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반민족행위자·국가폭력 관련자 묘 이장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시민대회
“친일파 김창룡을 국립묘지에서 찍어내라.”
“광주학살 원흉들의 묘를 현충원에서 파묘하라.”
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1묘역. 친일군인 김창룡의 묘 앞에서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삽 모형을 든 일부 시민은 욱일기를 김창룡의 묘를 덮은 뒤 묘를 파헤치는 ‘파묘 퍼포먼스’도 펼쳤다. 그러고는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고 쓰인 빨간 풍선을 묘비에 매달았다. 이 곳을 찾는 모든 시민들이 알게 하기 위함이다.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광복회대전지부, 대전충청5.18민주유공자회, 대전민중의힘, 대전청년회 등은 제65회 현충일을 맞아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국가폭력 관련자 등 묘 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시민대회에는 주최 단체 회원들 외에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아산지부, 평화재향군인회 회원 등이 참석해 당초 예상보다 많은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장 뒤에는 이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30명과 국가폭력 관련자 16명, 군사반란 가담자 20명 등 66명의 명단이 내걸렸다. 이들은 이러한 반민족행위자, 국가폭력 및 군사반란 가담자들의 묘를 현충원에서 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20여 년째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대로 현충원에 묻혀 있다면서 최근 무르익고 있는 ‘국립묘지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장 먼저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이 발언에 나섰다. 박 지부장은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김창룡과 같은 친일반민족 행위자들과 반인륜적 행위자들이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과 함께 국립현충원에 누워 있는 이 황당하고 참담함에 묘 이장을 줄기차게 외쳐왔다”며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적폐청산이 절대적 과업이 된 이 순간까지도 우리는 분통만 터트리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넘겨주어서는 안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며 “21대 국회에서 관련법 제·개정을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현충원에서 이장시키고, 친일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세력들도 법으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윤석경 광복회 대전지부장이 나섰다. 그는 “국립묘지는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희생하신 분들이 돌아가신 후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모시는 영예로운 곳이고 민족의 성지로 모셔져야 한다”라며 “그런데 이곳 대전현충원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장군 묘역과 독립유공자 묘역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독립군을 때려잡던 간도특설대, 가장 악질적인 밀정이 어떻게 독립운동가 옆에 누워있을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
김회신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사회공공특별위원장도 발언에 나섰다. 그는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 이 땅의 민중들이 그 뜻을 본받고 좆아야할 혼들이 잠들어야 할 이곳 현충원에 독립지사를 잡아 죽이고, 민중을 수탈하고 억압했던 일제 앞잡이들, 민주주의를 짓밟고 민중을 학살했던 망령들이 안장되어 있다”며 “우리 아이들 얼굴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너무 너무 늦었다. 민족의 화합, 평화와 통일, 인류공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반민족·반민중·반민주 망령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역사의 발목을 잡는 망령들과 그 망령에 기생하는 껍데기들을 쓸어내야 한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이곳 현충원에서 몰아내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의 얼을 바르게 하는 상징적 출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식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도 “이곳 국립묘지에는 아직도 적폐체제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애국자와 매국노가 국립묘지에 같이 누워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과 짐승을 한 무덤에 두는 것이나 다름없는 치욕스러운 일이며, 애국자들을 모욕하는 매국적 행위”라면서 “우리는 4.15총선을 친일청산과 제2의 촛불항쟁으로 규정하고 친일파들을 심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21대 국회는 애국 국회, 친일청산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을 통해서도 “친일반민족행위자, 국가폭력 관련자, 군사반란 가담자 등 부적절한 안장자의 묘를 국립묘지 밖으로 당장 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현충원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시고 희생하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호국영령들을 모셔야 하는 곳”이라며 “그런데 일본군 헌병 오장 출신으로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이며, 한국전쟁 전후로 1백만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김창룡이란 자가 대전 시민들도 모르게 1998년 2월 13일 새벽에 숨어들어와 안식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어디 그뿐인가, 쓰레기만도 못한 친일반민족 행위자, 국가폭력 관련자, 군사반란 가담자 등 이곳에서 안식을 취하기엔 너무도 부적절한 자 66명이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의 탈을 쓰고 이곳에서 국가의 보호 아래 잠들어 있다”면서 “대전 시민들은 이와 같은 부적절한 자들을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지난 2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촉구하였으나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외침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들에게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 “더구나 대전현충원을 관리하는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군을 토벌하고 인근 주민들을 학살, 고문, 강간 등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반인륜적 행동을 하였던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이 사후에 이곳에 안장할 수 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이에 우리는 친일반민족 행위자 등 국립묘지에 있어서는 안 될 부적절한 자들의 묘를 당장 이전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김창룡, 소준열, 안현태 등 유족들을 향해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현충원에서 그 묘를 이장하라”고 촉구하고, 정부와 국회를 향해서는 “하루속히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장군1묘역 가장 높은 단에 위치한 유학성(12·12쿠데타 주역, 5.18 광주민주항쟁 때 진압군 측 주요 책임자)의 묘로 이동했다. 묘지에 도착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한 회원은 “우리 광주시민들을 죽인 자다. 이런 자가 국가유공자라는 탈을 쓰고 뻔뻔하게 현충원에 누워있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면서 묘지 앞에 놓은 조화를 걷어찼다. 또한 일부 시민들은 묘지를 발로 밟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들은 또 한 단 아래에 있는 김창룡(친일군인이며 민간인학살의 주범, 김구 선생 암살범의 배후로 지목됨)의 묘로 이동했다. 한 시민은 “이 자한테 우리 할아버지가 죽었다. 독립운동 했다는 이유로…”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시민들은 김창룡의 묘에 ‘반민족행위자 김창룡의 묘를 현충원에서 이장하라’고 쓰인 현수막을 김창룡의 묘에 씌웠다. 또한 ‘욱일기’를 덮은 뒤 “김창룡의 국적이 회복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커다란 삽모형을 들고 묘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묘비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쓰인 빨간 풍선을 매달았다. 묘비 앞에는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알리는 표지판도 세웠다.
그러고는 “친일파 김창룡을 현충원에서 찍어내자”, “역사왜곡 친일망령 현충원에서 몰아내자”, “21대 국회는 국립묘지법 개정하라”, “친일파 파묘하고 친일적폐 청산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 이날 시민대회의 마지막은 애국지사 3묘역에 모셔져 있는 곽낙원(김구 선생 모친) 지사와 김인(김구 선생 장남)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헌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020-06-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가 국립묘지에 떡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