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938년 2월 10일, 우편·전신·전화 업무를 담당하는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발행한 <조선체신사업연혁사>이다. 1914년에 발간한 <조선통신사업연혁소사(朝鮮通信事業沿革小史)>를 증보, 개정하여 1935년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기념’ 및 ‘조선체신의 날’ 제정 기념사업의 하나로 엮은 책자이다.
<연혁사>는 먼저 체신국장 야마다 츄지(山田忠次)의 머리말과 역대 체신국장, 체신훈(遞信訓), 조선체신가와 조선체신행진곡을 시작으로 본문은 3부로 구분할 수 있다.
1부는 대한제국시대의 우표 5쪽 37매와 기념우편그림엽서 20쪽 65매, 기념특수통신 날짜도장(記念特殊通信日附印) 9쪽 96종, 명소(名所)의 스탬프 12쪽 87종, 체신국 건물 사진을 시작으로 30쪽에 걸친 우편통신관계의 건물·인물·사진 수백 매를 수록하고 있다.
2부는 체신사업의 현황과 연혁을 서술한 부분으로 제1편 사업의 연혁을 시작으로 체신기관, 통신사업 시설, 통신업무 상황, 우편위체(郵便爲替) 저금사업, 조선 간이생명보험사업, 항공사업, 해운사업, 전기사업, 와사사업(瓦斯事業), 체신사업의 선전, 사업의 경리, 토지와 건물 등 472쪽에 걸쳐 조선체신사업연혁사를 정리해 놓았다.
3부는 각종 체신사업의 성과를 22매의 화려한 통계표와 그래프로 보여준다. 19l0년에서 1934년까지의 통신기관 및 체신종업원수, 우편물수, 전보통수, 전화도수 및 가입자 수, 당시 조선의 통 신현황, 라디오 청취자수, 우편위체금액, 우편저금 액수, 우편진체저금 액수, 조선 간이생명보험도별 계약건수 분포도, 전기사업, 전등전력 수요, 항로 표지, 등록 선박 수 등을 수록하고 있다.
<연혁사>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발행한 관제엽서이다. 일본은 메이지시대부터 사진을 이용하여 각종 시각 매체를 통해 통치정책을 홍보하였는데 관제엽서 또한 그중 하나였다. 사진그림엽서가 정보전달 매체의 역할을 넘어 팽창하는 일본제국주의를 선전하기 가장 좋은 매체로서 활용도가 높았다. 이를 통해 일제는 식민지배의 합리화, 조선 근대화의 선전 및 자원 수탈의 정당성을 굳혀나갔다.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가 시작됨을 경축하는 시정(始政) 기념엽서를 발행해 ‘조선병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엽서는 대중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특성상 선전 효과가 크고 ‘엽서’라는 실용적 용도에 힘입어 보다 은밀하게 제국의 정책을 선전할 수 있는 도구였다. 조선총독부 관제엽서의 주요 사진은 식민통치에 의한 근대화를 홍보하거나, 진구황후와 ‘삼한정벌’설과 일선동조론, 내선융화 등 동화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대부분의 관제엽서가 식민통치의 치적을 입증하는 사진을 선별하여 구성했는데, 이는 조선 민중의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거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즉, 일제의 관제엽서는 ‘실용성’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대중들에게 손쉽게 다가갔고, 식민정책 현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을 이용함으로써 그 효과를 증대시켰다.
그러나 ‘근대화’를 표상한 엽서들은 역설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수탈’, ‘강제동원’ 등을 나타내는 기록물이다. ‘시정’을 홍보하기 위한 관제엽서는 식민지 통치 전과 후의 조선을 보여주는데, 정비된 설비 및 공장의 모습, 체계화된 유통 환경의 이미지는 조선총독부의 법령에 따라 시행되었던 조선 개발 사업의 근대화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수탈적 행위를 은폐하고 일제에 의한 조선의 경제성장을 보여줌으로써 식민지배의 합리화를 꾀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또한 1930년대부터 발행된 침략전쟁 관련 관제엽서는 전쟁을 미화하고 조선인에게 ‘황국신민’으로 전쟁에 나서라고 강제하고 있다.
이렇듯 관제엽서 속의 이미지는 대중성을 가진 엽서라는 통신 매체와 결합하여 권력의 의도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재현의 도구이자 선전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 강동민 자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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