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성명] 통감부·조선총독부 유지遺址의 현상 보존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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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통감부·조선총독부 유지遺址의 현상 보존을 촉구한다

재건축 과정에서 통감부(조선총독부 구청사)의 유구가 드러나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서울애니메이션센터(예장동 8번지 일대) 신축 부지는, 조선시대 이래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제국주의 일본의 한국 침탈과 식민지배의 총본산이 자리했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원형을 보전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한 뒤로 이 일대는 왜성대倭城臺 왜장대倭將臺 등으로 불렸으며, 일제침략기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왜성대정倭城臺町이란 행정 지명을 갖게 됐다. 해방이 되어서야 조선 순조 때 유본예가 지은 『한경지략漢京識略』에 근거해 예장禮場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되찾게 되었다.

본래 영문 군졸의 훈련장이었던 예장은 일제침략기 일본군의 전승식장이나 포병들의 사격 연습장으로 쓰였으며,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의 퇴위를 강박할 때는 대포를 배치해 무력시위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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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감부 터 발굴현장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인 1907년 2월 통감부 건물이 들어섰으며, 경술국치 이후부터 1926년 일제가 경복궁을 가로막아 신청사를 세울 때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됐다. 악랄한 식민통치의 뇌수가 똬리 틀고 있었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현장인 것이다. 동시에 1921년 9월 12일 김익상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투척 사건이 일어났던 항쟁의 공간으로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0년 8월 29일 국치 100년을 맞아 한일 시민사회의 뜻을 모아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을 설치함으로써, 이곳이 역사의 현장임을 내외에 알린 바가 있다. 다행히 서울시도 미래세대가 오욕의 역사를 망각하지 않도록 남산 일대에 ‘국치의 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보면 애니메이션센터 재건축을 강행하는 불상사는 없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발굴조사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 또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들리는 바로는 현재 문화재위원회에서 매장문화재 보존방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이 문제는 폐쇄적으로 논의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의 아베정권과 극우세력이 경제침략을 노골화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국치’에 버금가는 국가적 모욕을 견뎌내고 있다. 지난날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역사를 망각하지 않고 오늘의 자산으로 삼는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통감부 유지遺址는 개발논리가 아니라 역사성에 맞게 보존되어야 한다.
둘째, 서울시를 비롯한 관계 당국은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과 향후 일정을 공개하여야 한다.
셋째, 보존과 활용에 대해 학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2019년 8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 ·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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