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상 수상소감]
공영방송의 책무를 잊지 않을 것
KBS 밀정 제작팀 언론상 수상자
면구스러운 이야기부터 하자면, <밀정> 2부작이 여기저기서 좋은 평가를 잇달아 받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5분짜리 영상조차도 ‘길어서’ 시청하기 힘들다는 초고속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많은 열정을 쏟아 만든 진지한 다큐멘
터리는 그 분량에 상관없이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소구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도 재확인했다고 할까요.
그러나 <임종국상>은 여타 평가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묵직한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가. 계속 되뇌게 됩니다.
‘과공비례’가 되지 않기 위해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상을 받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상은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보여준 성취에 대한 축하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응원도 함께 포함된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힘이 나고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책장에 꽂힌 <친일문학론>을 다시 꺼내보다가 임종국 선생님이 (지난해 작고한) 김윤식 선생님과 각별한 교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거장은, 다른 거장을 알아보는 안목을 청년시절부터 갖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열하게 살다 가신 두 분의 업적을 어떻게 한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냐마는,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를 탐구하는 것을 한평생 업으로 삼은 게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습니다.
저희들의 밀정 추적도 100주년이라는 축제기간에 걸맞지 않은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의 일단을 가감 없이 들춰내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엄정함이란 ‘빛과 그늘’을 모두 직시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누군가를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어둠을 자꾸 이야기해야만 밝은 부분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 말씀이 저희들 마음속 출발점 같은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댓글을 읽어보면 시청자들도 이미 그렇게 총체적으로 방송의 의미를 확장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당한 정치권력에서 벗어나 이제 다시 새롭게 출발하고 있는 KBS는, 그러나 전혀 다른 차원의 파고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급변해버린 언론환경이 그것입니다. 그날의 뉴스가 그날 다 소비되지 못한 채 휘발되고, 장기간 공들여 기획 취재한 보도물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며, 유명인이나 연예인의 ‘몰락의 서사’만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언론사들이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탐사보도 역시 새로운 방향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제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이번 <밀정> 2부작은, 그런 환경에 놓인 저희들에게 어떤 기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저널리즘의 기본이란 무엇인가. 비판적 문제의식과 끈질긴 탐구를 배제한 채로는 그 어떤 탐사보도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 기본 요소 하나하나를 벽돌 쌓듯 충실히 이행할 때 시청자들은 많든 적든 분명한 호응을 보여준다는 것 말입니다. 특히 <밀정>
2부작은 장기간의 취재와 투입된 예산·인력의 스케일 측면에서 볼 때, 공영방송 KBS만이 수행할 수 있는 탐사보도였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KBS는 이런 걸 잘해야 하고, 이런 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언론사의 난립 속에 KBS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한 갈래의 길이 여기에 있다는 게 저희들 생각입니다.
내년 2020년이 되면, 아마도 100주년인 올해만큼 역사 돌아보기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니까요. 그러나 단지 역사적 소재를 많이 다루고 안 다루고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동체가 응당 공유해야 할 건강한 역사의식을 현재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환기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임종국상>이 저희들에게 주문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 강조점이 찍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책무와 주문을 늘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