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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강제동원 대법 판결 무력화 지적에도…‘문희상안’ 한일 정상회담 전 밀어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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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장, 이번주 법안 발의 추진
이달말 정상간 논의 ‘마중물’ 기대

일 사과 없이 위로금만…소 취하 조건
‘승소 예상 피해지’ 지급 기준도 모호
피해자들 “졸속 입법 말라” 반발

대전 지역 시민단체가 9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강제노역 노동자상 앞에서 ‘문희상 안’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 기업 기부금과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위로금)를 지급하는 이른바 ‘문희상안’을 이번주 발의할 예정이다. 법원에서 승소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에도, 23~24일 한·중·일 정상회의 기간 개최를 조율 중인 한-일 정상회담에 맞춰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문희상안’은 일본의 사과와 책임이 빠진 가운데 피해자들이 소송을 포기해야 위자료(위로금)를 받을 수 있는 구조여서, 20년의 법적 투쟁의 결실인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피해자 22만여명 중 ‘소송 관련’ 일부만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형평성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 의장이 법안 발의를 서두르는 것은 한-일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이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서는 것을 조건으로 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연기되었지만, 양국 갈등의 핵심 쟁점인 ‘강제동원’이 해결돼야 한-일 관계가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한·일 정상이 논의할 때 ‘문희상안’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일본의 사죄를 명문화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양국이 화해의 계기를 만드는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양국 기업 기부금, 국민 성금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의장은 강제동원과 관련해 두개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기억·화해·미래재단법’(재단법) 제정안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이다. 애초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 하나로 ‘문희상안’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소송 피해자’에 맞춰 아예 새로운 법을 만들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미 집행력이 생긴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재판에서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와 유족들이다. 현재 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은 1천여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700~800여명의 소송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의장실 관계자는 “소송 중이거나 앞으로 소송을 준비하는 피해자 모두 대상이다. 소송에 들어간 피해자는 소송을 포기하고 신청하면 된다”며 “재단에서 심사를 거쳐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 문제도 있어 ‘소송 포기’를 놓고 피해자들 사이에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또 ‘문희상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소송을 유지할 경우 일본 기업 현금화 문제 등은 여전히 남게 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위자료 심사와 지급을 놓고도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미쓰비시중공업 소송 등을 대리하고 있는 이상갑 변호사는 “이미 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았는데, 또다시 심사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특히 일부 소송 관련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만 21만8639명이다. 노무자가 14만8961명, 군인 3만2857명, 군무원 3만6702명, 위안부 등 기타가 119명이다.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 등 지급 기준도 애매하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그동안 지원이 미비해 피해자들 사이에서 위자료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모호한 기준으로 선별해 지원할 경우 새로운 법적 분쟁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단을 놓고 ‘세금 낭비’란 비판도 피해 가기 힘들다. 현재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이 있는데, ‘문희상안’이 통과되면 별도로 ‘기억·화해·미래재단’이 생긴다. 강제동원 관련 재단이 두 개가 되는 셈이다. 의장실 관계자는 “위자료 지급 등이 있어 당분간 별도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나중엔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재단법과 함께 강제동원 특별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강제동원 법안을 병합해 개정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군인·군무원 지원과 2015년 없어진 강제동원 조사위원회를 다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조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군인·군속 지원에 상당한 재정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불투명해 사실상 ‘구색맞추기’라는 지적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강제동원 문제는 졸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입법을 중단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2019-12-10> 한겨레 

☞기사원문: 강제동원 대법 판결 무력화 지적에도…‘문희상안’ 한일 정상회담 전 밀어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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