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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뉴스][단독] 김해 현충시설에 친일행적 시인의 시비(詩碑) 버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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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의 한 현충시설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알려진 모윤숙 시인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새겨져 있는 모습. 이현동 기자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모윤숙 시인 시 새겨져 있어
활동 작품 중 12편이 친일작
과거 육군본부서 철거되기도
“관련 조례 통과 시 존폐 논의”

조국을 구한 영웅들의 희생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김해의 한 현충시설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알려진 시인이 쓴 시가 적힌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파장이 예상된다.

논란이 된 시비는 모윤숙(1910~1990)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시를 새긴 것으로 김해 삼계동 김해시민체육공원에 마련된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뒤편에 세워져 있다.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는 2003년 6월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에서 건립했으며, 이 때 시비(詩碑)도 함께 세워졌다. 이런 내용은 시가 운영하는 문화관광사업소 블로그에도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를 소개하는 코너에 모 시인의 시비가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기도 하다.

모윤숙은 대표적 친일파 문학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2002년 8월 ‘친일문학인 42인’ 명단에 포함됐으며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그를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했다.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역시 모 시인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함경남도 원산 태생인 모 시인은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사·기자·시인으로 활동하는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화여전 재학 당시만 해도 애국시를 발표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는 등 민족의식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1940년을 기점으로 각종 친일단체에 가담해 활동했다.

태평양 전쟁(1941~1945) 중 여러 친일단체에 가입해 일본에 협력하고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친일 논설을 기고하거나 ‘호산나 소남도'(1942)라는 전쟁찬양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어린날개-히로오카(廣岡) 소년 학도병에게'(1943), ‘아가야 너는-해군 기념일을 맞아'(1943), ‘내 어머니 한 말씀에'(1943) 등의 친일시를 연달아 같은 해에 발표하는 등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 시인의 작품 중 총 12편이 친일 작품으로 밝혀졌다.

모 시인의 작품이 다른 곳도 아닌 애국심을 함양·고취해야 하는 장소에 버젓이 설치돼 논란이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9월 말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임종인 국회의원은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며 육군본부 1층 명예의 전당에 모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새겨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임 의원은 이 시가 친일 작품인 ‘어린날개-히로오카(廣岡) 소년 학도병에게’와 매우 흡사하다며 “군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이를 철거할 의사가 없느냐”고 육군에 따지기도 했다.

당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은 “친일 행적보다는 업적 중심으로 기록했다. 이 시 역시 친일사상보다는 문학사상을 고려했다”고 답했으며 당시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 역시 “모 시인이 친일행적을 했다고 하더라도 시의 내용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듬해 7월 말 해당 시비는 결국 철거됐다. 당시 육군본부는 “명예의 전당에는 안중근 의사·김좌진 장군 등 의병활동을 했던 분들도 헌액돼 있어 친일행적을 가진 시인의 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전경. 이현동 기자

16년 전 논란을 불렀던 친일파의 시(詩)가 2003년부터 김해 현충시설에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철거 등의 조처가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년 전 본지 특별기고(2019년 5월 29일자 11면)를 통해 모윤숙 시인이 6·25전쟁 당시 세웠던 업적을 재조명한 바 있는 김해시의회 하성자 시의원은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모 시인의 친일행적은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된 행동이다. 당대 저항시인들이 겪었던 숱한 고충에 빗대어보면 더욱 그렇다. 현충시설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오는 24일 ‘김해시 일제잔재청산 등에 관한 조례 제정 조례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시비(詩碑)의 존폐 여부도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시 현충시설 담당과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본지 취재가 시작되면서 파악해보겠다고 했다.

보훈단체 관리를 담당하는 김해시 시민복지과 관계자는 “전공비가 설치됐던 2003년 당시에는 모 시인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기 이전이라 이 같은 지적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현재로서는 충분한 협의나 검토가 이뤄지지 않아 철거하겠다거나 유지하겠다는 등 특정 입장을 표명하기 곤란하다. 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했다.

김해뉴스 이현동 기자 hdlee@gimhaenews.co.kr

<2021-06-22> 김해뉴스

☞기사원문: [단독] 김해 현충시설에 친일행적 시인의 시비(詩碑) 버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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