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 창간 16주년 조정래 선생 초청…“녹지 사라지는 제주, 찾을 이유가? 감시하고 견제하라!”
올해로 등단 50년. 작가의 궤적은 컸지만 거장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단호했다.
“고층 건물이 한라산을 가리고 녹지가 사라지고 있다. 그런 제주에 찾아올 이유가 있나?”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권력과 재벌, 언론을 감시하고 견제해라. 그렇지 않으면 국민으로서 직무유기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50년 가까이 소설을 통해 한국사회의 치부를 여과 없이 드러내온 소설가 조정래(78) 선생이 제주도민 앞에 섰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창간 16주년을 맞아 열린 초청 강연이 7일 오후 7시 김봉현 편집국장 사회로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강연은 애초 2월 8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연기된 후 5개월 만에 다시 마련됐다. 강연회 현장은 사전 신청한 청중들로 제한했고, 제주의소리 소리TV와 페이스북 페이지로도 동시에 생중계 됐다.
‘제주의 미래를 말하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선생은 평생의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이 알리고 싶었던 진실, 더불어 대한민국과 제주가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시민 개개인의 ‘의무’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1인당 GDP(국내 총생산)가 3만2000달러 수준이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온 국민이 가난에 허덕일 때만 해도 GDP는 80달러에 불과했다. 몇 배나 늘어났지만 여러분들, 그리고 국민들은 과연 그만큼 행복한가”라고 물으며 “한국의 경제 발전은 박정희 덕분이 아니라 피 흘리며 노동에 매진한 국민들 덕분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고자 소설 <한강>을 썼는데 아직도 국민 절반은 이를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선생은 “3만2000달러 GDP를 자랑해도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청소년 자살률, 이혼율, 경제 불평등은 선두권을 차지하고, 출산율은 최하위를 달린다. 전체 노동시장의 48%를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 주소”라며 “제주도는 어떤가. 제주의 생명은 자연이고, 그 자연을 대표하는 게 바다다. 백화 현상에 해초가 사라지고 전복마저 씨가 마르고 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미래도 암담하다”고 작심한듯 진심 어린 우려들을 토해냈다.
선생은 한국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입법, 사법, 행정, 재벌, 언론’까지 다섯 개의 권력 집단을 꼽았다. “그들의 타락이 한국을 망쳤다”고 직설했다.
그러면서 “소시민들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기에 그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고, 30년 군사 독재의 협박 정치 때문에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정치하는 자들이 제일 무시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흩어지고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이다. 반대로 가장 무서워하는 건 뭉치고 저항하며 외치는 국민들”이라고 피력했다.
특히 재벌과 언론의 폐해를 힘주어 강조했다. 선생은 “대한민국의 제일 큰 기업들이 언론사의 광고를 끊으면 직원 월급을 못주는 게 한국 언론계의 현실이다. 불의를 저질러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건 광고 때문이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흡사 마피아 집단 같은 행태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통찰했다.
선생은 국민들이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시민단체’를 우선 꼽았다. 시민단체를 적극 후원·지원하면서 권력을 감시하자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권력을 감시한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까지 400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다”며 “한국은 1980년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단체가 1만개까지 만들어졌지만 전부 자멸하고 소멸했다. 국민들이 지원 해주지 않아서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민족문제연구소, 경실련 등 제대로 활동하는 단체는 손에꼽을 만큼 소수에 불과하다”고 꼽았다.
선생은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행복은 남이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한국 사회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권력을 만든 당신들이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공무원만 직무 유기가 있는게 아니다. 국민도 직무유기하면 자업자득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라고 권했다. 조정래 선생은 참여연대 창립때부터 함께 하면서 현재 이사로 활동 중이다. 소설 <천년의 질문>을 통해 시민단체 활동을 알리는 등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평생 100번 넘게 방문하며 마지막 생의 종착지로도 생각했던 제주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보냈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 환경 파괴로 인한 실망감도 숨기지 않았다.
선생은 “제주의 생명은 단언컨대 자연 풍광이다. 머리에 물을 품은 한라산 풍광은 바다와 어우러져 대한민국 최고다. 내 손자는 뱃속에서부터 서귀포 앞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과거 나는 제주에서 뼈를 묻겠다고 아내의 동의를 얻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제주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고층 건물이 한라산을 가리기 시작했다. 녹지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싱싱한 자리돔을 먹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주를 방문할 이유가 있느냐. 흉을 보는 게 아니다. 제주도의 문제점을 제대로 직시하고 더불어 고민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문제를 직시해서 푸는 것만이 제주에 밝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
선생은 제주의 미래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암담하다”고 직설했다. 권력과 재벌, 언론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도 거듭 진단했다. 그리고 바로 “여러분, 왜 가만히 있느냐”고 반문했다. 문제도 답도 명쾌했다.
강연 후 청중들과의 대화에서는 ▲조정래 작가의 청년시절 삶을 토대로 오늘날 청년세대들에 대한 조언 ▲세대간 세분화되는 갈등 문제 ▲가짜뉴스 문제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정당 활동 의견 ▲지역 언론의 역할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던져졌다.
선생은 청년에 대한 조언으로 “청년들의 미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내가 살았던 시절은 청년이란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만큼 사회 전체가 가난했다. 타 국가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광부, 간호사를 담보 잡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늘날 청년 문제가 대두되는 것만으로 우리사회가 발전한 것이다. 성급하게 여기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며 “과거를 알아야 현재 자리를 알고, 현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대학을 나왔으니 빨리 취직하고 빨리 정규직 되겠다고 다급해 하기 보단 성숙한 기다림이 필요한게 인생이다. 비정규직 없애고 정규직 늘리는 일에 청년들이 반대하는 오류를 범하진 말자”고 조언했다.
20대 대학생이 던진 ‘세분화되고 있는 세대 갈등 문제’ 질문에는 “50대 이상 세대들의 희생과 투쟁에 의해 오늘 날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점은 젊은이들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의견의 차이를 서로 대화로 토론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상대의 입장이 무엇인가 배려하고 살필 때 화합이 이뤄진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정치 참여도 강조했다. 선생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고 정책 결정이 별 의미가 없다는 기회주의적 냉소주의는 위험하다. 선거 날, 투표하는데 필요한 불과 몇 시간의 인내를 기피 하면서 국가가 나에게, 자기 세대에게 무엇을 해주길 바라나. 이것은 시민으로서 직무유기”라고 일갈했다.
선생은 “자기 권한을 주장하려면 투표해라. 내가 선택한 정치인들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게 필요한 법을 만들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왜 우리를 배려하지 않냐’는 주장은 파렴치한 일”이라고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 저에 대해서도 제가 하지 않은 발언을 한 것 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나서서 바로 잡을까 하다가, 너무 황당무계해서 아무도 내가 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주변 조언을 듣고 그냥 넘어갔다”면서 “남북 문제도 남북이 서로 갈등을 해소하면서 평화롭게 공생하는 방향으로 큰 기류는 잡혀 있다. 반공주의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취하는 수구보수세력과 가짜뉴스는 조금만 기다리면 자연 도태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정당 활동을 해야하는지 고민이라는 질문에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정치다. 정당 가입 활동을 해도 좋다. 다만, 진보적인 정당에 가입하라. 보수는 나쁘다기 보다는 전진이 더디다. 진보는 문제를 개혁하고 혁신해서 나아가겠다는 성향”이라고 조언했다.
지역 언론의 역할에 대해선 “무엇보다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것에 대해선 끝없이 물고 늘어져야 한다.”며 “분명 괴롭고 어려운 길이지만 진실에 목마른 사람들이 후원자로 나설 것이다. 언론인은 가시밭길을 걷겠다는 각오를 했기에 괴로워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저도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았다. 그간 소설을 써왔다. 인생을 담아왔다. 인생은 거센 물살이 흘러가는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고통스럽다. 자기 스스로를 말 삼아 채찍질을 가하는 것이다. 지역언론도 자기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향후 활동에 대해서는 “<태백산맥> 이후로 20년 동안 세워둔 계획 대로 집필하고 있다. 앞으로 20년 더 살면서 다양한 소설을 쓰겠다. 아무리 스마트폰 시대라지만 책도 열심히 읽어달라”는 답으로 강연을 마쳤다.
이번 [제주의소리] 창간 16주년 특별기획 조정래 선생 초청 강연은 소리TV의 VOD서비스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2020-07-08> 제주의소리
☞기사원문: “제주가 점점 파괴되고 있다, 감시 않는 것은 도민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