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 번역 출간
(서울 = 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살아있는 사람을 얼리거나 세균을 주입해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지켜보고 산 채로 해부하는 만행을 저지른 ‘731부대’의 이름은 한국에서도 웬만큼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인터넷 블로그나 삼류 저작물, SNS를 통해 나도는 정보는 거짓이거나 부풀려진 것이 많다. 생체 해부 사진이라거나 한국 역사상 유명한 인물이 생체 실험의 희생이 됐다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큰 틀에서 이 부대의 존재와 역할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입증된 만큼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근거가 없는 정보로 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지를 강조하기보다는 세부적인 진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데 더 긴요한 작업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단체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15년 전쟁과 일본의 의학의료연구회’라는 모임이다. ’15년 전쟁’이란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을 거쳐 1945년 일제의 패망에 이르기까지 15년을 하나의 연속된 전쟁이라고 보는 개념이다. 이 모임은 의학계·의료계의 전쟁 책임에 대해 자신의 문제로 직시하고 일본의 의학과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발휘하자”는 취지로 2000년 결성된 이래 매년 정례회와 회지 발행을 통해 15년 전쟁과 관련된 사실 규명 작업을 해오고 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건강미디어협동조합·원제 NO MORE 731)는 주요 탐구 대상 가운데 하나인 731부대에 관해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관련자들로부터 증언을 듣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과 동문이며 그와 직접 대면하기도 했던 원로 의학자를 비롯한 의대 교수, 의사들과 731부대의 최말단에서 손발의 역할을 한 소년대원, 중국인 피해자, 언론인, 연구원 등의 증언과 조사 결과 등을 담았다.
가해자라고 분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시노즈카 요시오(篠塚良雄)는 실업학교 재학 당시인 1939년 소년대원으로 지원해 당시 만주국 하얼빈(哈爾濱) 외곽 핑팡(平房)의 731부대에 배치된 후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한다. 그는 세균을 대량 생산할 때 쓰는 균주(菌株)를 운반하는 것과 같은 허드렛일을 맡았다. 지위상 고급 정보에 접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증언한 내용은 역사적으로 밝혀진 사실과 일치한다. 1939년 일본과 소련의 노몬한 전투 때 세균을 무기로 사용했다거나 1940년 페스트균 양성을 위한 벼룩을 운반했는데 그것이 닝보(寧波) 등지에서 중국인들에게 공중투하된 것 같다는 것과 같은 증언이다. 그는 생체실험과 생체해부에도 참여했다. “처음 본 희생자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그는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점차 익숙해졌고 별다른 느낌을 갖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세균전 피해자들의 증언도 나온다. 대개 어린 나이였던 증인들은 중국 화중(華中) 지역에 투하된 페스트균 폭탄으로 가족들이 페스트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전염 우려로 희생자들의 시신은 제대로 된 장례도 없이 버려졌고 남은 가족들은 강물 위에 띄운 작은 배 등에 격리돼야 했다. 731부대의 페스트 세균전은 일본 법원이 전후 제기된 소송에서 인정한 바 있다. 도쿄지방법원은 2002년 8월 중국인 피해자 180명이 낸 소송판결문에서 “731부대는 1940~1942년 페스트균을 감염시킨 벼룩을 상공에서 살포하거나 콜레라균을 우물이나 음식물에 넣는 등 방법으로 세균전을 실시해 약 1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일본 법원은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배상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여러 사정을 전제로 고차원의 재량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라면서 기각했다.
책은 이밖에 생체실험을 간접 입증하는 731부대 참여자의 논문, 세균 및 독가스 실험시설과 세균 무기 연구 및 생산시설 등을 갖춘 731부대 터 현장 조사 자료, 도쿄 전범재판 기록과 미국·영국·소련 등 연합국 측 보고서와 같은 여러 자료를 분석한다. 그러나 대부분 단편적이고 간접적인 자료들이며 731부대의 만행의 구체적인 전말과 최종 책임자를 가려줄 일목요연한 증거나 고위급의 자료는 없다. ’15년 전쟁’ 모임을 비롯해 731부대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애태우는 것은 전후 미국과 일본의 야합으로 진상이 은폐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미국과 일본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세상에 드러날 자료들이 남아 있다.
미국은 전쟁범죄로 고발해야 할 731부대 관계자를 ‘냉전’ 협력자로 만들기 위해 그 죄를 ‘면책’했고 그들이 얻어낸 세균전 등에 관한 노하우를 끌어내기 위해 731부대의 모든 것을 은폐했다. 미국 육군의 의학연구 관계자는 731부대의 연구 자료에 관해 “그것은 일본인 과학자들이 수백만 달러와 여러 해의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이다. 이러한 정보는 인체실험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우리 실험실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 데이터를 입수하기 위해 든 비용은 25만엔이며 실제 연구를 하는 데 드는 비용과 비교하면 아주 소액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소극적 태도는 독일 전범재판에서 생체실험 등에 참여했던 의사 전범 20명이 기소돼 7명이 사형을 선고받는 등 무겁게 처벌된 것과 비교된다. 심지어 소련조차 전쟁 후 만주를 점령한 뒤 731부대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 전모를 거의 파악했고 100명이 넘는 관계자들 가운데 12명을 기소했다. 소련은 조사 내용을 미군 측에도 넘겼으나 미국은 반인도 범죄를 처벌하는 대신 731부대의 연구 성과를 넘겨받고 일본을 냉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용인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전범 처벌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국 역시 731부대에 관해 상세히 조사할 필요성은 느꼈을 것이고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지난 1989년 아사히(朝日) 신문은 “미국의 육군기록관리부장이 731부대에서 입수한 자료를 박스에 넣어 일본 정부에 반환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료의 행방에 관한 일본 의원의 질의에 일본 정부는 “1958년 미국이 압수한 구 육군 자료를 반환받아 현재 약 4만건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나 세균전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고 발뺌했다.
’15년 전쟁’ 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731부대 관계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문제”라며 거부해 오고 있다. 일본 의학계의 대표단체인 일본의학회도 진실 규명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15년 전쟁’ 모임 등이 정기 총회나 심포지엄 등을 통해 731부대 문제를 비롯한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는 주제를 다룰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의학회는 응하지 않고 있다.
한일 통·번역가 하세가와 사오리 씨와 함께 책을 공동 번역한 최규진 씨는 역자 후기에서 “731부대를 ‘광기’나 ‘악마’로 치부하는 것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다가설 수 없다. 더욱 냉정하게 그 너머에 있는 제국주의의 민낯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고 간 사람들과 그것에 편승한 사람들, 그로 인해 짓밟힌 사람들이 같지 않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731부대의 피해는 주로 중국과 중국인에 집중됐지만, 우리 피해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 여러 자료로 입증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의 양심 세력과 연대하고 진실 규명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다.
408쪽. 2만2천원.
cwhyna@yna.co.kr
<2020-04-02> 연합뉴스
☞기사원문: 미·일 야합으로 75년간 은폐된 731부대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