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여전히 찬밥 ②] 친일의 그림자 어른거리는 국군의 날, 이대로 괜찮은가
“국군의 날인 10월 1일은 육군 3사단이 1950년 한국전쟁 중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한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날이 대한민국 국군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광복군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 독립기념관 관장이 11일 서울시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창설80주년 초청강연’ 후 <오마이뉴스>에 한 말이다.
10월 1일이 한국전쟁 중 38선을 돌파한 날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국가기록원은 “1956년 9월 ‘국군의 날에 관한 규정’에 의해 육·해·공군 기념일을 통합하여,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였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날이 국군의 날로 기념되기까지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심지어 친일의 그림자도 스친다.
이승만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기까지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9월 21일 “육해공군 기념일에 관한 건은 폐지한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대통령이 이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육해공군은 각각의 기념일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육군은 1946년 1월 15일 미군정 아래서 남조선국방경비대 1연대가 창설된 날을 기념했고,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조선해안경비대의 근간이 된 해방병단의 창설일을 탄생일로 잡았다. 반면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육군에서 분리된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그런데 육군이 1955년 기존 날짜 1월 15일에서 10월 2일로 육군의 날을 바꿨다. 그 이유가 10월 2일이 유엔군이 ‘작전명령 제2호’로 38선 돌파를 공식 승인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0월 2일 육군의 날은 이듬해 바로 사라진다.
육군 3사단이 38선 위로 진격한 날짜가 10월 1일이라는 게 새롭게 확인되자 이승만 정부는 “국군의 날은 단기 4289년(1956년) 10월 1일부터 시행한다”면서 “(1955년에 제정한) 육해공군 기념일에 관한 건은 폐지한다”라고 밝혔다. 이 때부터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
1950년 10월 당시 38선을 가장 먼저 돌파했다고 알려진 육군 3사단은 2009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된 이종찬이 당시 사단장을 역임한 부대다. 당시 3사단을 이끌고 38선 동부해안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진 1군단 단장은 역시 국가공인 친일파로 지정된 김백일이 맡고 있었다.
분단과 전쟁 상태의 영속화… “정전에서 종전으로 나아가는 국군의 날 필요”
다른 나라들은 어떤 날을 국군의 날로 지정하고 있을까? 미국은 1949년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에게 감사하는 통합된 기념일이 필요하다’라는 취지 아래 5월 셋째 주 토요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1949년 중화인민국화국 건국 후 만들어진 중국인민해방군 창설일인 8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0월 1일 군국의 날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강성현(역사 사회학자)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16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국군의 날을 선정한 것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라면서 “국군의 정통성을 따지기 보다 분단과 전쟁상태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38선을 돌파한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이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새롭게 부각하고, 정전에서 종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는 이 시점에 새로운 국군의 날을 기념일로 고민해 볼 수 있다”면서 “헌법정신에 입각하고 국군 창설의 맥을 따져 광복군 창설일로 국군의 날을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방부는 15일 ‘국군의 날을 변경 논의가 진행 중이냐’라는 <오마이뉴스>의 질문에 “국군의 날을 변경하는 문제는 현역 장병과 예비역, 사회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을 통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2018년 업무보고에 광복군이 기원이라고 명시했지만) 이와 관련 국방부 차원의 진전된 논의는 없다”라고 답했다.
<2020-09-17>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