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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쑥스럽지만 지금 읽어도 잘 써” 태백산맥 첫 개정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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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등단 50돌 맞은 조정래 작가
조정래 작가,
30여년만에 다시 다듬어 내기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순으로 출간 예정

작가 조정래가 지난 25일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의 집핍실에서 ‘문학, 길 없는 길’이라는 친필이 새겨진 독서대를 가리키며 등단 50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개정판이 나온다. 작가 조정래(77)는 지난해 10월부터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집필실에 머무르며 이 소설들의 개정판 작업을 진행해 최근 마무리지었다. 새달 말 <태백산맥> 전10권 개정판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9월 <아리랑> 전12권 개정판이, 10월에는 <한강> 전10권 개정판이 차례로 나올 예정이다. <태백산맥>은 1986년에 제1부 3권이 나오고 1989년에 완간된 이래 800만부 정도 판매되었고, <아리랑>과 <한강>까지 합쳐서 3부작 전체의 판매량은 1600만부에 이른다. 대하소설 3부작 개정판은 1970년 등단한 조 작가의 등단 50돌을 기념한 것으로, 그가 이 작품들의 개정판을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첫 개정판
1986년 출간 이래 총 1600만부 판매
“쑥스럽지만 지금 읽어도 잘 썼더라”

지난해 오대산자연명상마을로 이주
“형틀같지만 집필 의자 앉으면 행복”
명예촌장 맡아 ‘인문학 강연’ 등 예정

지난해 10월 평창 오대산 자연명상마을로 이주한 조정래 작가가 지난 24일 조정래문학관인 ‘세심헌’의 대문 앞에서 방문객을 마중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태백산맥>은 1989년 완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 다시 읽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이번에 처음으로 다시 읽었죠. 그동안은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 새 작품을 써야 했으니까요. 다시 읽으면서 문장도 다듬고 묘사도 일부 보충했습니다. 스토리를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다시 읽어 봐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다시 읽고 개정판을 내기로 한 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란 늘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지난 25일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집필실에서 만난 조 작가는 “엄혹한 시절에 <태백산맥>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바람에 국가보안법에 걸려 고초도 겪었지만, 민족의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비극을 완화하고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작품이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흔히 개정판은 문장을 일부 손보고 묘사를 보완하는 수준이지만, 그는 <태백산맥> 10권 말미에서 지식인 출신 빨치산 손승호가 개울물을 마시다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숨지는 장면에서는 비극적인 느낌을 한층 강화했다. 기존 판본에서는 “쪼그려앉은 그는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탕!/ 그의 몸이 솟구치듯이 벌떡 일어났다./ 탕! 탕! 탕!/ 그의 몸이 빙글 돌면서 휘청 꺾였다. 그리고 개울물로 첨벙 곤두박혔다./ 가슴이고 배에서 솟구치는 피가 금방 개울물을 붉게 물들이며 풀려나가고 있었다”로 끝났던 것을, 개정판엔 한 문장을 추가했다. “물에 둥둥 뜬 채 시체는 물결을 따라 느리게 맴돌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손승호의 죽음이 작가로서도 너무 비참해서 그냥 물에 빠져 죽는 걸로만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소설 속에서 영원히 개울물 속에 휘돌며 남아 있어야 독자에게도 그런 비참한 느낌이 오래 갈 것 같았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작가 조정래가 지난 25일 집필실에서 등단 50돌 기념으로 출간하고자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원고를 쓰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개정판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작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작업에 돌입했다.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역시 10월에 출간 예정인 책의 원고를 쓰는 일이다. 2009년 젊은 독자 250여명의 질문에 답하는 글을 모아 낸 책 <황홀한 글감옥>의 속편인 셈인데,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를 부제로 삼았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은 누구인지, 작가로서 슬럼프는 없었는지, 우리 사회의 영어 범람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등 80여개의 질문에 답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친일파 문제에 대한 해법을 묻는 질문에는 “반민특위를 부활시키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이들을 재판에 넘겨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민족의 미래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을 썼다고 작가는 소개했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의 조정래문학관 ‘세심헌’은 전통 한옥으로 지어졌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 25일 한복 차림으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오대산자연명상마을에서 그는 하루 여덟 시간 넘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스스로 ‘형틀’이라 부르는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그는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대하소설 3부작을 마무리하느라 20년 간 사회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그다. “나는 에피소드가 없다는 게 에피소드인 작가”라고 그는 자신을 설명한다.

그는 앞으로 특정되지 않은 시대를 배경 삼아 실존의 문제를 다룬 철학적인 소설 한 편 그리고 영혼과 내세의 문제를 다룬 3권짜리 소설을 쓸 예정이다. 이 작품들의 무대는 오대산 일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작가 생활을 마무리하는 작품이 될 이 소설들을 위해 그는 2017년 말 <한겨레> 독자들과 함께 북인도 불교 성지 순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분당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는 서재의 장서 4천권을 명상마을에서 멀지 않은 한국자생식물원에 기증했다. “가까운 곳에 책들을 놓아 두고 식물원 이용객들이 보도록 하고 나도 필요할 때 와서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기증했다”고 덧붙였다. 식물원의 사무동 2층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조정래 서가’에 마련된 책상에서 그는 이따금씩 글을 쓰고 독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명상마을 명예촌장이기도 한 그는 다음달 말 인문학 강연을 하는 등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을에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솔숲길 명소인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 자리한 ‘세심헌’의 뒷뜰에도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조정래 작가는 하루 8시간씩 집필하는 짬짬이 솔숲을 거닐며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제가 순천 선암사에서 태어나 네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대처승인 아버지가 고 3 때 저를 출가시키려고 법명까지 받았지만 제가 거부했죠. 선암사에서부터 치자면 70여년 만에 다시 부처님 품으로 돌아온 셈이네요. 이곳에서 붓글씨도 연습하고 있는데, 앞으로 10년에 걸쳐 반야심경을 3천번 정도 베껴 쓰려 합니다. 그러고 나면 죽음을 웃으면서 맞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창(강원도)/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2020-07-27> 한겨레 

☞기사원문: “쑥스럽지만 지금 읽어도 잘 써” 태백산맥 첫 개정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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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I뉴스: [조용호의 문학공간] 조정래 “창작이란, 자신의 심장에 총을 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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