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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친일파 한명도 못봤다는 조선일보 주필에 연구자들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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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칼럼, 이승만 일본보다 더많이 친일파처벌?
방학진 민문연 실장 “반민특위법 폐지 처벌 무효…조선 동아 존재, 친일청산 못한 증거” 정운현 “역사의 무지”

조선일보 주필이 생전에 친일파를 한 명도 보지 못했으며 이승만 정부가 일본보다 더 친일파를 많이 처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규명해온 이들은 “역사의 무지에서 오는 궤변” “조선일보의 존재가 친일청산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반발했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지난 10일자 ‘양상훈칼럼’ ‘친일파 장사 아직도 재미 좀 보십니까’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며 “일본 정권의 대한(對韓)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친북파·친중파는 심심찮게 보았지만 친일파만은 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침략 전쟁에도 일리가 있다는 아베 같은 사람에게 찬성하는 한국민이 누가 있나”라며 “한국처럼 ‘친일 청산’이 확실하게 이뤄진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썼다.

최근에 독립운동가 후손인 광복회장 등이 제기하고 있는 친일 청산 필요성을 두고 양 주필은 “이들이 지목하는 친일파는 대부분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라며 “송장에게 칼질을 하는 형벌이 있었던 조선 시대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송장과의 싸움이 더 자주 벌어진다”고 조롱했다. 양 주필은 특히 ‘친일파 씨가 마른 나라’에서 친일파 공격을 하니 엉터리 주장에 대부분 거짓이라며 그 사례로 “반일(反日) 세계 챔피언과 같은 이승만을 친일파라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승만 정부가 친일청산법을 제정하고 559명을 체포했으며, 221명을 기소해 38명을 재판으로 처벌했다고 주장했다. 양 주필은 돌연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의 경우와 이승만 정부를 비교했다. 그는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을 죽였는데 그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기소된 사람은 22명이었고, 일본 전범을 처벌한 도쿄 재판에서도 기소된 사람은 25명이라며 이승만 정부 친일 청산의 10분의 1이라고 했다. 이승만 정부의 친일파처벌이 일본보다 많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역사의 왜곡이다. 이승만은 반민특위처벌법 제정을 반대했고, 법 공포후 끊임없이 특위 활동을 방해하고 법을 바꾸려 했다. 국회프락치사건을 만들어 반민특위 위원과 특경을 체포해 와해시키도록 지시한게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정부는 1949년 9월5일 반민특위를 폐지하고 업무를 대검과 대법원으로 이송했다. 그 뿐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1년 2월 법이 완전히 폐지됐다. 폐지법률(176호) 부칙은 “폐지된 법률에 의해 공소 계속중의 사건은 본법 시행일에 공소취소된 것으로 보고, 이 법에 의한 판결은 법 시행일로부터 그 언도(판결)의 효력을 상실한다”고 기록돼 있다. 결국 반민특위처벌법에 의해 처벌된 자는 법적으로 한 명도 없다. 양 주필은 이런 사실을 누락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라-꼴라보레시옹(나치협력자)을 처벌한 규모가 프랑스의 경우 인구 10만명 당 징역형이 94명, 덴마크 374명, 네덜란드 419명, 벨기에 596명, 노르웨이 633명이었다”고 제시했다. 프랑스가 나치협력자를 징역에 처한 건수는 3만9900건, 벨기에 5만5000건, 네덜란드 5만건 이상이었다(조성오, ‘우리역사이야기’ 1993, 돌베개). 방 실장은 “더구나 일본과 독일과 같은 전범국가와 비교한 것은 우리나라 식민지였는데, 유럽의 방대한 독일부역자 처벌 사례를 누락한 채 전범국가의 처벌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비교”라고 반박했다.

▲102살의 애국지사 임우철 광복회 원로회의 의장(왼쪽 네번째), 김원웅 광복회장, 반민특위 유족들이 지난 6월4일 오전 국회에서 친일경찰이 1949년 6월6일 반민특위를 습격했다며 경찰청장의 공개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이 친일파를 본 적이 없다는 양 주필의 주장을 두고 방 실장은 “여야합의로 만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에 따라 위원회가 지정한 국가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가 1006명이며, 양 주필이 봤거나 알만한 생존자는 백선엽(최근 별세) 정도”라며 “우리가 말하는 친일파는 현재 일본과 친한 사람이 아니라 전범국인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자를 말하는 것인데, 본인이 그런 사람을 못봤다고 친일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처럼 친일파청산이 이뤄진 나라가 없다는 양 주필의 주장에 방 실장은 “나치에 협력한 유럽 신문들은 많이 폐간됐다”며 “현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존재 자체가 친일파 청산이 안됐다는 좋은 본보기”라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조선동아일보 100년 부역언론의 민낯이라는 전시회 자료에서 “드골의 프랑스 임시정부가 민족반역자 처벌을 위해 부역자재판소를 설치해 재판에 회부된 538개 언론사 중 115개사가 유죄선고를 받아 폐쇄됐다”며 “그 가운데 64개사는 전 재산을 51개사는 일부 재산을 몰수당했다”고 썼다. 연구소는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친일 원죄에 대한 한마디 반성도 없이 분단과 냉전에 편승해 주류언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지적했다.

정운현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도 20일 미디어오늘과 SNS메신저를 통해 양 주필 칼럼을 두고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궤변”이라며 “‘신판 친일파’의 발호를 지켜보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아직 이에 관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양상훈 주필에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21일 오후 5시 현재까지 연결이 되지 않았고, 문자메시지와 SNS메신저, 이메일을 통해 방학진 실장과 정운현 전 처장의 견해에 관해 질의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에도 질의했으나 아직 답변을 얻지 못했다.

▲ 조선일보 8월20일자 ‘양상훈 칼럼’

조현호 기자 chh@mediatoday.co.kr

<2020-08-21>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친일파 한명도 못봤다는 조선일보 주필에 연구자들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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