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시민역사관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올려놓은 비행기의 정체

2019

[소장자료 톺아보기•21 ]

조선일보사 옥상 위에 올려놓은 비행기의 정체

방응모 사장을 비롯하여 조선일보사 사원들이 단체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뒤쪽에 경성소방서의 망루 일부가 드러나 있는 걸로 보아 이곳이 조선일보사 옥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경성부민관 옆쪽에서 태평통(太平通, 지금의 태평로) 일대의 거리풍경을 담아낸 사진엽서이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조선일보사 사옥(1935년 6월 준공)이고, 길 건너편에 경성소방서(1937년 11월 준공)의 모습이 함께 포착되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자료)
<조선일보> 1935년 3월 15일자에 수록된 조선일보 ‘통신용’ 비행기의 ‘항공기 등록증명서’ 관련 사고(社告) 내용이다.
<조선일보> 1939년 8월 18일자에 소개된 김포청년단원 참관기념사진이다. 여기에도 조선일보사 옥상 비행기의 모습이 드러나 있으며, 이시기의 조선일보 지면에는 이것과 동일한 앵글의 참관기념사진이 곧잘 수록되기도 했다.

<조선·동아 100년 기획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이 진행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의 쇼케이스에는 한 장의 빛바랜 옛 사진이 진열되어 있다. 비행기 한 대를 배경으로 삼고 3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체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이들 가운데 두루마기 차림의 방응모(方應謨, 1884~?) 조선일보 사장이 앞줄에 자리한 것이 무엇보다도 퍼뜩 눈에 띈다. 

그 주변에는 이훈구(李勳求) 부사장 겸 조광 주필을 비롯하여 함상훈(咸尙勳) 편집국장, 이상호(李相昊) 편집국차장, 송병휘(宋秉暉) 광고부장, 홍종인(洪鍾仁) 사회부장, 이석훈(李石薰) 조광 기자, 이갑섭(李甲燮) 정치부장, 함대훈(咸大勳) 조광 편집주임, 김기림(金起林) 학예부장 등의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로써 조선일보 사원들의 기념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함흥방송국에서 근무하던 이석훈이 조선일보사 발행 잡지인 <조광>으로 자리를 옮겨 일한 것이 1939년 5월에서 1940년 4월까지의 시기였으므로 이를 단서로 사진촬영시기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이 사진을 살펴보노라면 여기에 보이는 비행기가 자리한 곳이 도대체 어딘지가 자꾸 궁금해진다. 흔히 비행기가 등장하는 사진이라면 무슨 비행장 활주로나 격납고 앞일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대단히 의외의 공간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진촬영장소를 확인하는 첫 번째 단서는 비행기 뒤쪽에 솟아있는 건물이다.

<조선일보> 1939년 11월 1일자에 소개된 경성외국어학원생도 일행의 참관기념사진이다. 이 사진에도 조선일보사 옥상 비행기와 더불어 경성소방서 망루의 모습이 또렷이 포착되어 있다.

일장기가 펄럭이고 싸이렌에다 송신탑 꼭대기가 보이는 곳은 1937년 11월 16일에 신축 이전된 경성소방서(京城消防署, 태평통 1정목 1번지)의 8층 높이에 달하는 망루 부분이다. 이곳의 길 건너편에 1935년 6월에 준공한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 태평통 1정목 61번지)의 신축사옥이 자리하고 있었고, 망루의 꼭대기 부분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조선일보사 옥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난데없이 웬 옥상 위의 비행기란 말인가? 알고 보니 이 비행기의 정체는 1935년에 구입한 조선일보 전용 비행기였다. 이에 관해서는 우선 <조선일보> 1935년 1월 1일자에 여의도 조선비행학교 신용욱(愼鏞頊) 비행사의 감독 아래 기체(機體)의 조성(造成)이 완료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비행기의 사진이 수록된 바 있다. 여기에는 230마력 복엽비행기(複葉飛行機) 2인승인 이 비행기가 “신문 및 원고의 수송, 사진촬영, 통신원의 출동” 등 통신용으로 구입된 사실도 함께 서술되어 있다.

다시 <조선일보>1935년 3월 15일자에는 총독부 체신국에 ‘항공기 등록’ 완료 기사와 함께 등록증명서(登錄證明書) 자체를 사진으로 소개한 것이 눈에 띈다. 이 내용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일본 나고야공창 아츠타병기제조소(名古屋工廠 熱田兵器製造所)에서 제작되었으며, 등록번호 제27호(등록일 1935년 3월 8일, 소유자 조선일보 방응모)에 형식(型式)은 ‘살무손(Salmuson)식 2A2형(型)’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항공기 등록에 관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조선총독부관보> 1938년 4월 14일자에 “등록번호 제27호, 말소등록일 1938년 3월 31일, 말소사유는 1938년 3월 3일 해철(解撤), 소유자씨명 방응모”라고 적은 ‘항공기 말소등록’ 관련 항목이 수록된 사실이 발견된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일보사의 통신용 비행기는 불과 3년 만에 본연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조선일보 60년사>(1980)에 수록된 1940년 8월 조선일보 공무국 직원 일동의 폐간기념사진이다. (ⓒ조선일보사)

그렇다면 이 비행기가 조선일보사의 옥상에 올라와 별스러운 풍경을 연출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에 관한 흔적을 찾기 위해 조선일보 지면에 남아있는 보도사진을 죽 훑어본 결과, 조선총독부 경찰관강습소의 강습생 22명이 조선일보사를 견학(見學)한 기념사진이 <조선일보> 1939년 3월 8일자에 수록되어 있고 바로 여기에 옥상 비행기의 모습이 처음 보인다. 그리고 그 이후 시기에도 20여 차례 남짓 옥상비행기를 배경으로 찍은 이러한 종류의 사진이 줄을 이어 등장한 것이 확인된다.

<조선일보> 1940년 8월 11일자(폐간호)에 수록된 조선일보 사원 일동의 폐간기념사진이다. 여기에도 옥상 일대의 전경과 비행기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 있다.

 

또한 <조선일보> 1940년 8월 11일자(폐간호)에도 인근빌딩 옥상에서 담아낸 ‘조선일보 사원 폐간기념촬영’이라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옥상 일대의 전경과 비행기의 모습이 또렷이 드러나 있다. 이를 테면, 이곳은 조선일보사를 견학 내지 참관(參觀)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조선일보에 소속된 구성원들에게도 일종의 ‘포토존(photozone)’으로 즐겨 사용된 공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비행기의 최후가 어떠했던 것인지는 미처 확인되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에 ‘제24군단 극장(XXIV Corps Theatre)’으로 사용되던 옛 경성부민관 일대를 담은 전경사진엽서에 바로 옆 건물인 조선일보사 옥상에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는 걸로 보아 그 이전 시기에 이미 비행기가 처리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될 따름이다.

더구나 일제패망기로 접어들면서 이른바 ‘금속물회수(金屬物回收)’라는 혹독한 전쟁물자 동원시기가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필시 이 시기에 비행기의 잔해물이 그네들의 손에 넘어갔을것 같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입증자료가 확인되지 못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결론은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한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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