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보도자료] 강제동원 피해자들, 일본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광복74주년 대회 일정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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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강제동원 공동행동)에서는 광복 74주년을 맞아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국제심포지움 및 시민대회, 국제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 14일 국제심포지움의 주요 내용입니다.
▲피해자 증언 : 김정주(후지코시) 김용화(일본제철)
▲한일시민의 연대 역사와 방향
▲근로정신대, 원폭피해자, 조선학교, 사할린 동포, 유골봉환 문제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투쟁 역사
▲소송대리인 및 전문가가 밝히는 대법원 판결과 피해자를 위한 해결 방향
▲노동, 시민사회, 종교계의 활동 방향, 강제동원 공동행동 결성과 전망

3. 15일 시민대회 및 국제평화행진의 주요내용입니다.
▲피해자 발언 : 이춘식(일본제철) 양금덕(미쓰비시) 김정주(후지코시)
▲연대사 : 야노 히데키(일본 강제동원 공동행동 사무국장) 오다가와 요시카스(일본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의장)
▲북 민화협 연대사
▲청소년 발언 및 대학생, 청년들의 ‘강제동원 사죄배상가’ 합창
▲100개의 만장
▲200개의 사죄배상 소원지 비둘기 풍선
▲피해자분들 영정

4. 그리고 15일 시민대회에 북 민화협에서는 대회 취지에 공감하며 연대사를 보내왔습니다. 연대사는 당일 발표할 예정이며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 남녘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로소가 떨쳐 일어나 《아베를 규탄한다!》, 《경제침략 규탄한다!》는 구호를 웨치며 벌리고 있는 격렬한 반일투쟁은 일본에 대한 쌓이고 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며 일본의 과거죄악을 끝까지 결산하려는 드높은 의지의 발현”,

“우리는 《강제동원문제해결을 위한 8.15시민대회》가 일본의 파렴치한 재침야망을 저지하기 위한 우리 겨레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로 되리라고 확신하면서 전체 참가자들에게 다시 한번 힘찬 격려의 인사를 보냅니다”

5. 행사 개요, 강제동원 소송당사자 원고 프로필, 국제심포지움 자료집을 첨부하였습니다. 기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끝)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겨레하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청년시대여행, 평택원폭피해자2세회, 평화디딤돌, 포럼 진실과정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합천 평화의집, 흥사단,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KIN지구촌동포연대


1. 8/14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회의>
“해방 74년, 강제동원 문제의 어제, 오늘, 내일”
○ 일시 : 2019년 8월 14일(수) 14:00~18:00
○ 장소 : 조계사 국제회의장
○ 주최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 후원 : 동북아역사재단,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 사회: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2. 74주년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대회>
○ 일시 : 2019년 8월 15일(목) 오전 10시 50분
○ 장소 : 서울광장(대회 이후 일본대사관으로 행진)
○ 주최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 참가단체 (8/12 현재) : 2,000여명 예상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겨레하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청년시대여행, 평택원폭피해자2세회, 평화디딤돌, 포럼 진실과정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합천 평화의집, 흥사단,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KIN지구촌동포연대)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및 재일동포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 전태일재단 /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 한국YMCA전국연맹 등
▲대학생 참가단 (국제평화행진 대학생홍보단, 대학생겨레하나, 평화나비, 꿈꾸는 고래 등)
▲청소년 참가단 (경기 청소년 연합동아리 ‘더블’, 청소년겨레하나 등)
▲청년 참가단 (나라사랑청년회, 이끌림청년회, 청년겨레하나 등)

○ 사회 : 이연희(겨레하나 사무총장)
○ 여는 공연 : 서울민예총
– 대회사: 임헌영(강제동원공동행동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연대사: 야노 히데키(일본 강제동원공동행동 사무국장), 오다가와 요시카스(일본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의장), 북 민화협 연대사 소개
○ 피해자 발언 : 이춘식(일본제철), 양금덕(미쓰비시), 김정주(후지코시)
-‘나라사랑 동아리 – 메아리’ 1004만원 후원금 전달
○ 각계발언 :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
-김명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백지윤(경기청소년연합동아리 ‘더블’ 역사팀, 백석고2)
○ 공연 : 극단 ‘경험과 상상’ 노래공연
-대학생겨레하나 & 청년겨레하나 ‘강제동원 사죄배상가(독립군가 개사곡)’ 합창


3. 74주년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평화행진>
2019년 8월 15일(목) 오후12시 ~ 오후1시
서울광장 -> 광화문대로 -> 일본대사관(트윈트리A)

○ 행진 내용 :
– 아베는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사죄하라
– 광복74주년, 우리 힘으로 강제동원 문제 반드시 해결하자
–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 올바른 역사를 세우는 일에 우리 시민들이 나서자

○ 주요 기획 :
– 피해자, 유족 등 대표단이 일본대사관에 시민서명 전달
– 유족들과 청소년, 대학생이 함께 드는 피해자 영정 사진
– ‘아베는 사죄하라’ ‘강제동원 배상하라’ 등 구호가 적힌 만장 100개
–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올바른 역사를 위한 시민 소원지’를 매단 평화의 비둘기 풍선 200개 (시민들이 서명에 작성한 한마디로 제작)
– 강제동원 배상판결, 유골 봉환, 사할린 동포, 야스쿠니 문제, 조선학교 차별 등 강제동원과 대일과거청산 관련 각계 다양한 목소리를 피켓, 현수막을 통해 형상화


소송  원고 프로필

김정주金正珠 (후지코시) 1931.8.2. / 전남 순천출생.
아버지가 징용당한 후 조부모, 언니(김성주)와 함께 생활하던 중, 당시 초등학교 교사의 설득에 따라 언니가 나고야 미쓰비시항공기제작소에 근로정신대에 끌려감, 이후 국민학교 5학년 때 일본인 교사가 언니를 만나게 해준다고 설득하여 도야마현 후지코시공장에 근로정신대원으로 동원 당함, 도야마 후지코시에서 강압적이고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강제노동, 폭격에 의한 위협 속에 지내다 1945.10 귀국.

용화 金龍化 (일본제철) / 1929년 12월 생 / 후쿠오카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 소작농 집안으로 가난한 생활환경에서 7남매 중 막내로 성장. 형님과 누님들이 모두 출가한 상황에서 국민학교 졸업 즈음 마을에서 일본제철에서 공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돈 벌러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 전주기차역에서 여수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여수항에서 후쿠오카로 이동, 100여명이 함께 지내는 숙소에 배치되어 단체생활을 했고, 숙소에서 3~4km 떨어져 있는 공장까지 기차로 출퇴근. 처음에는 여러 작업장에 다니면서 공장에서 필요한 막노동, 잡일을 했는데 지렛대로 물건을 들어올리다가 지렛대가 튕기면서 앞니가 부러짐. 이후 여러 작업장의 사무실을 다니며 청소, 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는 급사 일을 함. 해방 후, 회사에서 대형선박을 마련하여 야하타 항구에서 숙소 사람들 모두 함께 타고 귀국.

양금덕 梁錦徳 (미쓰비시) 1929.11.30. / 전남 나주 출생
1944년 5월 경, 국민학교 6학년 재학 중 교장과 헌병이 ‘일본에 가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고 여학교에도 다닐 수 있다’는 설명을 하였고, 담임교사가 지원자로 지명하여 동원됨. 부모님이 강력히 반대했으나 교장이 ‘지명을 받고 가지 않으면 경찰이 아버지를 붙잡아 간다’는 말을 듣고 몰래 아버지 도장을 가져다 담임교사에게 주어 나고야 미쓰비시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됨. 현지에서 알콜로 비행기 부품을 닦고 페인트를 칠하거나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가 귀국.

이춘식 李春植 (일본제철) 1924.1.27. / 전남 나주 출생
1943.1.17. ~ 1945.1.9 가마이시 제철소 / 1945.1. ~ 1945.9. 육군 제8875부대

전남 나주에서 장남으로 출생,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대전 지역에서 선발된 80명의 중고등 학생들과 함께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로 동원. 일본군 출신 사감이 관리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탄차에 석탄을 퍼올리고 용광로에 쏟아 넣는 단순 노동. 1945.1월 일본군으로 징병, 일본 고베의 8875부대에 배치되어 미군포로감시원으로 근무, 해방 후 가마이시 공장의 노무과에 찾아가 월급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하고 다시 시모노세키를 통해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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