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시립합창단…’친일 음악가’ 곡 연주 논란
“봄과 어울리는 노래를 골랐을 뿐”이라고 합창단 관계자는 해명했습니다. 오는 20일 열릴 예정인 공주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꽃이 핀다’ 이야기입니다. 기획 공연을 제외하면 1년여 만에 열리는 정기 공연입니다.
많은 문화 행사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어온 가운데 계획된 공연이라 시민 관심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연을 앞둔 합창단이 왜 ‘해명’을 해야 했을까요?
공연이 때아닌 친일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공연에서 부를 노래 상당수가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곡이었습니다. 15곡을 부를 예정인데 6곡이 그랬습니다. 시가 주최하는 공연의 절반 가까이 ‘친일 음악가’가 만든 노래가 연주되는 셈이었습니다.
■ ‘친일 음악가’…징병제 축하하고 군가 지도하고
공연에 포함된 친일 음악가는 현제명, 김동진, 이흥렬입니다.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 김동진의 ‘진달래꽃’, ‘수선화’, ‘신아리랑’ 그리고 이흥렬의 ‘코스모스를 노래함’, ‘부끄러움’이 공연에서 연주될 예정이었습니다. 행적에는 논란이 있지만, 친일인명사전 등은 이들을 친일 예술인으로 분류합니다.
특히 현제명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로 꼽습니다. 일제의 징병제를 축하하는 연주회에 나서고 일제를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 군가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현제명의 대표곡 중 하나가 공주시립합창단이 선택한 ‘희망의 나라로’입니다. 아래는 ‘희망의 나라로’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배를 저어가자 /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 산천 경계 좋고 /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희망의 나라로
희망의 나라로는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킨 1931년 작곡됐습니다. 현제명의 친일 행적과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적 특성을 근거로 ‘희망의 나라’가 일본이 꿈꾸는 대륙 진출 등 일본의 희망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 멀리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노래들
하지만 ‘희망의 나라로’는 대중에게 친숙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념행사 단골 곡입니다. 지난 2018년에는 충북 제천시가 제천시민의 날 기념식에 이 노래를 올리려다 논란이 됐습니다.
한 가수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불러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저 ‘친일’ 딱지를 붙이고 멀리하기에는 이미 익숙한 노래인 겁니다. 함께 논란이 되는 다른 친일 음악가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시립합창단의 해명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앞서 말했듯 합창단은 ‘봄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고르다 보니’, 또 대중들에게 알려진 우리 가곡을 찾다 보니 이들 음악을 포함했다고 설명했는데요. 거꾸로 우리에게 익숙한 곡 중에는 그만큼 ‘친일 음악가’가 만든 노래가 많다는 의미도 됩니다.
■ 최소한 ‘알고 들을’ 권리 보장해야
작품과 작가는 따로 해석돼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실제로 ‘희망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냐에 대해 ‘친일이다, 아니다’는 견해차가 크지만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는 그 자체로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작정 ‘이런 곡을 부르거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자치단체가 주최하는 합창단 공연이라면 관객이 될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최소한 알고 들을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친일 음악가가 만든 노래라는 설명을 하고 그럼에도 해당 곡을 선정한 취지를 설명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 공연의 ‘친일’ 문제에 분노한 시민이 올린 국민청원을 보면 이런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데 분노하고 있습니다. 또 그걸 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국민청원까지 올라오자 공주시는 결국 ‘친일 음악가’의 노래 6곡을 모두 다른 노래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번 일이 자치단체가 우리 곁의 ‘친일 음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시민들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2021-04-09> KBS
☞기사원문: 익숙한 금지곡?…시립합창단 ‘친일 음악가’ 곡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