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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원희복의 인물탐구]민족문학연구회장 맹문재 “독립투사 투혼으로 ‘토왜’ 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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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문재 민족문학연구회장(시인·안양대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광복절인 8월 15일 오후, 비가 쏟아지는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민족문학연구회’가 창립했다. 이 단체는 한국 근·현대 민족문학에 대한 조사·연구, 일제강점기 항일·친일문학 비교연구, 분단시대 남·북·해외 민족문학 조사·연구, 통일시대를 예비하는 창작활동 등을 주요 사업으로 정했다. 이 단체는 이날 오전 50명 독립운동가들에게 바치는 시를 모은 <독립운동의 접두사>-‘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1’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효창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 묘소에 헌사했다.

‘민족문학’이라는 단어는 70년대 ‘자유실천문학’이라는 단어로, 80~90년대에는 ‘민족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문학계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이를 대표했다. 그러나 2006년 이 단체는 ‘한국작가회의’로 ‘민족’이라는 단어를 떼어버렸다. 그런 민족문학이라는 단어가 1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은 최근 냉각된 한·일관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준비위를 이끌고 회장을 맡은 시인·평론가 맹문재 안양대 교수(56)를 만났다.

‘자유실천문학’에서 ‘민족문학’으로

-민족문학연구회를 창립하는 이유는 최근 반일감정이 감안된 것인가. 150명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2016년부터 한국작가회 내에서 친일기념문학상에 대한 항의집회와 세미나 등을 해왔다. 그러나 문학계에 워낙 친일잔재가 뿌리 깊고 광범위해 소수 문인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연구자도 합세해 친일청산을 효율적으로 하기로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산하기구지만, 명칭이나 예산·사업 등은 자율적이고 독립된 연대기구라고 할 수 있다. 회원은 모두 문인과 연구자들이다. 우리 조직의 특징은 모든 회원이 회장이다. 회원 모두 책임의식을 가지고 친일잔재를 청산하자는 의도에서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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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문재 민족문학연구회장(시인·안양대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과거 ‘민족문학작가회의’가 2006년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꿨다. 민족주의를 너무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과거로 복귀인가.

“민족이라는 단어는 변하는 개념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이라는 단어는 좌파에 반대되는 개량주의자 논리였다. 힘을 키우고 준비하자는 우파 논리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 시인 임화가 쓴 ‘민족’ 용어는 친일·봉건잔재 청산 의미였다. 한국전쟁 이후 민족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다가 1970년대 백낙청 선생이 민족문학론으로 체계화하면서 분단 극복 수단으로 다시 쓰였다. 그러다 80년대 들어 노동·정치·통일문학으로 민족문학이 더 심화·다변화됐다.”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가 꼬여 있다. 좌파는 원래 국제인터내셔널을 추구할 정도로 내셔널리즘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는 좌파가 통일문제, 즉 민족문제를 강조하다보니 민족주의는 곧 좌파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다.

“서구에서는 내셔널리즘은 우파로 본다.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한국작가회의로 바꿀 때 논리가 바로 그거였다. 국제화 시대에 우파단체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단국가를 극복하지 못한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그래서 민족이라는 개념을 포기할 수 없다.”

-창립식에 앞서 시집 <독립운동의 접두사>-‘독립운동가 기림 시선 1’을 헌정했다. 독립투사 50분에 대한 시인데, 대상은 어떻게 선정했나.

“3월 19일 설립 결의 후 첫 사업으로 헌시집을 만들기로 했다. 선정위원을 구성해 독립투사 180분을 선정해 시인에게 청탁했다. 이 180명에 포함되지 않은 독립투사도 추천해 달라고 해 여섯 분이 추가됐다. 그렇게 모인 시가 86편인데 일단 50분을 모아 1권을 내고 10월에 2권, 내년 3·1절에 3권이 나올 것이다. 앞으로 계속 낼 것이다.”

시집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우리의 땅에서 히노마루의 깃발을 내리자’라는 제목의 발문이 실렸다. 발문은 이렇게 일갈하고 있다.

“현대판 친일파는 이데올로기가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이루어져 있어 분쇄하기 여간 어렵지 않다. 그들은 인종 편견주의, 식민종주국 추종사상, 침략주의와 전쟁 예찬론,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주의 찬양하기, 독점재벌의 수탈을 찬양하며 국민 복지 향상이나 노동자 처우개선에 극력 반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 반대 등등의 이념을 굳게 고수하고 있다. 그들의 치유법은 현대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일말의 치유방법이 있다면 독립운동가들의 투혼을 이입시키는 길밖에 없다.”

“사회 모순 깊게 인식이 참된 미학”

요즘 흔히 말하는 ‘토왜(토착왜구)’의 특징을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시집은 1930년대 평양성 을밀대에 올랐던 최초의 ‘고공농성’ 여성 노동자 강주룡에서 시작해 임정 부주석 김규식(박정애 시인 작·이하 같음), 의열단장 김원봉(김이하), 의병장 신돌석(권혁소), 시인 윤동주(최두석), 헤이그 특사 이상설(서홍관), 대한독립군 총사령 홍범도(이동순), 경술국치에 항의해 자결한 황현(전비담)까지 50분이다.

이 중 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 전문의)이 쓴 이상설 편을 보면 “연해주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는/ 하얀 화강암 비석이 서 있다/ (…) 이완용의 후손들이 나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땅을 찾아 가려고 소송 중인 이 조국에 돌아오시라/ 야당 대표가 반민특위가 민족분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이 나라에서 다시 한 번 통곡하시라”고 현 시국을 고발하고 있다.

맹 회장은 지난해 평론집 <시와 정치>를 펴냈다. 이 평론집의 출판사 서평을 보면 “세월호 참사·한국사 국정화·노동법 개악·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비정규직 문제·국가 기관의 선거개입·전교조 법외노조 판결·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독립되지 못한 검찰과 언론 등 민중이 피를 흘리며 세운 민주주의가 후퇴한 시대에 ‘정치 참여시’가 필요하다”고 요약했다. 그는 “문학이 정치에서 멀어져야 미학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은 진정 미학을 위해 철학으로 승화된 것이 아니라 보수권력자들의 논리”라며 “사회가 모순되고 비합리적 병폐가 있다면 그것을 더 깊게 인식하는 것이 참된 미학”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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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5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민족문학연구회를 창립하고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민족문학연구회 제공

-‘시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참여문학’이라는 은유적 표현보다 더 자극적이다. 그만큼 절실했나.

“당연하다. 조지 오웰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글 쓰는 목적 네 가지를 말했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 그것이다. 앞의 세 가지는 인식화된 미학의 기준이라면 정치적 목적은 바람직한 인간세계로의 지향 욕구를 말한다. 조지 오웰은 히틀러 등장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전체주의에 맞선 민주사회를 지향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시는 정치적이되 정치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다수·세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마치 ‘청국장은 좋은데 된장은 싫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웃음) 앞의 정치는 원론·이념·철학의 개념이고, 뒤의 정치는 세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르다. 같은 단어지만 시가 세속적 세력에 협조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자신의 문학 주 관심사 ‘노동’과 ‘분단’

-노동문제는 2000년대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유입으로 황폐해졌다. 과거에 흔치 않던 ‘비정규직’이라는 굴레에 청년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 비정규직 청년은 전철 스크린도어,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죽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금수저·흙수저라는 신분고착 세상이 됐다. 지난 촛불혁명 바탕에는 이 비정규직과 쉬운 해고에 저항한 노동세력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노동문학은 좀 시들한 분위기다.

“아니다. 실제는 많다. 내가 <푸른사상>

주간을 하고 있는데 절반이 노동자 시다. 평론가들이 다뤄주지 않고 언론이 보도하지 않아 그렇지, 출간된 노동시집은 매우 많다. 박상화 <동태>, 노동자 시인 정세훈의 <부평4공단 여공>도 감동적인 시다. 송경동을 비롯해 노동자 시인도 많다. 비평계·학계·언론계가 노동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거 있던 <노동문학>이나 <노동해방문학>이라는 노동문학 전문잡지가 지금도 있나.

“지금은 안 나온다. 노동자와 노동조합도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노동조합도 투쟁뿐 아니라 생산을 위한 활동이나 연대로로 바뀌어야 한다. 노조 투쟁기금으로 조합원 유학도 시키고, 세미나를 통해 조합원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자금이 풍부한 민주노총이라면 1년에 1억원만 투자하면 <노동문학>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 전태일 문학상 심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노동문학 주제도 ‘맺힌 투쟁’에서 달라져야 한다.”

그는 자신의 문학에서 주된 관심사는 ‘노동’과 ‘분단’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가 분단모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의 최근 평론집 <시와 정치>에서 밝힌 최종 결론은 바로 통일이다. 그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통일 의식조사에서 20·30대는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더 많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시인들이 분단극복에 대한 시를 써야 책임의식을 가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 사회주의권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 유입·확장으로 문학의 주제의식이나 미학 기준이 급격히 달라졌다”면서 “자유·정의·역사·분단극복 등 거대담론은 소소한 미시담론이나 개인의 경제이익 등으로 바뀌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정치현상에 파고들어 미학 기준을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담론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맹 회장은 1963년 충북 단양 출신이다. 부친은 가난한 농부(한때 광부)였고, 포철공고를 나온 그는 한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노동자 생활을 했다. 뒤늦게 그는 대학을 두 군데나 다니며 문예창작과 국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창작을 하려면 이론을 알아야 했기에 공부를 길게 했다”면서 “문학에서 학교는 중요하지 않으니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기자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쓴 책이나 포털만 검색해도 쉽게 출신 대학이 나온다.

그는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시를 쓰기 시작해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을 받았다. 1999년 <현대시학>에 평론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만인보의 시학> <시와 정치> 등이 있다. 그는 2005년부터 안양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거듭 단체만 소개하고, 개인 소개는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 이유는 회장이 ‘너무 튀면’ 모임에 해가 될 것이라는 ‘기우’ 때문이다. 곱상한 외모에 목소리도 작고 걱정도 많은, 그는 영락없는 연약한 ‘문학청년’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문학을 말할 때는 친일을 척결하고, 노동시·통일시를 요구하며 세상의 거대담론과 맞서는 담대함을 보였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2019-08-26> 경향신문 

☞기사원문: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족문학연구회장 맹문재 “독립투사 투혼으로 ‘토왜’ 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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