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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고작 4억 안 주려고, 또… 일본 부끄럽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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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식민지 노동 착취로 성장한 일본 재벌들

1인 기업이 아니라면, 월급날처럼 기업인에게 신경 쓰이는 날도 없을 것이다. 월세를 떼먹은 기업인의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은 데 반해, 월급을 떼먹은 기업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많이 들릴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월세보다 월급이 더 큰 부담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월급 부담에서 해방되어 사람들을 마음대로 고용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면, 기업의 고속 성장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를 자기 가족처럼 대하며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기업의 규모는 신속히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예전에는 ‘가족 같이 일하실 분을 구합니다’라는 구인광고가 꽤 있었다. 시킬 것 시키고 줄 것 주는 사장이라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처럼 지내보자’고 말하는 사장들 중에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악덕업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악덕업자의 모습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맞서는 일본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의 태도에서 자꾸만 비치고 있다.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금체불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 원을 지급하면 될 일을,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는 판결을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재산 압류 및 압류재산 현금화에 대한 보복 조치까지 강구하고 있다.

악덕업자

▲ 아베 일본 총리 ⓒ 연합/EPA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를 작년 7월과 8월에 단행했다. 그랬던 일본 정부가 이번에는 압류재산 매각을 통한 현금화에 대해서도 보복조치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 주한일본대사를 일시적으로 귀국시키는 방안, 한국 상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안, 한국에 대한 송금을 규제하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만 당한 게 아니었다. 원치 않는 작업장에 강제로 동원되고 노예처럼 혹사를 당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면,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총 4억 원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피해자들이 돈 때문에 소송을 건 것은 아니지만, 4억 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다. 일본 같은 대국이 그 4억 원을 주지 않으려고 이 같은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낯설지 않을 수 없다.

세계를 상대로 침략과 착취를 자행할 당시, 군국주의 일본을 지배한 논리 중 하나는 팔굉일우(八紘一宇)였다. 여덟 방위로 상징되는 전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만든다는 이념이다. 전 세계를 ‘일우’로 만든다는 이 이념 하에서 일본제국주의는 식민지 민중을 강제징용 피해자로 전락시켰다. 그로 인한 ‘가족 같이 일하실 분’들의 희생이 오늘날 일본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의 기초가 돼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경제학자 이시이 간지(石井寛治, 1938년~ )가 1976년과 1990년의 도쿄대학 경제학부 강의노트를 토대로 집필한 책이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망라하는 <일본 경제사>가 그것이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준 학자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다. 책 서문에서 이시이 간지는 “필자의 시야를 넓혀준 것은 운노 후크쥬와 안병직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지시대 한국의 역사조사 참가를 허가받은 일”이라고 말한다. <반일종족주의> 대표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스승이 이시이 간지의 관점 형성에 도움을 줬으므로, <일본 경제사>에 나오는 일본에 관한 불리한 서술이 실제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 제6장에서 이시이 간지는 “군수생산을 크게 담당하면서 급팽창을 이루었던 것은 재벌계 자본이었다”면서 “14개 재벌의 자본집중도(국내)는 1937년 당시 22.6%에서 재벌 해체 지정시에는 42.6%로 급상승”했다고 서술한다. 일본 전체의 기업자본 중에서 14개 재벌의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1937년과 1946년 사이에 그처럼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군수 생산 참여로 인해 재벌들의 자본 집중도가 9년 만에 현저히 높아졌던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 대기업들은 팔굉일우 이념에 힘입어 노동자들을 일우(一宇)처럼 대했다. 공권력의 지원에 힘입어 식민지 한국인들을 임의로 동원하고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물론 장부 상으로는 얼마를 줘야 한다고 돼 있지만, 그런 장부가 실질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같은 착취가 일본 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미쓰비시 그룹도 그에 힘입어 성장했다. 이 기업의 성장에도 ‘일우’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밑바탕이 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쓰비시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다. 나가사키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와 군함도의 하시마 탄광이 속해 있는 다카시마 탄광이 미쓰비시를 발전시킨 핵심적인 시설이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이는 동안, 군함 82척과 어뢰 1만 7000개가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일본의 해상 전투력을 상징하는 전함 무사시(武蔵)을 비롯하여 진주만 기습 공격에 사용된 어뢰가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대법원 강제징용 재판의 피고인인 신일철주금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은 1934년 설립된 일본제철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31년 만주사변 뒤로 일본의 침략 기운이 팽창하던 시기에 세워진 일본제철 역시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크게 성장했다.

2004년에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41권에 실린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 강제연행문제연구분과장의 논문 ‘일제 말기 일본제철에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는 “1945년 8월 해방을 맞을 때까지, 일본제철에는 1만여 명의 조선인이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징용 피해자들을 보수도 제대로 주지 않고 노예처럼 부렸으니, 이 기업의 이윤이 크게 증대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당수의 일본 기업들이 이처럼 식민지에 대한 노동 착취에 힘입어 성장했기 때문에, 그런 전범기업을 계승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범기업들과 제휴한 일본 정부 역시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2019년 7월 이후의 경제보복에 이어 추가적인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으니, 일본이 상식적인 사회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과거부터 책임져야 

▲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지난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1945년 패망 뒤에 일본 재벌들이 맥아더 장군에 의해 해체됐으므로, 재벌급 전범기업들이 강제징용 덕분에 얻은 이익을 근거로 오늘날의 일본 경제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맥아더의 일본 재벌 개혁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재벌에 집중된 경제력을 배제하고 분산시키는 계획은 피상적인 결과를 얻는 데 그쳤다. 위의 <일본 경제사>는 “집중배제 정책이 용두사미로 끝나고 독점금지법의 개정(완화)이 계속 이어진 결과, 구 재벌계 기업이 기업집단으로 재조직되는 것도 자주 지적되는 바이다”라고 말한다.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 교수가 쓴 <현대 일본의 역사> 역시 “재벌 해체 프로그램은 더디게 진행되었다”면서 “미국의 주안점이 (일본) 개혁에서 부흥으로 바뀌었을 때, 재벌에 대한 압력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랬기 때문에 일본의 전범 기업들은 패망 뒤에도 모습을 바꿔 오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일본제철이 패망 뒤 4개 회사로 분열되고 그중 2개가 신일본제철로 합쳐진 뒤 이것이 스미토모금속과 합병해 지금의 신일철주금이 된 데서도 나타나듯이, 전범기업들은 맥아더의 재벌 개혁 이후에도 외형을 바꾼 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했다.

이는 오늘날의 일본 경제가 식민지에 대한 노동력 착취라는 토대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일본이 누리는 경제적 번영의 상당부분이 식민지 주민들의 공짜 노동력 제공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징용 피해자 4인에게 총 4억 원을 주기 싫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팔굉일우 사상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가족처럼 다루며 가혹하게 착취해놓고는 이제 와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지급하면 전 세계 피해자들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나 일본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으므로 일본으로서는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변호해줘서는 안 된다. 설령 일본열도가 기우뚱하는 한이 있더라도, 70여 년 전의 노동 착취와 임금 체불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일본이 세계를 이끄는 지도적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들이 벌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연습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2020-07-2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고작 4억 안 주려고, 또… 일본 부끄럽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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