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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식민학문 깨뜨린 학자이자 약자 향한 애정 담아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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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10주기: 다시 돌아보는 삶과 정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인터뷰

“간결하고 정곡 찌르는 냉철한 글
지금의 언론인·학자들에 필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문학평론가 임헌영(79)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리영희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저작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대화 상대자로 나왔다. 1960년대 말부터 리영희 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40여년 동안 가족 말고는 가장 가까이서, 가장 자주 지켜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임 소장은 리영희 선생을 “우리 사회과학을 ‘식민학문’에서 주체적인 학문으로 바꾸어낸 학자”로 기억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진행했다.

– 가까이서 지켜본 리영희 선생은 어떤 분이었나?

“대단히 냉철한 지식인인데, 냉철한 가운데 인간미가 있는 분이었다. 휴머니즘을 마음 바탕에 깔고 있었고, 사람에 대한 정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줄 아는 분이었다.”

– 어떤 계기로 리영희 선생과 가까워졌나?

“1960년대 말에 내가 잠깐 <주간경향> 기자를 했는데, 그때 <조선일보>에 계시던 리영희 선생을 찾아가서 만났다. 그분이 쓴 글이 존경스러워서 직접 뵙고 싶었다. 1970년 월간 <다리>가 창간되자 거기서 일하면서 리 선생을 자주 뵀다. 그러다 리 선생이 필화사건으로 1977년 감옥에 가고, 나도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간 통에 1983년에 출소한 뒤에야 다시 선생을 만났다. 1980년대 후반에 한길사에서 <사회와 사상>이라는 월간지를 냈는데, 리영희·강만길·박현채·김진균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사람이 편집위원을 맡았다. 잡지를 내야 하니까 수시로 만났고, 좌담회도 자주 열었다. 이 월간지에 리 선생이 ‘남북한 전쟁 능력 비교연구’를 비롯해 당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한반도 관련 글을 발표했다.”

– 리 선생은 언론인이고 학자였는데, 학자로서 리 선생을 어떻게 보는가?

“나는 함석헌과 리영희를 분단시대의 두 지성으로 꼽는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함석헌, 70년대와 80년대는 리영희가 우리 지성사를 주도했다. 특히 리 선생은 사회과학 영역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리영희야말로 국제정치학을 주체적 학문으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베트남 전쟁과 현대 중국 연구도 우리 현실을 비판하고 타개하려는 궁극적 목적 아래서 한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정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전혀 주체적이지 못했다.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고 미국을 비롯한 외세가 좌우하고 있는데, 미국 유학을 다녀온 국내 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리 선생은 ‘한국 교수들 대다수가 미국 유학을 통해 거의 자기를 상실할 정도로 미국 숭배자가 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식민지 시대의 학문 태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인데, 이것을 깨뜨리고 우리의 관점에서 사회과학을 다시 세운 분이 리 선생이다.”

– 문학평론가로서 ‘리영희 글쓰기’를 어떻게 보는가?

“리 선생은 9매짜리 신문 칼럼을 쓰기 위해 그 열 배에 이르는 자료를 메모해 줄여나가는 식으로 철저하고 꼼꼼하게 작업했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들은 이해하기 쉽고 명쾌했다. 특히 리 선생이 모범으로 삼은 사람이 중국 작가 루쉰이었다. 루쉰의 모든 작품을 깊이 읽었고,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글을 쓸 것인가’ 하는 글쓰기의 자세와 방법을 루쉰에게서 배웠다. 억압하는 강자들에게서 억압받는 약자를 해방하려는 루쉰의 태도와 정신에 늘 감명을 받았다. 간결하고 정곡을 찌르면서도 은유·풍자·유머·기지가 있는 문체가 거기서 나왔다. 사회과학적 글쓰기에서는 보기 드문 문체다.”

– 리영희의 삶에서 후배들이 배울 점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리 선생은 올바른 역사관과 세계관을 세워 지켜 가려고 분투했다. 그런 자세를 지금 언론인들이나 학자들이 배워야 한다. 리영희의 기자정신이 지금 젊은 기자들에게 절박하게 필요하다. 리 선생이 기자 시절 수많은 특종을 했지만 누군가에게 얻어듣고 쓴 것은 거의 없고, 스스로 해당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완전히 파악한 뒤 취재를 통해 확인하는 방식으로 쓴 것들이었다. 그런 정신에서 나온 것이 리 선생의 책들이다. 리영희의 책들은 지금도 한반도 상황이나 미국의 본질을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글 고명섭 선임기자, 사진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0-12-03> 한겨레

☞기사원문: “식민학문 깨뜨린 학자이자 약자 향한 애정 담아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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