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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고] 독립유공 서훈 내규 고쳐야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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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 ㅣ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고려대 사학과 박사

참으로 희한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똑같이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항거하다가 순국했는데, 을미의병 참여자(1895년의 양반 유생)는 서훈하고,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1894년의 평민, 전봉준 등)는 서훈을 하지 않고 있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나, 이는 사실이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에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순국선열에 해당하는 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된다. 그런데 독립유공 심사위원들은 이 법률에 의거하여 독립유공자를 심사하지 않고 있다.

1962년에 이병도와 신석호(둘 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됨)가 정한 독립유공 내규 즉 ‘독립운동의 기점은 을미의병이다’라는 내규에 의거하여 심사하고 있음이 최근 확인됐다. 최근 독립유공 심사위원이라고 밝힌 분이 필자에게 “1895년 을미의병부터라는 내규로 심사하고 있다. 전봉준이 서훈을 받으려면 내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필자는 황당하였다.

이병도는 자신이 지은 <신수 국사대관>(1961)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란” “폭동”으로 서술했으며, 2차 동학농민혁명의 구호가 “척왜를 부르짖었지만, 그야말로 형식적인 구호에 불과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신석호도 자신이 지은 <중학교 국사>(1960) 교과서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당의 난”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지금의 역사학자는 아무도 이병도와 신석호와 같이 동학농민혁명을 인식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에 만든 내규는 수명이 다했기에 이제는 고쳐야 한다.

독립유공자법 내용대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는 서훈한다. 서훈 시기는 갑오변란(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 이후 일제에 항거하는 때부터이다”로 바꾸면 된다. 왜냐하면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통일되어 집필된 8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개설서, 독립운동사 분야의 최고 학자(조동걸, 신용하, 김상기 등등)의 저서와 논문에서 갑오변란을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첫번째 침략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한국 근현대사학계가 인정하는 정설과 통설을 바탕으로 기술된다. 학계의 의견이 통일되어 모아진 내용이 교과서에 기술된다. 2020년 현재 8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전봉준을 항일 구국 투쟁을 전개한 총사령관으로, 최시형을 항일 구국 투쟁을 전개하도록 지시한 최고 지도자로 기술하고 있다.

모든 한국사 개설서에 2차 동학농민혁명을 반일 투쟁, 반외세 반침략 민족운동으로 서술하고 있다.

2차 동학농민혁명과 의병운동의 공통점은 적극적인 국권 수호 운동, 항일무장투쟁, 일본의 침탈에 맞선 반침략·반외세 민족운동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차이점은 항일 투쟁의 주체가 농민이냐, 양반 유생이냐에서 갈렸다. 의병운동에 참여한 양반은 1962년부터 서훈이 되고, 2차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항일 농민은 지금도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불공평과 모순은 시정되어야 한다.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는 즉각 독립유공 서훈 내규 개정위원회를 만들어 내규를 개정해야 한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수많은 한말 의병 연구와 동학농민혁명 연구 성과가 내규 개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갑오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한 애국선열의 명예를 진정으로 회복해드려야 하는 역사적 책무가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 필자의 주장과 의견이 다른 분은 반론을 펴기를 바란다. 반론을 환영한다.

<2020-07-16> 한겨레

☞기사원문: [기고] 독립유공 서훈 내규 고쳐야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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