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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친일파가 제일 다루기 어려웠다… 이렇게라도 기억하는 게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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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00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다룬 <35년> 완간한 박시백 화백

▲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친일파들의 부역의 역사를 만화로 그린 <35년> 저자 박시백 작가가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 <35년>을 지난 광복절에 완간한 쉰여섯의 화백은 ‘만약 그때로 돌아가면 독립운동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마도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런데 금방 죽었을 것이다. 나는 달리기도 잘 못하고 (독립군처럼) 총 쏘라고 하면 총도 제대로 못 쐈을 거다. 금세 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라고 밝힌 이유에 대해서 만큼은 “살벌했던 전두환 시대에 처음 이 길에 들어섰을 때도 이미 투옥과 고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던 것”이라면서 “늘 광주항쟁에 대해 생각했고, 학살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것을 청년으로서 가만히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 움직이는 이유가 됐다”라고 밝혔다.

1984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대학시절 전두환 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우연적인 일”로 만화를 그리게 됐다. 그것이 지금은 본인의 업이 돼 살고 있다. 박시백 화백의 이야기다.

그는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시사만화를 그리던 한겨레신문을 그만뒀다. “호흡이 긴 걸 하고 싶었다”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회사를 그만둔 그는 실록 국역CD를 구입해 공부했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권 ‘개국’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후로 10년 스무 번째 이야기 ‘망국’이 탄생하기까지 조선왕조에 천착해 살았다. 그사이 그의 책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350만 부라는 실로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자연스레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주목됐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마지막 컷에서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라고 밝힌 대로 단호하게 일제강점기 35년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2018년 1월 <35년>이라 명명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지난 광복절에는 ‘밤이 길더니… 먼동이 튼다’라는 부제로 <35년>의 마지막 편인 7권이 완간됐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8일 <35년> 속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명멸했던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박시백 화백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날은 서대문형무소에서 18살 나이로 사망한 유관순 지사의 순국 100주년이기도 했다.

책 판매가 저조한 이유?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친일파들의 부역의 역사를 만화로 그린 <35년> 저자 박시백 작가. ⓒ 유성호

사실 <35년>은 350만 권 이상 판매량을 보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비하면 다소 뜨뜻미지근한 상태다. 분명 베스트셀러에 위치해 있지만 ‘선풍적인 인기몰이’와는 차이가 난다. 이 부분에 대해 다수의 독자들은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35년>이 어렵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박 화백 스스로도 에필로그에 “너무 많은 사람과 사건, 이야기를 담으려 한 게 아닌가 한다”면서 “그런 만큼 독자들로서는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을 테고 넘기고 나서도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 많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그럴 것이 총 7권 2140쪽에 이르는 이야기 속에 등장인물만 1000여 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반드시 다뤄줘야 하지만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과 사건들이 <35년> 곳곳에 배치됐다.

박 화백은 “사회주의를 다룬다는 것이 대중서로서의 거리감을 만들어 냈지만 결코 무시하고 갈 수 없었다”면서 “사회주의는 당시 상황에서 볼 때 일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자 무기였다. 김규식 선생을 비롯해 임정 주요 인물들도 사회주의에 큰 관심을 가졌다. 무엇보다 당시 현실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니 청년들 사이에 (사회주의 국가) 러시아에 대한 기대도 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책에는 볼셰비키와 화요파, 조선공산당을 비롯해 그 안에서 활약한 김알렉산드라, 이동휘, 박헌영, 김단야 등 우리가 놓쳤던 수많은 사회주의계열 단체와 독립운동가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동북항일연군 김일성도 있다.

박 화백은 “김일성의 독립운동에 대해 가짜설도 있었고 여러 주장이 있다”면서 “하지만 실제 전투참여와 활약상 등을 고려해 다뤘다. 전체 독립운동과 해방 이후 끼친 영향을 고려하면 더 크게 묘사해도 됐지만 백범과 약산에 비해서는 훨씬 적게 표현했다”라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박 화백은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친일인명사전>을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편찬위원회 등의 연구 자료와 100여 권 가량 되는 단행본을 참고해 공부하며 스토리를 짰다.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위키피디아도 꼼꼼히 확인했다. 동시에 9명의 현직 역사 교사가 편집에 참여하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바로잡았다.

▲ 박시백 작가는 “35년의 일제강점기 속에 존재했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더 많이 알게 됐다는 평을 들었으면 좋겠다”면서 “그게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3.1운동 대신 ‘3.1혁명’으로 기록하다

박 화백은 <35년>의 두 번째 이야기를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명명했다. 박 화백이 3.1혁명이라 지칭한 것은 1919년 고종의 장례에 맞춰 3월 1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일컫는다. 우리 정부는 3.1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박 화백은 “3.1운동은 비폭력 만세운동이라고 인식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비폭력부터 폭력까지 그야말로 민족적 에너지가 다양하게 방출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면서 “내용적인 측면만 따져도 혁명이라 충분히 불릴만하지만 민중들이 근대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이후 왕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다”라고 평가했다.

박 화백의 말대로 1919년 3.1혁명의 흐름이 이어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뀐 것이데, 같은 날 공포된 임시정부의 헌장에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라는 내용과 함께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한편 <35년>을 이어가며 박 화백을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부분은 친일파에 대한 서술이다.

박 화백은 “친일파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전하고자 했다”면서 “하지만 친일파들은 비슷한 조직에서 비슷하게 행동하고 비슷한 연설을 했다. 독자들 입장에서 그 차이를 느껴야 책을 넘길 때 힘이 나는데 이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박 화백은 일제 만주군 출신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대한민국 5대, 6대, 7대, 8대, 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에 대해서는 “책에서 좀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면서 “일제강점기를 비롯해 이후 시대에 박 대통령이 끼친 족적이 워낙 크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7권 말미에는 만주군 중위였던 박 대통령이 일제가 망한 뒤 광복군 3지대를 거쳐 이듬해 5월 군복을 염색해 부산항에 도착했다고 그려졌다.

또 박 화백은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작태에 대해서도 “이승만 정권 당시 반민특위가 무너지면서 그때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겠냐”면서 “내가 만화를 그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미 땅 팔아서 건물 올리고, 회사 일으킨 후손들에게 어떻게 재산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친일청산은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친일파를, 이들이 민족반역자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후손들에게도 계속 알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친일파 후손들이 자기 조상을 대놓고 자랑하는 일은 없지 않겠나.”

박 화백은 이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35년의 일제강점기 속에 존재했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더 많이 알게 됐다는 평을 들었으면 좋겠다”면서 “그게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다음 작품에 대해서 만큼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고려사와 현대사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만 언급했다. 돌아보면 <35년>의 마지막 컷에는 해방 후 혼란을 겪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담겼다. 그 안에는 1946년 신탁통치 절대반대, 백범의 죽음, 제주4.3과 여순항쟁, 그리고 한국전쟁이 그려졌다. 박 화백의 작품이 언젠가는 이를 그려낼 것이라고 예측되는 부분이다.

<2020-10-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파가 제일 다루기 어려웠다… 이렇게라도 기억하는 게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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