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민주화·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김병상 필립보 몬시뇰(원로사목)이 25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가톨릭계에 따르면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9년 사제로 서품했다. 194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과 폐결핵 투병으로 학업을 중단했고, 1963년 뒤늦게 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갔다.
그는 반평생을 민주화·사회 운동 현장에 있었다. 1977년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기도회를 주도했다 구속됐다.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민문연 이사장 때인 2009년 당시 임헌영 민문연 소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과 함께 ‘친일인명사전’을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 바쳤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부여하는 칭호다. 그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ㅍ그를 두고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이면서도 지역 선교와 신앙 교육 등 사목활동에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몬시뇰은 2018년 12월 회고록 ‘따뜻한 동행’을 펴냈다. 사제가 되기까지 과정을 비롯해 현대사 한복판에서 겪은 일들을 담았다.
2년여 투병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25일 오전 0시 5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빈소는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장지는 인천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eddie@yna.co.kr
<2020-04-25>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주화·사회운동’ 헌신 김병상 몬시뇰 선종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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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늘 헌신하고도 ‘하느님 앞에 부끄럽다’ 했던 시대의 큰어른”
☞경인일보: 인권·약자 위한 쉼없는 저항… ‘민중의 버팀목’ 지다
☞연합뉴스: 문대통령, 김병상 몬시뇰 선종 애도…”영원한 안식 기원”
☞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애도 글 보낸 ‘김병상 몬시뇰’은 누구?···독재정권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 ‘대부’
☞경향신문: 정부, ‘민주화운동’ 헌신한 고 김병상 몬시뇰에 국민훈장 추서
☞한겨레: ‘인천민주화운동 대부’ 김병상 몬시뇰 선종
※참고기사
☞한겨레: “사제로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노력했습니다” (2018.12.17)
☞한겨레: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병상 신부 (2008.09.09)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유신독재 반대 민주화운동에 앞장
동일방직사태 굴업도핵폐기장 등 마다않고 사회정의 실천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질곡의 현대사에서 사회 정의와 민주화운동을 실천하며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병상 몬시뇰 원로사목이 25일 새벽 0시 5분 향년 88세 일기로 선종했다.
고 김병상 신부는 천주교 인천교구를 비롯한 각 교회 본당이 펼치고 있는 자선운동과 사회복지사업 등의 선교운동을 일군 분이자, 인천 민주화운동의 큰 숲이며 어른이다. 동일방직대책위와 굴업도핵폐기처리장 대책위에 등 김 신부는 시민과 노동자와 함께했다.
김병상 신부는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은 천주교에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원로 신부에게 교황청이 공로를 인정해 내리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김 몬시뇰은 1932년 충남 공주 교우촌 요골공소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김 몬시뇰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1948년 서울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와중에 폐결핵에 걸려 53년 7월 신학교를 그만뒀다. 그 뒤 병마를 극복하고 1961년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다시 1963년 33세 때 서울가톨릭신학대에 입학했다.
그는 1969년 12월 13일 비교적 늦은 나이인 38세 때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소신학교 때 전쟁과 피난생활을 겪고 병마와 싸우느라 늦깍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은퇴할 때까지 37년 동안 사제생활하며 기독교 복음과 사회선교, 사회정의 실천에 앞장섰다.
김 몬시뇰은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있어 본당사목과 사회사목을 균형 있게 이끌어온 사제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는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면서 교회 밖에서 더욱 폭넓게 알려졌다. 그는 교구 총대리로 재직하던 1977년 유신체제에 맞서다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김 몬시뇰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유신독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창립되자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때부터 그는 천주교 인천교구가 실천했던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됐다. 앞서 얘기한대로 1977년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76년~80년 인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대책위원장을 맡아 노동자를 보호했다.
김 몬시뇰은 특히 1989년~95년 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를 지낼 때 같은 기간 인천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함께 창립한 ‘목요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인천시민운동의 초석을 마련했다.
김 몬시뇰은 목요회 회장으로 굴업도핵폐기물처리장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굴업도핵폐기물처리장을 백지화 했다. 당시 대책위는 인천 지역 재야단체와 학생단체, 주민단체가 대거 결합한 지역 전선 운동기구였다.
그 이후에도 김 몬시뇰은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와 인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이어갔다. 김 몬시뇰은 2004년 학교법인 인천가톨릭학원 이사장 대리를 맡아 활동하다가 2006년 11월 사목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2008년~13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으로 참여하며 교회 안팎의 현장에서 기도와 사회선교 활동을 펼쳤다. 그 뒤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요양시설에서 머물다 2020년 4월 25일 새벽 선종했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주관하는 김병상 몬시뇰의 장례일정은 아래와 같다. 분향소는 인천 중구 답동 천주교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이며, 장지는 서구 하늘의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장례일정]
– 분향소 : 천주교 인천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인천시 동구 박문로 1, 032-765-6961)
– 홈페이지: http://www.caincheon.or.kr/
– 대중교통편: 제물포 북부역에서 송림동(동화동성당)방향으로 도보 10분, 차로 3분
– 입관예절 : 4월 26일(주일) 오후 2시 (국제성모병원 장례예식장 입관실)
– 입관 후 미사: 4월 26일(주일) 오후 3시 (교구청 보니파시오 대강당)
– 출관예절: 4월 27일(월요일) 오전 8시 30분 (국제성모병원 장례예식장 예식실)
– 장례미사: 4월 27일(월요일) 오전 10시 (답동 주교좌 성당)
– 삼우미사: 4월 29일(수요일) 오전 11시 (하늘의 문 묘역 성직자 묘역)
– 장 지: 인천 서구 하늘의문 묘원 성직자 묘역
<2020-04-25> 인천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