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옆 안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자신이 직접 지은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처럼 떠났다. 그러나 ‘불쌈꾼(혁명가)’ 백기완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그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보내지 못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백 소장의 영결식에는 1천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슴 한편에 ‘남김없이’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걸고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여섯 글자가 새겨진 흰색 마스크를 쓴 채 함께했다.
그를 따르는 산자들
앞서 이날 오전 8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이하 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는 백 소장 발인식이 엄수됐다. 위원회는 이어 유족과 함께 백 소장이 생전에 매일 찾아 커피를 마셨던 서울 종로구 ‘학림다방’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충렬 학림다방 대표는 고인의 넋을 기리며 직접 내린 커피를 백 소장 영정 앞에 마지막으로 올렸다.
학림다방을 나온 위원회와 유족들은 백 소장의 통일문제연구소를 거쳐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노제를 진행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4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노제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특히 많이 참석했다. 비정규직을 대표해 조사를 맡은 김수억 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2013년 사망한 기아차 윤주형 해고노동자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백 소장과의 일화를 전했다.
“(2013년) 윤주형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진 어깨로 영장 앞에 앉아 있던 날, 백발의 선생님이 빈소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수억아, 어깨를 펴! 고개 들어!’ 선생님은 말 그대로 ‘빛’이 돼 주셨다. 선생님이 오신 날 동지들이 다시 달려왔다. 이로 인해 윤주형은 해고자가 아닌 노동자로 저세상에 갈 수 있게 됐다.”
김 전 지회장은 “선생님이 마지막 일주일 온힘을 짜내서 쓴 ‘노동해방’, 오늘 이 자리에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길을 따르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사 말미 김 전 지회장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고 외치자 수백 시민들도 “산자여 따르라”라고 따라 외쳤다.
김 전 지회장이 언급한 고 윤주형씨는 2007년 기아차 화성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하다 2010년 해고된 노동자다. 2012년 임단협 투쟁을 거쳤지만 복직되지 못했다. 2013년 1월 부당한 해고로 인한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쌈꾼’ 백기완 마지막 길, 1천여 명 시민 동참
이날 오전 9시 45분께 노제를 끝낸 위원회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영결식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이화사거리와 종로, 세종로를 거쳐 서울시청까지 이어진 추모행진은 백 소장의 뜻을 기려 전통 장례 형태로 재현됐다.
운구 행렬에는 백 소장의 위패와 영정, 운구차,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백 소장을 형상화한 대형 한지 인형이 섰다. 그 뒤를 수십 개 만장과 꽃상여, 풍물패가 함께했다. 행진에는 6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오전 11시 30분께 서울광장에서 시작된 백기완 소장의 영결식은 눈물 바다였다. 가장 먼저 조사를 읽은 노구의 문정현 신부는 눈물을 훔치며 “백기완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가 백기완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백기완 선생님은 제게 ‘신부님, 우리말 고맙습니다 하시지요’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문 신부는 “이제 뜨거운 가슴에서 터지는 불호령을 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면서 “앞서서 나아가셨으니 산 저희들이 따르겠다. 안녕히 가시라. 뒤따라가 곧 만나 뵙겠다. 백 선생님 계시던 바로 그 자리에 가서 앉겠다”라고 목놓아 외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노나메기’ 세상을 꿈꾼 백기완의 뜻을 이어 받아 말을 보탰다. 그중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있었다.
김씨는 “아들 용균이 장례식장에서 백기완 선생이 손자뻘 되는 용균이에게 큰절로 두 번 절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정은 원통함과 복받치는 설움뿐이었다”면서 “장례식장에서 열린 원로기자회견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셨던 백 선생님은 저에게 천군만마였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라고 말했다.
“‘김진숙 김미숙 힘내라’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다 들었다. 저도 힘내서 선생님께서 평생 낮은 곳을 향해 힘을 주셨던 것처럼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발맞추며 따르겠다.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다. 저세상에서 용균이 만나면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꼭 한 번 안아주셨으면 좋겠다.”
“노동해방 쟁취 위해 싸워라”
이날 서울광장에서 영결식 현장도 대학로에서 열린 노제와 마찬가지로 수백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백기완 소장은 생전에 “말을 하고 구호를 외칠 때가 아니다.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고 올바르게 대책을 세워서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을 할 때”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조사를 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백 소장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이었다”면서 “간절함을 실행에 옮기겠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동자 민중의 삶을 걱정해주신 선생님의 격려에 부끄럽지 않은 민주노총이 되겠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영결식 현장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도 함께 했다. 단원고 희생학생 이창현군의 어머니 최순화씨는 “백기완 선생님은 세월호 유족에게 버팀목이었다”면서 “집회 때마다 맨 앞에 자리하고 계셨다.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외치고 또 외치고 또 외쳤던 선생님의 외침은 우리 귓전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라고 백 소장을 추억했다.
실제로 백기완 소장은 생전에 세월호 참사 후 진상규명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2017년에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며 추모 연작시 ‘쫓빛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백 소장의 빈소를 찾았을 때 백 소장 유족은 “아버님이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해경 지도부의 책임이 없다며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 많이 안타까워하셨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백기완 소장의 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영결식 말미에 진행된 유족 인사에서 “어머니(김정숙씨)가 오셨어야 했는데 오지 못하셨다”면서 어머니 김정숙씨가 아버지 백기완 소장을 향해 18일 저녁에 쓴 마지막 편지를 대독했다.
“백기완 선생님, 봄이 지나가기 전 ‘불러보세, 우리의 봄노래’ 하는 노래 가사를 함께 부르려 했는데 이제는 부를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만나면 꼭 같이 불러요. 언제나 기억할 거 같은 우리 남편 만나 나는 행복했어요. 멋진 목도리 휘날리며 바위고개 그 언덕에서 기다리세요. 잘잘(백기완 선생이 생전에 만든 말, 잘있어요 잘가요 줄임말), 우리 신랑 백기완씨. 아내 김정숙”
이날 영결식에서 가수 정태춘씨가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는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다. 영결식에 함께한 시민들은 백기완 소장이 생전에 좋아했던 ‘민중의 노래’를 함께 합창했다. 지난 15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한 백기완 소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석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무덤 옆에 안장됐다.
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67년에 고 장준하 선생과 함께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 설립을 시도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뒤 구속됐다. 이후 1986년에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다시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문제와 통일문제 등에 힘써오며 언제나 투쟁 현장의 최전선에서 ‘불쌈꾼’으로 살다 갔다.
<2021-02-1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불쌈꾼’ 백기완 마지막 길… 1천여 명 시민들, 눈물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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