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전남 고흥 녹동고 학생들 민원에 국가보훈처가 답하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2019년, 전국적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전남교육청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남청소년 역사탐구대회’를 진행해 왔다. 지난해로 9회째를 맞았다. 지난해 주제는 ‘임정 100주년·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 전라도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의 실상과 해결방안’ ‘전남지역 친일잔재의 실상과 해결방안’이었다. 도내 중·고교 70여 개 팀이 참가했다.
‘친일파’ 흉상이 있다는 사실 알게된 학생들
참가팀 중에는 고흥 녹동고등학교 팀도 있었다. 이 학생들은 대회 과정에서 자신들의 고장에 ‘김정태’의 흉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정태(1869~1935)는 강제합병 후, 전남 영광군수·광주군수·순천군수 등을 지냈으며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전남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으로 활동하며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에 협력했다.
1924년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한국병합기념장(1912), 다이쇼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1915), 쇼와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1928) 등을 받았다.
김정태의 아들 김상형(1897~?) 역시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전조선시국강연반 연사로 참여했다. 중추원 의원 시절엔 내선일체 정신의 구현에 대해 “반도민중의 일본화”에 달렸다고 주장하며 “천황 폐하를 경모하여 받드는 정조(情操)를 고양”시키기 위해 “마을에서 학교에서 황거망배(皇居望拜)와 천양무궁(天壤無窮)을 기원하고 마음을 정화해 황국신민임을 맹세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 자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상형은 해방 후, 1949년 반민특위에 송치됐다.
이와 같은 김정태의 친일행적을 확인한 학생들은 2019년 8월 고흥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광복 74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역겨운 동상이 주민들의 휴식공간인 옥하공원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고흥 군민들을 내려다보며 분명히 비웃고 있을 것입니다. 동상이 철거된다면 주민들의 애국심과 지역 역사의식이 한층 더 함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친일파 동상이 버젓이 세워진 채로 우릴 내려다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 민원 제기 학생의 글 발췌
고흥군은 학생들의 민원을 국가보훈처에 이첩했다. 김정태 흉상이 있던 옥하공원 내 토지를 비롯해 약 56만 제곱미터의 토지가 김정태 후손들의 소유였으나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에 의해 국가로 귀속된 이후 현재까지 국가보훈처가 관리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민원 전까지 국가보훈처는 그 땅에 친일파의 흉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2020년 4월 28일, 흉상 철거되다
▲ 김정태 흉상 제거 영상 김정태의 흉상이 기단부에서 분리되고 있다. ⓒ 국가보훈처
▲ 철거중흉상 김정태의 흉상이 철거되는 모습을 후손과 관계자가 바라보고 있다. ⓒ 임승관
민원을 넘겨받은 국가보훈처는 김정태의 후손에게 ‘흉상을 자진 철거할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후손들이 흉상 철거를 미루자 국가보훈처는 행정대집행을 통보했다. 결국 후손들은 지난 4월 28일 오전 흉상을 철거했다.
철거는 국가보훈처와 고흥군청 관계자들이 오기 전에 신속히 진행됐지만, 필자는 그날 오전 일찍 현장에 가 있었기에 다행히 철거의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아 지역 언론사 등에 제공할 수 있었다.
‘김정태 흉상 철거’는 친일파 기념물 철거를 학생들이 요구하고 고흥군과 국가보훈처 등 공공기관이 응답한 사례로 의미가 크다. 흉상 철거를 담당한 국가보훈처 담당자는 “배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행동과 민원 내용에 진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민원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백방으로 철거 방법을 알아내 성과를 이룬 보훈처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해 준 녹동고등학교 학생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20-05-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 김정태 흉상 철거, 이렇게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