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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익태 후손이 광복회장 고소?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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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212]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아이들, 이렇게 길러진다

▲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 wiki commons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요? 이득은커녕 손해 볼 게 뻔한 일을 누가 하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참 영악하다. 워낙 이재에 밝아 본능적으로 이해관계를 따진다.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서면 앞장서 달려들지만, 손해 볼 일은 애초 거들떠보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요즘 아이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교과 수업에서든, 비교과 활동에서든,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주판부터 튕기는 그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그들이 가장 어처구니 없어 하는 사자성어가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수업 시간 모둠 활동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모둠을 편성할 때면 다른 친구들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자신이 남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몇몇 아이들은 대놓고 모둠 활동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봉사 활동도, 동아리 활동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활동 특성상 자발성이 핵심인데, 오히려 교육과정에 연간 이수 시간을 지정해 강제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취지와는 달리 학교마다 대부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은 십수 년째 ‘이(利)’와 ‘의(義)’가 충돌할 때 ‘이(利)’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은연중에 깨달아왔다. 혹 시험에 출제되었을 때야 당연히 ‘의(義)’를 고를 테지만, 일상 속에서는 조금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의(義)’를 좇으면 득 될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의보다 이를 따르는 아이들

국가의 교육 목표와 학교의 존재 이유는 수만 가지일 테지만, 교사인 내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정의로운 인간의 육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회화도 좋고 지식의 전달과 전통문화의 계승도 좋지만, 모든 영역에서 발군일지언정 정의롭지 않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여기서 ‘정의’란 인식이 아닌 행동의 영역이다. 적어도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의 옳고 그름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옳다는 걸 알지만 실천하지 않고, 잘못된 짓임을 빤히 알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도덕 교과 시험 성적만 놓고 보면 아이들 대부분은 성인군자다. 성취 기준과 성취 수준으로 해석하면,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올곧은 시민임이 분명하다. 교과의 학습 목표를 넘어 학교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 셈이다. 다른 교과라고 다를까.

그런데도 학교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절도나 폭력 사건이 숱하게 벌어지며, 교권 침해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 교사 앞에서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지만, SNS에다가는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낸다. 그들끼리 센 척하며 서열 짓는 건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를 바도 없다.

지금껏 우리 교육은 겉과 속이 다른 아이들을 양산해왔는지도 모른다. 핑곗거리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한계다. 아이들에게 교과서 속 내용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교사의 훈화는 부모의 잔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교육이 정의로운 인간을 육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온존한 학벌 구조와 입시 제도 탓이 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엘리트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그것이 제도의 문제라면,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의 심성을 검게 물들이는 관행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제도는 토론을 거쳐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오랜 관행은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난감하다. 관행은 왜곡된 역사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은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

“승자는 진실을 추궁당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다. 극악한 나치의 만행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경구인데도, 아이들은 단지 괴벨스가 문제일 뿐, 그의 말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의 나치 버전일 뿐이라는 거다.

그것이 역사 해석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정의를 조롱하는 망언이라는 진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수업 때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재차 강조하지만, 이를 가슴에 새기는 아이는 거의 없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기에는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 너무 강퍅하다.

누군가 우리 현대사를 두고 역사가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고 파란만장했다는 뜻이다. 솔직해지자면,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뒤틀린 역사라는 의미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한마디로 ‘악’이 ‘선’을 이긴 역사라는 거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까. 잘못된 과거사를 거울삼아 ‘선’이 ‘악’을 몰아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건, 교과서 학습 목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사필귀정’은 ‘견리사의’만큼이나 황당해하는 사자성어일 뿐이다.

요즘 아이들을 단군 이래 가장 학력이 높은 세대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감수성은 아마도 가장 낮은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절대시하는 공정이란, 특권 의식에 반대하고 기회의 평등만을 의미할 뿐, 타인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정의감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물론 영악한 아이들만 탓할 순 없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며, 나아가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를 닮는 법이다.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공통된 정서와 우리 사회에 온존한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일말의 서운함을 토로하다 여기까지 왔다.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내용에 따르면 안익태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축전곡을 의뢰받아 완성했다. ⓒ 김종훈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이번 주 내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삶’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의 이름과 희생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저 수험용 지식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눈치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다시 아이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여러 전태일 열사 관련 자료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어이없는 뉴스를 보게 됐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후손이, 지난 8.15 기념식 행사 도중 그를 민족반역자라고 칭한 김원웅 광복회장을 검찰에 고소했다는 기사다.

지난 8일, 안익태의 친조카인 미국 국적의 데이비드 안씨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안익태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자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나아가 광복회의 공식 입장인 만큼 광복회에 대해서도 거액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안익태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맞다. 1940년대 초 나치 독일에서 <일본 축전곡>을 연주했고,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만주 환상곡>과 <만주 축전곡> 을 작곡하는 등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음악 활동에 두루 참여했다.

그는 나치가 패망하자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이다.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려 했으나 나치에 적극 협력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제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 이쯤 되면 억울할 것 하나 없는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맞다. 대체 무엇이 허위사실 유포고, 사자 명예 훼손일까.

김원웅 광복회장이 언급한 내용은 모두 이미 드러난 역사적 사실이거나 정황상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백 보 양보해서 일부 쟁점이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제국주의에 협력하고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이마저 인정할 수 없다면, 광복회장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옳다.

▲ 안익태 ⓒ 오마이뉴스

우리의 고민은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역사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표절 시비를 떠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작곡한 곡이 해방된 조국의 애국가로 채택된 참담한 역사에 대해 성찰 중이다. 광복회장의 말마따나,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음악 교과서에 안익태는 물론 현제명, 홍난파 등 익숙한 이름들이 모두 지워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이유에서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희망의 나라로>나 <봉선화>는 음악 시험의 단골 메뉴였다. 나이 30대 중반 정도만 돼도 공감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러잖아도 영악한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욕보이는 현실은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는커녕 우리 역사에 대한 환멸을 부르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광복회장이 기소된다면 우리 역사의 더없는 치욕이 될 것이다.

역사 교사로서 아이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지리멸렬함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난맥상에 더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필이면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 즈음이라 더더욱 얄궂다.

<2020-15-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안익태 후손이 광복회장 고소?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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