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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아들 백남준의 작품전시를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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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XxFIhR

 

시라카와 라쿠쇼를 아십니까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부친, 백낙승의 창씨개명 이름입니다

 

백낙승은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태창직물공업주식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1939년 12월 당시 1만원을 국방비로 기부하였고, 한해구제기금으로 3천원을 바쳤습니다

1941년 창신공립심상소학교(현재의 서울 창신초등학교)에 2천원을 기부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포상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12월 해군기 제작비로 7만 5천원과 비행기 1대를 기부했습니다

1940년대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장기화하며 직물업 중심이던 회사를 조선총독부가 추구하던 군수중공업장려정책에 부응하여 군수품 생산으로 사업을 확대합니다

1942년에 조선도변주공 주식회사 사장이 되어 조선총독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소형용광로제철사업에 투입되었으며, 이 회사는 43년에 일본무연탄제철주식회사로 개명합니다

1943년 3월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군수생산책임제에 따라 생산책임자로 2만5천톤의 선철을 생산했습니다

 

이후, 함선 건조를 위해 강원조선철공주식회사에 투자하여 사장 역임, 군수업체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 설립에 참여하여 주식 인수, 일본무연탄제철주식회사가 군수회사법에 의해 지정업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군수품을 생산 조달하는 데에 투입됩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2015

 

그렇다면, 백남준은?

부친 시라카와 라쿠쇼가 친일행위로 모은 재산 덕분에 어릴때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생활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상류층만 다니던 수송국민학교와 경기공립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이후 1949년 홍콩 유학 후 귀국하여 만 18세가 되던해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에 정착합니다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도피한 후, 부친 시라카와 라쿠쇼가 친일행위로 축적한 재산으로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마음껏 하게 됩니다

 

자서전에 자신의 탄생에 대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쾌락을 음미하는 동안 잉태되었다고도 표현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 시라카와 라쿠쇼의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비판, 한민족의 피로 벌어들인 돈으로 공부한 것에 대한 반성은 왜? 어째서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일본에서 공부하며 시를 썼던 윤동주 시인도 자신의 작품에 부끄러움의 감정을 표현하였습니다. 백남준은 그런 부끄러움조차도 없는 사람입니까

 

반민족적친일행위로 벌어들인 돈으로 제작된 미국 국적인 백남준의 작품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백남준 아트센터와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피로 만들어진 작품의 전시와 교과서 등재를 중단해주세요

그리고 최근 뉴스기사에 나오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전시된 다다익선의 유지보수 비용 또한 일본으로 귀화한 백남준의 큰 조카이자 작품 저작권의 소유자인 하쿠다 켄에게 청구하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XxFI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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