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15 광복은 그냥 남이 준 선물 아냐, 독립운동의 결과”
“일본의 경제침략, 경제자립·기술독립은 새로운 독립운동”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나에게 역사운동은 제2의 독립운동”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2019년 광복절의 의미는 우리가 광복 이후 이뤄온 민주주의의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인 민족통합, 평화통일 의지를 다짐하는 데 있습니다”
‘민족혼의 산실’인 독립기념관 이준식(63) 관장은 14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올해 광복 74주년의 의미를 이같이 밝혔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의 외손자이기도 한 이 관장은 “1945년 8월의 해방은 그냥 남이 준 선물이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이 벌인 독립운동의 결과”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경제자립·기술독립을 외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21세기의 새로운 독립운동”이라고 피력했다.
다음은 이 관장과 일문일답.
— 광복 74주년의 의미는.
▲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이루려고 했던 조국 광복이란 단순히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광복’이나 ‘독립’이란 말속에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서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그 민주공화국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꿈도 담겨 있다.
그렇지만 광복과 동시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38선이 그어지면서 한반도에는 분단체제가 들어섰다. 광복 이전에 우리는 민족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나라 건설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그 꿈이 좌절된 거다.
분단은 남북 모두에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됐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반공을 앞세운 독재정권 아래 민주주의가 사실상 형해화(形骸化·앙상한 모습처럼 부실해짐)되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렇지만 민주공화국에의 꿈이 담긴 독립정신을 이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
올해 광복절의 의미는 우리가 광복 이후 이뤄온 민주주의의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남은 과제인 민족통합, 평화통일에의 의지를 다짐하는 데 있다.
— 광복절을 맞아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이 ‘집 없는 설움’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이걸 민족으로 치면 가장 큰 설움은 ‘나라 없는 설움’일 것이다.
100여년 전 우리 선조들이 그랬다. 어린 시절을 만주에서 보낸 나의 어머니께서 회고록을 남기셨는데 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만주의 동포들은 국치일인 8월 29일이 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루 세끼를 굶었다. 나라 잃은 백성은 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밥을 굶는 것은 동시에 독립에의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떨쳐 일어났다.
무능한 정부 대신에 민초들이 의병이라는 이름 아래 총을 들고 일제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의병 전쟁에 지는 바람에 1910년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좌절하지 않았다. 일제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힘들더라도 자유민으로 살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지 그 전모를 알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독립군에 들어갔고, 어떤 사람들은 비밀결사를 만들었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된 신흥무관학교라는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독립운동가들은 기록도 남기지 않고, 그래서 이름도 남기지 않고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1945년 8월의 해방은 그냥 남이 준 선물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벌인 독립운동의 결과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만히 있었으면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가 보장된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독립과 해방이라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국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배웠으면 한다.
— 일본이 최근 경제보복으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지금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평화공존·평화통일,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 평화체제를 위한 꽃이 피기 시작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거꾸로 일본이 마치 한 세기 전의 침략을 되풀이라도 하듯이 경제침략을 자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일본이다. 과거 사회당과 자민당의 연립정권 시절에 일본 정부는 과거사를 반성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 적이 있다. 무라야마 담화니 고노 담화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않은 말만의 반성이었지만 아베 정권은 오히려 이전의 반성조차 없는 것으로 돌리고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과 그에 따른 각종 잘못, 이를테면 수많은 학살 사건과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그런 일이 없었다는 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한 약속을 문재인 정부가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사회당과 자민당 연립정권 시절의 과거사 반성을 먼저 깬 것은 일본 정부다.
아베 정권의 외상으로 대한민국을 안하무인 격으로 대하는 고노 다로 외상의 아버지가 바로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로 당시 내각 관방장관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한 사과를 아들이 뒤집어엎는 셈이다.
누가 약속을 먼저 깼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입장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한다고 했을 때 전제가 되는 건 가해자가 가해의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가해자가 사죄와 반성도 없이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 화해하라고 강요하나? 지금 일본이 하는 게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흔히 독일과 일본을 비교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고 유대인을 학살한 데 대해 지금도 반성한다. 끊임없는 반성은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아시안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아시아 전역에서의 학살에 대해 반성한 적이 없다. 당연히 사죄와 배상도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침략과 학살의 역사,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경제침략을 하는 이면에는 군국주의 부활 야욕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막아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잃고도 일제에 맞서 싸웠다.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경제자립·기술독립을 외치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21세기의 새로운 독립운동이다.
— 통일에 대비한 독립기념관의 역할은.
▲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남북 사이에는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등 동질적인 요소도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이질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역사 인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남북의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은 동질적인 요소를 찾아냄으로써 이질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도 그렇지만 독립기념관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북한과의 교류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 독립운동가 후손 개인으로서 광복의 의미는.
▲ 나는 독립기념관장이 되기 전에도 역사연구자로서 친일 청산이나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 등의 사회적 실천에 깊이 관여했다. 그러다 보니 거리의 역사연구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련의 역사운동이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독립운동사 연구자로서 독립운동가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 그러니까 독립정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 거다.
— 대한민국 74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 110년 전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다. 목숨을 바쳐가면서 국권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선조들은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74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민주주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시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국민의 자유와 평등이 이뤄지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꿈꾸었는데 분단체제는 그 꿈을 실현하는 데 분명히 제약요인이 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남북의 평화공존, 더 나아가 평화통일을 이뤄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조교수)를 지냈다. 2006∼2010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2013∼2017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을 거쳐 2017년 12월 18일 제11대 독립기념관 관장에 취임했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 외할아버지다.
jung@yna.co.kr
<2019-08-14>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광복절 의미, 통합·통일 다짐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