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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파고(波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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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마당]

개혁은 파고(波高)가 높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

아버지는 어부였다. 소년시절부터 중선中船을 타고 먼 바다를 항해했다. 과거 어업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일기예보가 정확하지 않고 통신시설이 미비했던 시절 자칫 폭풍우라도 만나면 난파당하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소형어선을 구입해 선주가 된 뒤로는 나도 가끔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1톤 미만의 소형어선은 3~4m의 파고 앞에선 강물 위에 뜬 가랑잎과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천당과 지
옥을 오갔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배를 운전했다. 큰 파고를 넘는 것은 정면승부로는 안 된다. 옆으로 항해하면 뒤집힌다. 정면과 옆면 사이의 빈틈을 정교하게 가로지를 줄 알아야 무사히 항구에 당도할 수 있다.
‘역사는 피를 먹고 진보한다’고 말한다. 개혁의 피, 혁명의 피가 역사를 진보시킨다는 말이다. 혁명은 한 번 성공했다 할지라도 곧 반혁명의 파고가 덮치며 위기를 맞곤 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앙시앵레짐 다시 말해서 구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 발달로 상공시민계급인 ‘부르주아지’가 성장해서 나라의 중추를 이뤘지만, 권력과 특권은 여전히 구체제의 특권층인 귀족과 성직자가 갖고 있었다. 부의
편중도 극심했으며 민중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 민중들은 불만이 컸지만, 혁명의 주체가 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은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부르주아지가 시 작했다. 하지만 부르주아지들은 자신들의 불만해소, 다시 말해서 귀족과 성직자가 독점한 권력과 특권을 나눠 갖고 신분제 타파와 입헌군주정을 수립하는 수준에서 혁명을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혁명을 전개하면서 각성한 민중과 급진파의 생각은 달랐다. 무엇이 진실이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깨닫기 시작한 민중들은 부르주아지의 목적과 한계도 파악했다. 프랑스혁명의 유럽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침략한 대프랑스동맹연합군을 저지했던 민중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과거 진보주의자였던 부르주아지들은 보수파로 규정되었고 부르주아지 정권의 급진파 자코뱅당이 정권을 잡았다. 자코뱅당의 과감한 정책은 일시적으로 민중들을 환호하게 했지만 몇 년간 계속된 대립과 혼란은 피로감을 주었다. 더욱 선명한 의식과 행동이 요구되면서 혁명세력도 분열됐다. 권력은 잃었지만,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에서 앞선 부르주아지들의 획책도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 뒤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안다.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고 급진파가 몰락한 상태에서 정권을 잡은 부르주아
지들은 갈피를 못 잡았고 대프랑스동맹군을 격파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한 나폴레옹이정권을 잡았다. 나폴레옹 몰락 뒤에는 절대왕정이 부활했다. 혁명과 반혁명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역사는 진보했고 정의는 승리했다는 것을.
촛불혁명은 문재인 정권을 낳았다. 우리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이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해 평화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민주당에 몰표를 주면서까지 염원을 표현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우리는 정말 다사다난을 경험했다. 역사적 과제에 집중하기에는 코로나19가 너무 강했고 정치·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웠다.
오랫동안 국민의 염원이었던 검찰개혁은 좌초된 듯 보이며 언론개혁은 칼집에서 칼을 빼내지도 못했다. 검찰과 언론, 보수정치권이 일치단결해 구체제의 특권을 지켜내려는 분투도 지켜봤다. 개혁 뒤의 반개혁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우리에게는 촛불혁명을 달성했던 강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좀 더 정의롭고 평등하며 살맛나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해 소처럼 느리더라도 꾸준히, 반개혁의 파고 사이로 정교하게 개혁이 추진되기를 소망한다. 개혁은 파고가 높다. <평택시사신문> 2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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