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다 보면, ‘신흥무관학교’가 자주 등장합니다. 독립군을 양성했던 곳으로 실제로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광복군의 주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던 광복군 가운데는 지금 국내에만 일곱 분이 계신데, 임상범 기자가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자>
[영화 ‘암살’ 중 : 신흥무관학교 나오셨죠? (네) 졸업할 때 혈서도 남기셨던데‥ (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신흥무관학교는 110년 전 만주 서간도에 문을 열었습니다.
독립군 양성의 요람답게, 신흥무관학교 소식은 독립신문의 인기 있는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1940년, 광복군이 창설됐고,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을 비롯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역사책에 나오고, 영화로 만들어진 많은 승리들이 이때 이뤄졌습니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독립 유공자들이 모여 사는 임대아파트입니다.
이곳에 광복군 출신 이영수 지사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이 지사는 20살 때 광복군에 자원입대했고 군자금 전달과 유격전을 담당했습니다.
[이영수/애국지사(광복군 3지대 활동) : 왜놈들이 잡으러 온다고 하면 미리 지하에 지뢰를 파묻는다든지. 오는 길목에서 왜놈들하고 전투를 많이 했고 그랬어요.]
부인 홍봉옥 여사에게는 신혼생활이 곧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홍봉옥 여사 : 환자가 급하니까 나보고 가서 그 환자를 보래요. 모르는 사람이지만 독립군이거든요.]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씨.
광복군의 후손임을 평생 영예로 여겨왔건만 이번 3·1절에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항일무장단체를 테러리스트 취급하거나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비하하는 망언들이 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준식/전 독립기념관장(지청천 장군 외손자) :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일각에서 거기에 동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100세가 넘은 임우철 지사는 친일 청산 실패를 아쉬워합니다.
[임우철/애국지사 (102세) :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거다. 왜냐하면 친일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독립유공자 가족들은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 중인 독립유공자 3대까지 후손이 1만 7천 명인데, 이들 중 74.2%는 월 소득 200만 원에 못 미치는 극빈층이나 차상위 계층이었습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부터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보훈 정책이 집중되지 못한 ‘원죄’ 때문에 대를 이어갈수록 가난의 쳇바퀴에서 후손이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또다시 찾아온 3·1절.
우리 사회의 홀대가 서운해도 결코 독립운동한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홍봉옥 여사 : 다시 또 우리가 같은 입장이 되면 그래도 독립운동을 또 하겠느냐고?]
[이영수/애국지사(광복군 3지대 활동) : 그건 하지. 우린 한국사람이니까 애족정(애국심)이 있거든]
(영상취재 : 김태훈, 영상편집 : 박진훈, VJ : 정영삼·김초아, 작가 : 이미선, CG : 홍성용·최재영·이예정·성재은·정시원)
<2020-03-01> SBS
☞기사원문: 가난하고 서운하지만…”다시 돌아가도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