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가 – 식민주의 전승과 소리의 기억
긴 겨울을 뚫고 만물이 생동하는 3월이다. 매년 이맘때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곳이 있다. ‘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예상치 못한 사태로 인해 일선 학교에서는 학사일정의 혼선이 빚어진 상황이지만, 신입생들을 맞을 채비로 학교는 그 어느 곳보다 분주하다.
신입생의 신분으로 맞이하는 3월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이면서도, 무엇보다 새로운 학교의 역사와 학풍에 대해 익히는 시기이다. 학교의 전통을 상징하는 ‘교가’(校歌)를 처음 접하는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런데 이 영구불변의 상징물인 교가를 둘러싸고 기억전쟁이 시작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일본 식민지배 이후 만들어진 교가
제국주의 위한 획일적 인간상 담아
조국·민족 위해 충성·헌신 요구
해방 후 대부분 교가에 그대로 전승
군사정권·독재시대 거치며 심화
‘교가’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각종 행사를 비롯해 매주 조회시간에 제창 형식으로 부르게 되는 교육용의 노래이다. 학창 시절의 일과와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의 한구석을 차지하는 교가는 그만큼 우리의 일상 속에 알게 모르게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일상의 불가피한 속성인 ‘하찮음’은 교가가 담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문제적인 지점들을 간단히 덮어버린다. 그 별것 아닌 노래 속에 제국주의와 개발독재라는 질곡의 시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생소하다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교가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이다. 메이지 정부의 국시인 근대화 또는 국민화 작업은 공교육 기관을 중요한 거점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국가 정책에 따라 기획된 교과목을 통해 어린 학생들은 황국신민으로 길러졌다. 여기에서 제국 일본과 그 식민지 간의 차이는 없었으며, 당시 조선 반도에서도 이른바 ‘황국신민화’라는 교육 목표는 동일했다.
이러한 황국신민화 교육에 있어서 음악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독특하다 할 수 있는데, 이는 음악이 지니는 정서적인 힘과 무관하지 않다. 음악이 인간의 심성을 결정한다는 에토스론적인 사상에 따라, 당시의 음악 교과서인 창가집에는 ‘용장 활발하고 쾌활한 정’이 넘쳐흘렀다. 우울하고 비탄에 젖은 감정은 퇴폐로 낙인찍혔다. 이 대목에서 ‘우울한 정서를 권하는 정권이 과연 있었던가’라는 의문을 잠시 던져본다.
다시 교가로 돌아가보자. 수차례 개정을 거듭한 대한민국의 음악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각급 학교에서 여전히 불리는 교가 속에는 당시 제국이 요구했던 규범화된 인간상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대부분의 교가에서는 학생들에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겨레’의 ‘일꾼’이자 ‘등불’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학교 교가의 경우 진선미나 현모양처의 규범은 일종의 클리셰로 등장하고 있으며, 남학교의 경우 극단적으로는 ‘나라의 전사(戰士)가 되어’라거나 ‘이 몸을 깎아 기둥을 삼고’ 식의 선동적이고 호전적인 문구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유형의 가사들은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군국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군사정권의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며 한층 심화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백여 년 된 유서 깊은 학교의 교가든, 새로 개교한 학교의 교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사실상 판박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교가는 이전 시대의 규범을 단절 없이 계승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교가 하나 정도는 외우고 있을 터이니 그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교가를 ‘청각적 기억의 매체’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교가에 기록된 기억의 역사는 생각만큼 가볍지 않다.
진보 성향 교사들 중심 변화 바람
판에 박힌 가사·내포된 규범 둔 채
일상 속 식민주의 척결 ‘무의미’
획일화된 규범에서부터 해방돼야
식민주의 청산 시작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요지부동의 교가에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변화의 주체는 주로 진보적 성향의 교사 단체들이다. 교가를 비롯한 교목, 교화, 교표 등 학교의 상징물이 지니는 식민주의적 속성에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 단체에서 교가 교체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상에 침투해 있는 식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준성역화되어 있는 학교 상징물에 외과적 수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 내용인즉, 교가를 비롯한 학교 상징물들은 친일 혐의가 있는 인사와 관련된 경우가 상당수이며, 이는 식민주의의 잔재이므로 친일과는 무관한 인물에 의해 새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친일 문제는 간단히 청산된다는 논리이다. 실제로 2019년 들어 소위 친일파로 분류되는 음악가가 작곡한 교가들은 상당수 교체된 바 있다.
교육계의 움직임을 추동한 현실정치의 맥락도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지소미아 종료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2019년 대한민국은 소위 ‘NO JAPAN’의 구호로 뜨겁게 달아오른 바 있다. 교육계의 친일파 척결 운동이 한·일 간의 관계 악화라는 정치적 맥락과 때를 같이한다는 사실은 교가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소거하는지 그 실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연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교가 교체 작업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므로 섣부른 판단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 분명한 것은 친일파 청산이 곧바로 식민주의 청산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판에 박힌 가사, 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식민주의적인 규범은 그대로 둔 채 곡조만 바꾸면 식민주의의 기억은 소거될 수 있는가. 가사와 곡조 모두 교체된다 한들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없다면 무의미한 일이 아니겠는가. 식민지배 이래 공고히 구축된 규범화된 인간상은 아직까지 수정되지 못한 채 영속되고 있는 것이 교가 교체의 안타까운 현주소이다.
적어도 식민주의의 단절은 획일화된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식민주의를 계승한 국가주의 사상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규범은 자칫하면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도쿄대학교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교수의 비판이 말해 주듯이 전사자들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 기리는 국가의 추모 의례는 전쟁의 실체를 가리는 은폐 행위이며, 이는 학교 교육을 통해 전승되는 규범화의 사슬로부터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교가는 기억을 작동시키는 청각적인 매체로서, 기억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장소이다. 특별히 기억할 일이 없는 교가이지만, 정작 잊으려고 하면 쉽사리 잊히지 않는 것이 또한 교가이다.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온갖 기억들이 경합과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소리의 기억을 둘러싸고 소리 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도 함께 귀 기울여볼 때다.
배묘정 |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2020-03-09> 경향신문
☞기사원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5)겨레·헌신·일꾼…교가 속에 쟁쟁한 식민주의·국가주의 유산
※ 연재 –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
☞(4)재난을 기억하는 것은 상실을 위로하는 것이다
☞(3)‘위안부’의 실증은 끝났다, 이젠 ‘초국적 방법의 기념’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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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억을 학살하라’…그들이 비극의 역사를 부정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