 것은 2006년 이후 이번이 14번째다.

이날 시위에 동참하려고 가와사키(川崎)시에서 왔다는 사쿠라이 다카오(69) 씨는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에 반대한다”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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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반대 도쿄 촛불행동’을 지지하는 일본 시민들이 행진하는 곳곳에서 일장기와 욱일기를 든 우익들의 맞불 시위가 펼쳐졌다.

parksj@yna.co.kr

<2019-08-10> 연합뉴스 

☞기사원문: 14년째 도쿄 도심서 펼쳐진 ‘야스쿠니 반대’ 촛불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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