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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세상읽기] 레지스탕스를 추모하는 법 / 조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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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ㅣ 사회학자

1941년 10월22일,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루아르아틀랑티크의 샤토브리앙 수용소에서 17세 소년 기 모케가 편지를 쓴다. 처형이 눈앞이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끼는 동생, 사랑하는 아빠, 전 곧 죽어요. … 살고 싶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 죽음이 쓸모가 됐으면 하고 바라요. 17년 반, 제 삶은 너무 짧았네요. … 엄마, 용기를 내서 슬픔을 이겨내겠다고 약속해줘요. …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요. 엄마, 세르주, 아빠, 모두를 떠나요. 제 모든 어린 마음을 담아 키스해요. 용기를 내세요!”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틀 전 낭트에서 독일군 책임자가 암살당했고, 보복으로 레지스탕스 48명이 처형대에 섰다. 파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다 체포된 모케도 포함됐다. 오후 4시에 처형됐다. 편지는 용케 부모의 손에 닿았다. 해방 후 거룩한 영웅이 되었다.

2007년 5월16일, 프랑스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가 모케의 기억을 되살렸다. 취임식 후 35명의 레지스탕스가 처형된 불로뉴 숲을 찾아 모케의 편지를 낭송했다. 조국을 위해 나치에 맞선 모케는 현대 프랑스 청년의 귀감이라며 추모했다. 그의 기일에 고등학교에서 편지를 읽히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가 들끓었다. 애국심으로? 아니, 반발로!

숭고한 목적에 봉사하는 삶이라는 관념이 지금 젊은이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거나, 세속주의 교육은 이런 종류의 가르침을 금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데올로기 왜곡이라는 비판이 가장 뜨거웠다. 모케는 열혈 공산주의자였다. 낭트의 암살자들도, 함께 처형당한 이들도 모두 공산주의자였다. 나치만큼이나 자본주의도 증오했다. 사르코지는 그 맥락을 제거하고, 그저 ‘순수한 애국자’로만 추모했다.

우파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도 애국자라며 기리는 게 왜 문제일까? 좌파 독립운동가 대다수가 서훈조차 받지 못한 한국과는 꽤 다른 역사의 맥락이 있다. 전후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투쟁은 일종의 ‘건국신화’가 됐다. 나치의 ‘괴뢰’ 비시정부에 참여한 극소수를 빼고 절대다수 프랑스인이 이념의 차이를 넘어 레지스탕스와 민주주의를 지지했다는 믿음 말이다. 그들만 빼면 모두 애국자였다! 드골주의 우파가 주도하고 사회당이 협력하여 창출한 신화다.

사실은 달랐다. 비시정부는 폭넓게 지지받았고,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이 관여했다. 자발적으로 유대인을 탄압했고, 대혁명 이래 폐지된 고문을 재개했다. 노조를 금지하고 여성의 지위를 낮췄다. 파시즘 연구자 로버트 팩스턴의 지적처럼 비시는 괴뢰화한 프랑스가 아니라 반동화한 프랑스였다. 우파와 사회당에는 비시에 참여하다가 대세가 기운 뒤 레지스탕스에 줄을 댄 자들이 적잖았다. 신화는 이 치부들을 가리는 데 기여했다. 사르코지는 그것을 반복했을 뿐이다.

2007년 5월29일, 모케의 감옥 동지 마리 라뱅이 <리베라시옹>에 ‘기 모케의 두번째 죽음’이라는 글을 실었다. 편지 낭송 방침을 비판하면서 사르코지에게 물었다. “공화국의 대통령이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모범을 제공하고 싶다면 왜 스스로는 그 가치대로 살지 않는 거요?” 라뱅의 글로 논란은 편이 기울었다. 사치스럽고 부패한 사르코지의 상징 정치는 좌초됐다.

역사와 삶을 연관 짓는 라뱅의 질문이 암시하듯, 프랑스의 과거사 이해는 ‘극소수’ 나치 협력자에 대한 단죄로부터 비시프랑스에 찬동했던 프랑스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 쪽으로 점차 넓어지고 깊어져왔다. 곧잘 칭송하듯 한번의 철저한 숙청으로 과거사 청산이 끝났을 리가 없다. 범죄에 동조하거나 침묵한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끝없이 폭로와 자문이 이어졌다. 과거는 캐지 말자며 우파도 사회당도 끈질기게 방해했다. 상대 진영만 이롭게 한다는 비판도 거셌다. 진영을 넘어선 용기가 진실의 이해를 넓혔다. 단죄만큼이나 자신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한 성찰이 진전됐다. 그래서 프랑스는 조금 더 명예로워졌다. 2009년, 프랑스 정부는 자기 나라의 부끄러운 과거를 밝힌 공로로 미국인 로버트 팩스턴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앎과 삶 사이의 거리는 늘 어려운 질문이다. 역사 공부란 한편 둘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면서, 또 한편 그 거리를 좁히려 애쓰는 위태로운 길 걷기 같다. 이 거리에 태연해질까 가끔씩 아연하다. 친일청산 목소리가 태연하고 의연한 8월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나를 돌아볼 계기로 삼는다.

<2020-08-23> 한겨레

☞기사원문: [세상읽기] 레지스탕스를 추모하는 법 / 조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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