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소송투쟁을 제기할 때까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일본의 법정에서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비록 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과 피해사실을 일본 사법부가 인정하게 했고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내린 날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년 전 오늘을 떠올려봅니다.
법정에서 선고를 직접 지켜본 94세의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는 함께 소송의 원고로 싸웠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세 명의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회한의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3년 1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했고, 1945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일본제철 오사카공장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가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97년 12월. 이들은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한 뒤, 이춘식, 김규수 할아버지와 함께 2005년 2월 한국 법정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21년, 한국에서의 소송만으로도 13년의 세월이 지나 이들 피해자들은 마침내 승소판결을 받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20여 년의 소송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기쁨을 누려야 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죠. 그해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 양승태의 사법부, 피고대리인 김앤장의 변호사들이 짬짜미로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사법 농단’ 문건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저들의 ‘재판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안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2년 동안 일본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한마디만을 되풀이하며 배상판결에 따른 현금화가 실현되면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또한 판결을 빌미로 ‘혐한의 광풍’을 선동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국 때리기’를 국내 정치에 철저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정부는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2018년 11월 30일 대법원 판결 확정) 등 가해기업에게 배상하지 말도록 공공연하게 압력을 가해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불법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은 가해기업들은 일본정부 뒤에 숨어 사죄와 배상은커녕 피해자와의 그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2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애초에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것은 한국의 법원과 한국정부다. 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반하는 형태로, 일본의 개인청구권을 인정, 일본으로부터 격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위 글은 일본 보수언론의 기사가 아닙니다. 스스로는 ‘민족정론지’를 자처해 왔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한 <조선일보>(일본어판, 2019.7.11.)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보다 일본 가해기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따른 아베정부의 역사인식을 최소책임으로의 퇴행으로 간주한 한국의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는 ‘극단적인’ 최대책임을 주장했다. (중략) 이 발안은 기존의 책임론적 화해의 틀(‘가해자의 사죄->피해자의 용서->화해의 성립’)을 넘어서, 새로운 화해의 틀에 기반한 창의적인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98년 공동선언에 담겨진 사죄 이외에 또 다른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지 않고, 피해자의 선제적이며 주도적인 재단 설립을 통해 양국 간의 화해에 이르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가해자의 입장을 피해자가 포용하는 화해이다.” – 박홍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레시안> “한일관계 3.0시대,’포용론적 화해’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파탄’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이른바 일본전문가는 아베의 역사인식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아베는 퇴임 후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신사 야스쿠니를 매달 참배하고, 강제노동 피해를 왜곡한 전시로 비판을 받고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찾아 “이유 없는 중상을 꼭 물리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결론적으로는 ‘진정한’ 사죄는 필요 없으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포용하고 화해하는 것이 ‘창의적인 해법’이라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극단적인’ 주장을 했다고 말하는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은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20년이 넘게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싸워왔습니다. 비로소 공식적인 역사로 기록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리를, 그리고 그들과 기꺼이 손잡고 역사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워 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일궈낸 시민연대의 승리를 함부로 폄훼하지 말라!고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는 지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거래에 가담한 판사, 외교부, 김앤장의 변호사, 그 누구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감옥으로 가는 이명박을 보며 역사정의의 실현에는 시효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마음에 다져봅니다.
* 이 글은 식민지역사박물관 뉴스레터 6호(2020.10.30)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대외협력실장입니다.
<2020-11-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리를 폄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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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자막뉴스] 강제징용 배상 판결 2년…”우리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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